②속리산의 화려했던 명성, 그러나 지금은
②속리산의 화려했던 명성, 그러나 지금은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7.09.14 10:44
  • 호수 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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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현대 망라, 뜨는 곳 구름같은 관광객 부르지만
오래된 관광지 속리산 지금, 잊히고 있는 관광지

 충북을 대표하는 관광지 속리산은 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었다.

대형버스 터미널에서 하차한 후 법주사나 문장대를 등반하기 위한 관광객들의 행렬이 넓은 도로를 가득 메워 산을 보는 것인지 사람을 보는 것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였다.

하지만 잊혀버린 관광지가 된 속리산의 위상도 급격히 추락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지정 순위를 보면 1호 지리산(1967년), 2호 경주(1968년), 3호 계룡산(1968년), 4호 한려해상(1968년)이고 6호인 속리산은 5호인 설악산과 같은 해인 1970년 3월 24일 지정됐다. 현재 22곳의 국립공원 중 속리산의 역사성이 무색하리만치 쇠퇴해 버렸다. 급기야 올해는 문화관광부가 2년마다 선정하는 한국이 꼭 가봐야할 한국 관광 100선에서도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충북에서는 속리산과 단양팔경, 괴산 산막이 옛길이 선정됐었으나 올해는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가 선정됐고, 단양팔경은 연속 3회, 괴산 산막이 옛길은 2회 연속 선정됐다.

관광트렌드 및 관광객들의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속리산의 실상으로 보면 탈락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현재 보은군의 관광정책으로 보면 속리산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관광 100선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데도 난망(難忘)하는 분위기이다.

속리산은 보은군의 대표먹거리, 지속가능한 미래식량이다. 불과 2, 30년 전만 해도 잘나갔던 속리산의 모습과 2, 30년을 지나오는 동안 추락한 관광지로 변한 속리산, 살리지 못한 숨은 매력을 재 발굴, 관광보은의 위상을 찾을 수 있도록 선진 사례 등을 통해 해답을 찾아본다.

글싣는 순서

▷속리산의 화려했던 명성, 그땐 그랬다

▶속리산의 화려했던 명성, 그러나 지금은

▷지역 관광상품과 타 지역 관광상품 비교 보도

  사라진 속리산 황톳길: 100선에 선정된 계족산 황톳길

  형식에 그치는 속리산 산신제: 유네스코 무형유산인 강릉단오제

  없어진 속리산 법주사 탑돌이 : 무형문화재된 월정사 탑돌이

  없어진 속리산 세조 어가행렬 : 수원 정조대왕 능행차 재연

  단발성 속리산송이놀이 : 상설공연 안동 하회 별신굿

  판 못키우는 송이놀이 : 5일장 상설공연 정선 판 아리랑

▷관광선진지 단양군 탐방

▷속리산 명성 부활대책Ⅰ

▷속리산 명성 부활대책

2011년 세계적인 여행가이드지인 프랑스의 '미슐랭'은 한국판을 발간하면서 한국에서 가볼만한 곳으로 모두 110곳을 추천했다. 최고점수인 별 세 개에서부터 별 두 개, 별 1개로 관광지에 대한 점수를 매겼는데 당시 충북에서는 보은속리산 별 2개, 법주사가 별 1개를 받았다. 충북에서는 속리산과 법주사만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었다.

세계적인 여행가이드지인 프랑스의 미슐랭에서도 손꼽았던 곳이 속리산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7년 속리산이 받은 성적표는 참담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년마다 선정하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서 탈락했다. 관광100선 선정의 기초는 인지도, 만족도, 설문조사, 관광객 증가율, 내비게이션 빅데이터 분석, 인터넷 검색 횟수, 전문가 현장평가 등 다양한 결과를 반영해 종합적으로 분석했는데 속리산이 탈락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속리산의 탈락은 아마 예정됐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속리산을 찾는 연간 관광객이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감소일로를 보여왔다. 관광객이 감소한다는 것은 속리산을 오는 길 안내를 받기 위해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찾을 일도 없을 테고 그러니 빅데이터로도 나올 것이 없고 어디가 좋을까 관광지를 탐색해보는 인터넷에서의 검색 건도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관광객의 감소는 이를 잘 말해주는 데이터다.

