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닮, 禮를 다하다
예닮, 禮를 다하다
  • 편집부
  • 승인 2017.07.27 16:07
  • 호수 4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요? 그런데 미래를 저당 잡힌 사람들이 있답니다. '치매'라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인지기능장애 환자들인데 바로 저의 아버지께서 2급인지기능장애 환자십니다.

치매란 병을 이해하지 못했을 적엔 이상한 행동 때문에 정말 난감했었는데, 인터넷을 뒤져가며 알아낸 사실은 이보다 더 비참할 수 없는 병이란 것이었어요. 패셔니스트이신 아버지는 하루 세 번 정도 옷을 바꾸어 입는 취미가 있으셨는데, 치매에 걸리신 이후로는 모자를 고르실 때 어떤 것을 선택할지 몰라, 세 개를 포개어 한 번에 쓰고 하나는 손에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십니다.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제 마음 속에는 아픈 눈물이 흐르지요.

많은 분들이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데, 센터를 운영하는 노승두 원장님을 전통시장 방송실에 대담 게스트로 모신 적 있어요. 예닮이라는 뜻이 궁금했는데, 바로 '예를 다하다'라는 의미가 담겼다구요. 감동이었지요. 치매노인에게 예를 다한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를 알기 때문에…. 젊은 사람을 포함한 보은군 인구의 10퍼센트가 치매환자로 가고 있다는 설명을 들을 적엔 절망스런 마음이었어요.

흔히 사랑을, 로마신화 속의 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리라를 불며 지하세계로 찾아간 오르페우스의 애절한 사랑, 형장에서 이도령을 기다리는 춘향이의 처절한 사랑, 비극으로 막을 내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으로 모두 젊은 사랑만을 떠 올리지요. 그러나 한평생 아낌없이 주는 지극한 부모의 사랑은 얼마나 고귀하고 숭고한가요? 그보다 더 한 사랑이 인간에게 있다면 한 줌이라도 좋으니 펼쳐 보시기를. 부모는 헌신적으로 퍼주는데, 받는 자식은 당연한 것이라고 기억을 잘 못하는가 봅니다. 한편으론 어차피 사랑은 내리사랑 이라고들 속 편하게 결론짓는 것인지두요.

노승두 원장님 설명에 의하면 일본식 표현인 '어리석고 어리석다'라는 뜻의 치매환자에 대한 편견을 가장 먼저 보이는 이는 뜻밖에 자식이라고 하네요. '똥 싸는 자식은 끼고 살지만 똥 싸는 부모는 시설로 얼른 보내 버린다'는 날카로운 지적 아닐까요? 또한 전반적인 치매증상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는데, 요즘도 아침내내 신문을 읽으시고, 고운 셔츠에 평소 당신이 가장 사랑하신 둘째 딸이 사드린 멋진 모자를 애용하시는, 조용하고 얌전하신 우리 아버지. "전생이 있다면 아마 어느 나라의 멋쟁이 왕자님이셨을거야.." 하는 둘째의 말에 웃었어요. 하긴, 전생에 왕자 공주 한 번 안 해 본 사람은 없다고도 하더라구요.ㅋ..

쓰고 계신 날렵하고 맵시있는 흰 모자에 폰 번호가 적혀 있다면 틀림없는 저의 아버지십니다. 아버지의 자식 사랑은 주위 사람들에게 '참, 유별스럽다'라는 소리까지 들으셨는데 딸, 사위들과 함께 지내신 이튿날은 신기하게도 기억이 많이 또렷해지십니다. 서양 사람들이 그토록 줄기차게 외치는 'Power of Love'인가요? 사랑의 힘, 예닮 원장님의 설명처럼 따뜻한 가족사랑이, 치매환자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 치매지연에 도움이 된다는 게 증명된 것이지요.

수많은 영화나 음악의 테마가 '사랑'타령인데 현실은, 애틋한 젊은 사람의 사랑에만 관심을 주고, 생의 마지막 길에 선 치매노인에게는 편견을 담은 시선으로만 보는 서글픈 현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혹여, 길을 잃고 헤매는 치매 노인을 만나게 된다면, 어려운 시대를 지탱해 오신 어르신께 禮를 다해, 사랑의 손을 내밀어 도와주실 수 있는지요?

박태린

보은전통시장 음악방송 DJ/청주한음클라리넷오케스트라단원

음악신청 ☎544-6637 (평일오후 2시~4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