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북 봉황 가는골 야생화 농원 김정섭씨
내북 봉황 가는골 야생화 농원 김정섭씨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7.08.31 11:48
  • 호수 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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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추 다 떨어졌었는데 3차에 열매 열려 다행이야"
▲ 수해로 흙탕물에 침수됐었던 야생화를 돌보는 김정섭씨. 그의 정성으로 야생화들이 고고한 자태를 다시 찾았다.

지난 7월 16일 일요일 오전 내내 쏟아진 그것도 내북면에 집중된 호우는 내북면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논둑, 밭둑을 허물어버렸고 경운기, 트랙터, 트럭들에게 탄탄대로였던 마을길도 삼키어 버렸다. 농경지를 할퀴고 간 자리는 벼도 쓸리고 콩도 쓸리고 포도나무, 인삼, 담배, 고추도 작살이 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북면 봉황리 김정섭씨가 늘 있는 곳 가는골 야생화 농원도 성인 허리춤까지 차오른 빗물에 첨벙 젖어버렸다. 흙탕물이 쓸고 나간 자리에 있던 농원 안의 귀하디 귀한 야생화는 온갖 오물을 뒤집어썼다.

다리가 저릴 정도로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은방울꽃, 금낭화, 복수초, 모데미풀, 노루귀 등 야생화를 돌보던 주인은 이를 어쩌나 탄식하고 있을 여절이 없이 씻기고, 다듬고, 어루만졌다. 주인의 정성으로 하루하루 지나니 흙탕물을 뒤집어쓰기 전의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야생화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도 있다. 바로 미국대추와 봉황 복조대추다. 미국에서 가지를 가져와 접을 붙여 올해 3년생으로 키운 미국대추나무가 물에 잠긴 이후 열매가 우수수 떨어지고, 또 보은에서 많이 생산하는 복조대추의 돌연변이인 봉황 복초대추도 모두 우수수 열매를 쏟아냈다.

올해 미국대추와 봉황복조대추 보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3차 개화에서 열매가 주렁주렁 맺었다. 김정섭씨는 늦둥이 자식처럼 이들 대추를 돌보느라 하루해가 짧다.

미국대추는 첫해 5그루에 접을 붙여 현재 6, 70주 가량되고 봉황 복조대추도 50여주 되는데, 두 종류 대추 모두 왕대추로 대추 3알을 한 손안에 쥐기 힘들 정도다. 작년에는 농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볼거리가 됐고 일부는 분재로 판매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07년 170주로 대추농사를 시작한 김정섭씨는 "올해도 미국대추, 봉황복조대추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다"며 가는골 야생화농원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이름도 셀 수 없이 많은 야생화를 돌보느라 여념이 없다.

 

김정섭씨가 야생화에 대한 사랑은 아주 일찍이 시작됐다. 시골에서 한 평이라도 빈 땅이 보이면 콩을 심고, 파를 심을 법한 1980년. 당시는 올해 수해는 수해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대수해를 입고 다시 집을 지어 10월말 입주하면서 마당에 나무를 심은 것이 그 뿌리다.

당시 시골 마당은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겨울철 땔감도 쌓아야 하고 짚더미도 쌓아야 하고 가을이면 콩 타작도 해야 하는 곳인데  그곳에 키가 작은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들었다. 당시 읍이나 면소재도 아닌 시골로서는 정말 보기드문, 생각도 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오엽송, 향나무와 같은 정원수와 꽃을 심고 기이하게 생긴 돌을 주워 화단을 가꾸니까 집도 좋아보이더라구. 그러다 돌틈 사이에는 야생화를 심고 또 깨진 항아리를 화분 삼아 야생화 분을 떠서 심으니까 더 좋더라구."

 

그의 야생화 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3, 4대 축협 조합장을 지낸 후 농공단지 중소기업 사장도 하다가 정리하면서 마음 둘 곳을 찾은 것이 야생화였던 것. 마당은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정도만 남았을 정도로 마당은 온통 나무와 꽃, 야생화 천지가 됐다.  도시 고급주택의 정원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탐나는 정원을 가졌다.

이렇게 산과 들에서 자라다 그의 마당을 제집으로 알고 흙냄새를 맡았던 야생화들이 마을 앞 가는골 야생화농원((www.wildfl.co.kr)으로 이사를 간 것은 2005년,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텃밭을 꾸민 것이다.

야생화소득화사업의 일환으로 군비지원을 받은 시설하우스에 울안에 있던 야생화를 옮겨놓고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가는 골을 따서 '가는골 야생화농원'이라 이름도 지었다.

"봉황 동네 앞산 이름이 가는골인데 우리 산이야. 새참을 이고 가는 어머니 뒤를 어린 내가 어른들 목축여줄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졸졸 따라가던 생각이 나. 그래서 농원도 가는골이 보이는 곳에 지었고 이름도 가는골이라 지었지."

속리산을 가는 길목에 있고 또 청주와도 근접해 있어 가는골 농원은 문을 열자마자 야생화를 좋아하고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방이 됐다. 500여종에 달하는 야생화에 놀라고 그것들을 자식 돌보듯 하는 주인에게 놀라는 동호인들이 수시로 그의 농원을 노크해 보은보다 외지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지금은 체험교육장으로도 이름을 얻어 학생들이 찾고 있고 귀농귀촌자들의 교육장이기도 하고 다른 지자체 야생화 회원들의 교육장이기도 하다. 또 논산시 연산지역의 대추농가들의 대추 분화용 재배기술을 배우러 오기도 하는 등 김정섭씨의 기술을 하나라도 더 얻어가기 위해 야생화농원의 문은 닫힐 날이 없다.

"야생화를 기르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자생지를 떠나면 잘 살지 못하는 종을 살려냈을 때지. 이 기쁨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아. 나는 지금 야생화농원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니까 건강을 유지하게 되고 또 이걸로 인해 작지만 소득도 생기니까 어느 정도 경제력도 갖게 되지, 이 나이(70대 중반)에 이보다 더 좋은 게 뭐가 있을까?"

대추나무, 야생화뿐만 아니라 수양뽕나무, 블랙베리, 아리수, 일반 대목에 후지, 레디, 인도를 접목해 3개 품종을 볼 수 있는 사과나무, 다래, 바이오체리, 하얀 앵두, 블랙엘칸사드 등 듣도 보도 못한 나무를 돌보면서 김정섭씨는 7월 수해의 아픔을 그렇게 치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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