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相思花)와 광복절
상사화(相思花)와 광복절
  • 편집부
  • 승인 2017.08.24 10:07
  • 호수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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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인

어제가 처서(處暑), 예년 같으면 하늘이 높아지고 선선한 기운이 퍼지면서 가을이 오는 것을 실감할 때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질 못합니다. 비가 너무 자주 오다보니 농작물 피해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마음에도 곰팡이가 피는 것 같습니다.  

지난 화요일이 72주년 광복절이었습니다.

그날도 비가내린 탓에 대문에 게양했던 태극기가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빗물이 흐르는 태극기를 실내에 걸어두고 바라보니 문득 태극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열들의 피와 눈물로 되찾은 이 태극기가 광복절만큼은 한반도 전체에서 휘날려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로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1945년 8월 15일에는 저 북한의 끝 함경북도에서도, 또 남한의 끝 제주도에서도 태극기의 물결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72년이 지나면서 국토는 허리가 잘리고 민족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휴전선 앞뒤로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첨단 무기들이 더욱 촘촘하게 전개되어 있습니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는 강점기간 동안은 물론 그 이후에도 우리 민족에게 큰 고통과 치욕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남북 분단의 원인이 일본의 한반도 강점이었고, 그 분단으로 인해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으며, 작금의 위기상황 역시 치유되지 않은 그 비극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광복이 되고난 후 꼭 일제강점기간의 두 배에 해당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민족의 저력은 많이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력으로 되찾은 광복이 아닌 탓에 우리 민족은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여러 면에서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로 소중한 민족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북 성주에 배치하는 사드가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순수하게 남한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반대해서도 안 되고 반대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과 남한과 북한의 이질적 체제는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와 맞물리면서 한반도에 늘 대결과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태생적 환경은 특히 국내 정치가 정도에서 벗어나 나라의 역할을 제대로 못할 때면 정권보위를 국가안보라는 미명으로 위장하며 민의를 무시하고 비판적인 국민들을 옥죄는 부끄러운 역사의 토양이 되어 왔습니다.

물극필반(物極必反) 부극태래(否極泰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떠한 일도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이 있게 마련이며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된다는 의미로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 역시 이 말이 의미하는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백일 기자회견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문득 내가 만약 저 회견장에 나가 대통령께 발언할 기회를 가진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5년은 향후 대한민국 50년의 국가 성격을 규정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둘째로는 지난 정권에서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협의하면서 일본 측이 사용한 '불가역적'이라는 치욕적인 표현을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 사이에 평화와 공존의 관계가 불가역적으로 되었다." 라는 역사적인 선언이 되도록 노력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8월은 다른 달에 비해 꽃이 상대적으로 귀한 달입니다. 일명 배롱나무라고 부르는 목백일홍

나무가 꽃을 피우고 상사화라는 애틋한 이름을 가진 꽃이 광복절을 전후하여 피어납니다. 올해 광복절에도 상사화가 피었습니다. 하지만 자주 내린 폭우로 인하여 길고 연약한 꽃대는 부러지고 해맑은 연분홍 꽃잎은 많이 찢어졌습니다. 그 꽃들을 바라보자니 일제강점기 때 정신대에 끌려가 피어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간 위안부들이 생각납니다.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 또한 그 잎을 보지 못해 서로 그리워 한다는 상사화.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역만리에서 숨을 거둔 수많은 민초들의 넋이 이 꽃에 담겨있을 것 같은 생각에 잠시 코끝이 찡해 집니다.

진정한 광복은 아직도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 특히 위안부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이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사회 내부에서도 반칙과 특권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눈물 흘리는 국민이 없어야 미완의 광복은 한 걸음 진전됩니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어 적어도 삼일절과 광복절엔 저 북녘 땅에서도 태극기가 춤을 출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광복은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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