지난 호에서 보듯 속리산 주민들은 1997년 IMF를 겪기 전까지는 속리산의 영화가 영원할 줄 알고 있었다. 충북을 대표하는 관광지, 대한민국 대표적인 신혼여행지 수학여행지 중의 한 곳으로 이름나 있던 유명관광지였기 때문에 그때에 안주하고 자만했던 것. 그 것은 모든 이들이 떠안고 가야할 책임이다.

이번호에서는 잘나가던 관광지 속리산은 고속으로 추락, 관광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속리산의 현재를 확인해 본다.

 

관광객 숫자는 관광경기의 바로미터

관광경기 침체여부의 바로미터는 관광객 통계일 것이다. 맛있는 음식, 멋진 기념품, 관광객은 언제든지 꽂히는 것이 있으면 지갑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면 그만큼 시장은 활기를 띠게 된다.

그래서 속리산을 찾은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관광경기의 그래프는 고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1997년 202만여명까지 기록했던 속리산 관광객은 1998년 IMF로 인해 127만여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1999년 134만여명으로 7만명이 늘었지만 회복되지 않았고 오히려 2000년 96만6천명으로, 100만명대 아래로 추락했다. 속리산이 변변치 않은 관광지로 전락하는 신호탄은 이미 2000년 보인것이다. 이후 관광객은 매년 빠지기 시작해 2001년엔 88만명으로 추락했으며 2004년엔 79만명으로 떨어졌다.

 

청원~보은간 고속도로가 개통된 이듬해인 2008년에도 68만여명이 찾는데 그쳤다. 그리고 세조길 개통으로 탐방객이 많아졌다는 평가를 바탕으로 탐방객분석해보면 개통 전인 2015년 60여만명에서 2016년 62만7천여명으로 다소 늘어났다. 올해도 월별 관광객수를 지난해와 비교하면 △3월 3만6천여명 △4월 5만7천여명 △5월 8만여명 △6월 4만9천여명 △7월 3만7천여명 △8월 5만5천여명으로 월별로 적게는 1천여명에서 많게는 1만1천여명이 늘었다.

세조길이 관광객 증가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 가능한 분석이다. 세조길이 속리산을 찾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은 분명해보이지만 급증을 불러 오는데는 입장료가 걸림돌이 되어 이를 해결하는 것이 숙제다.

 

80년대와 다를 게 없는 관광지

수학여행지요 신혼여행지였던 속리산을 과거 80, 90년대에 찾았다가 최근 다시 방문한 관광객들은 대부분 변한 게 없다는 소감을 밝힌다. 변한 거를 꼽자면 상가지붕 페인트 색깔이나 도로가 넓어진 것, 인공폭포가 생긴 것, 금불, 세조길 정도라고 꼽는다.

30년이라는 시간적 흐름이 있는데도 변한 게 이 정도인 것은 낡고 퇴화되고 재미가 없는 지역임을 역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다음 찾았을 때 자기만 기억하고 있는 추억의 장소나 건물이 없어졌거나 변해서 아쉬운 것보다 새로운 관광지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 더욱 클 것이라 생각된다.

법주사를 들르지 않고 문장대를 등산하는데도 입장료를 내야 하는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문장대 등반객들이 가장 지루하게 느끼는 세심정까지 코스도 여전히 지루하다. 목욕소까지 세조길이라는 산책 코스를 낸 것이 그나마 지루해 하는 등산객들에게 다소의 안도감을 줄 뿐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도 보은속리산 관광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색이 없고 천편일률적인 관광지에 불과하다. 그러니 재방문율이 지극히 낮다. 이제는 고전적 명소가 된 부산 감천마을, 대구 김광석 거리, 통영의 동피랑, 대전 성심당, 경주 황리단길, 서울 북촌엸서촌, 강릉 커피거리, 강릉 박이추 보헤미안 커피 등과 같이 '아 거기' 하고 뜨는 장소나 음식이 전국의 관광객을 불러모으는데 보은속리산은 뜨는 곳 하나 없다.

흥미를 찾고 다시 그곳을 찾아오게 하는 그 무엇이 없어 속리산은 더 이상 흥미로운 관광지는 아닌 것이다.

