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
  • 편집부
  • 승인 2017.08.24 10:08
  • 호수 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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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재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한지 한 달이 지났지만 세간의 관심은 별로인 듯싶습니다. 하긴 요즘처럼 뉴스가 홍수를 이루는 시절에 '공론(公論)조사'는 생소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새로 짓고 있는 핵발전소(신고리 5·6호기) 건설공사를 백지화 할지 여부를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한다는 뉴스는 보셨을 테지요.

이 업무를 맡은 공론화위원회는 활동기간이 3개월인데, 그동안 공론조사 절차, 즉 2만명 대상 1차 여론조사 → 시민참여단 500명 구성 → 숙의 과정 → 최종조사로 이어지는 과정이 정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1차 여론조사를 시작했고, 오는 10월 20일 최종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하게 됩니다.

도대체 공론조사가 무엇인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홈페이지에도 "낯선 길입니다"라고 쓰여 있을 만큼 생소한 새로운 의사결정 방식입니다.

공론조사는 좀 더 정확한 여론 파악 위한 수단입니다.

공론조사 방식이 나오기에 앞서 1970년대 미국·독일 등에서 사용하던 '시민배심원 제도'와 198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한 '합의회의'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이와는 달리 좀 더 많은 참가자로부터 의견의 변화 과정을 본다는 점에서 90년대 이후 영국·미국·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정책 판단의 잣대로 활용돼 왔습니다.

필자는 2007년 대통령자문지속가능발전위원회 갈등조정특별위원으로서 '시민배심원제도'에 입각한 방식으로 '심야전기제도'에 관한 갈등 해결을, 시민배심원으로서 직접 참여해 대통령의 자문에 응한 경험이 있습니다. 심야전기를 사용한 적도 없고 별 관심도 없었던 상태에서 "심야전기 요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현행유지'측과 '원가수준으로의 점진적 요금인상 및 신규신청 중단'이라는 대결에서 관련 자료를 받아보고 각각 이해당사자들의 주장을 듣고 질의응답과 자체토론 과정을 거치는 동안 찬반이 분명해지더군요.

시민배심원제는 갈등적인 공공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 형성을 위한 시민(공공)참여의 구조화된 프로그램으로 1970년대 중반 미국 비영리기구 제퍼슨센터(Jefferson Center)의 네드 크로스비(Ned Crosby)에 의해 창안된 방식입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결함을 극복하려는 취지, 학습과 토론을 통한 심사숙고에 기반한 의사결정이라는 숙의민주주의의 한 형태, 정책결정에 있어 관료주의와 전문가주의를 넘어 민주적 거버넌스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론조사와 유사한데, 다만 공론조사는 참여하는 시민의 숫자가 훨씬 많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라는 사회조사 방식을 고안해 낸 미국 스탠퍼드대 제임스 피시킨(James S. Fishkin) 교수(커뮤니케이션학·정치학)는 한국정부가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의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한 공론화 결과를 조건 없이 수용하기로 했다는데 대해 "어려운 선택을 하는데 시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건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다. 그들(한국 정부)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는군요.

피시킨 교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공공정책에 관심이 없다.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사안이 생길 때 가짜뉴스나 사회관계망(SNS) 등에서 보듯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정보나 여론을 조작하는 경우가 흔한데, 만약 '대중이 좋은 환경 아래에서 정책과 정치적 이슈를 살피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시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되면 왜곡된 여론이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휩쓸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는 또 "전 세계의 정당과 정치인을 보면, 대부분 사회적 토론에서 이기는 것보다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데 관심이 있다. 그런 탓에 충분한 정보를 통한 정책이 어렵다.

그러나 다음 선거를 신경 쓰지 않는 대중에게 숙의 과정을 통한 의사결정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대의민주주의 제도에서 더욱 공론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정치인들도, 국회의원이건 지방의원이건 마찬가지로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는 데만 관심을 쏟지 않습니까? 실제 외국의 공론조사에서 기존에 정당(정치인)이 주장해온 내용과 전혀 다른 토론 결과가 나와 정치권에 충격을 주었다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판은 어디가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여,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적으로 커다란 문제뿐만 아니라 지자체 차원의 다양한 갈등과 대립을 풀기 위한 방편으로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 혹은 시민배심원제도를 적극 검토할 것을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보은군의 경우 '복합문화시설'을 두고 첨예하게 갈등을 빚었는데, 이러한 예민한 사안을 위와 같은 방식으로 결정했더라면 갈등을 덜 겪고 후유증은 최소화하여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고리 5·6호기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공론조사 과정을 통해서 합리적인 결정을 얻어낼 수 있다면, 앞으로 유사한 많은 갈등 사안을 해결해 나가는 중요한 모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힌 것이나 '한국형 공론화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같은 맥락이 아니겠습니까.

여론(public opinion)에서 공론(public judgment)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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