지난 8월 27일 서울에서 왔다는 50대의 한 관광객은 "30년 전인 1987년 10월 대학교 다닐 때 고등학교 친구들과 속리산 문장대를 등반했었다. 혈기 왕성하던 시절 법주사와 문장대를 쉬지 않고 단숨에 다녀온 기억이 있다. 지금도 문장대 정상에서 친구들과 찍은 빛바랜 사진이 앨범 속에 있다"고 말한 그 관광객은 "그 때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단풍든 거리가 생각나고 올망졸망 식당 등 상가들이 몰려 있었고 버스터미널 옆 골목 몇 번째 식당인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파전 한 접시에 동동주를 마셨던 기억이 있고 속리산의 수호신처럼 관문에 푸르름을 뽐냈던 정이품송과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온 말티고개가 생각난다. 30년이 지난 후 처음 속리산에 닿았을 때 대학생 때 봤던 속리산 상가의 모습 그대로였던 것 같고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옛날에 속리산을 왔던 사람들에게 추억거리가 있는지는 몰라도 상가에 빌딩이 세워져야 하고 그런 의미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볼거리나 새로운 즐길거리가 있으면 그것을 하면서 또다른 추억을 만드는 것인데 속리산에서는 그런 것이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낮에도 전등불 밝히지만 손님은 ~

이처럼 지금 속리산은 새로움이 없는 낡은 관광지에 불과하다. 수십년간 파먹어 나올게 없는데도 보물이 계속 나오는 화수분인줄 착각하고 있는 속리산 주민들은 관광인파가 도로를 꽉 채웠던 과거에 젖어 낮에도 환한 전기불빛을 밝히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평일엔 관광객들을 보기 힘들 때가 많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돼야 가족이나 단체, 산악회 등에서 겨우 오고 있는 정도다.

관광객이 없으니 장사가 될 리가 없다. 그나마 방문 관광객 머릿수를 채우는 산악회는 연예인들이 현장에서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밥차를 운영하는 것처럼 버스에 아예 음식을 싣고 다니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매출 올리는 것이 쉽지 않다.

하산하면서 동동주 한 두 사발에 파전, 도토리 묵무침 정도의 매상을 올리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에 등산객을 대상으로 한 장사는 재미가 없다.

인건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 평일엔 부부만 자리를 지키고 주말에만 사람을 고용하는 식당들이 많다.

실제로 모 식당 업주는 "전깃불 환하게 밝혀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때는 전기요금이 아까울 정도로 파리만 날리는 날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개점휴업인 날이 많은 실정이다. 그래도 하기 쉬운 게 식당이기 때문인지 식당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우창제 속리산관광협의회장에 따르면 "속리산 사내리에만 82곳, 상판리까지 합하면 89곳에 달한다"고 말했다.

기념품 판매점의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장사가 안되자 식당으로 전업하거나 아예 가게를 접어 1980년대 40여개 정도 되던 기념품점은 현재 14개에 불과하다.

숙박업소는 갈목리까지 합하면 57곳이다. 그나마 갈목리는 최근에 펜션으로 지은 것이어서 건물 자체가 새것이지만 속리산은 지은 지 30년이 훌쩍 넘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방 한 개에 10명까지 단체숙박을 하도록 운영했던 수학여행 전용 여관들이다. 수학여행단을 대신해 전지훈련이나 스포츠대회에 참가한 단체 선수들이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2, 3개 대형여관에 국한되고 있다. 이에따라 폐업을 한지 오래돼 유리창이 깨지는 등 건물이 낡고 폐허인 채 방치된 곳도 있고 경매 물건으로 넘어간 곳도 있다.

전지훈련단 선수들이 주로 오는 시기는 평일 저녁에도 사람 구경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속리산 지역 주민들조차도 "속리산 상가는 저녁6시만 넘으면 사람하나 다니지 않는 귀곡산장 같다"고 할 정도다. 속리산의 현재를 말해주는 상황이다.

국민소득이 향상되고 주 5일제 정착 등으로 국내 관광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풍부한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하지 못한 보은 속리산은 어떻게 해야할까? 속리산이 갖고 있는 자산을 사장시키지 말고 발굴하고 각색하고 무대에 제대로 올리는 것 그것에서 관광 활성화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다음호에서는 속리산의 자산을 활용한 선진사례를 하나하나 짚어보는 기획 보도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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