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
금붕어
  • 편집부
  • 승인 2017.07.06 10:17
  • 호수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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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철

아침운동을 거른 날에는 저녁 때 간단한 복장으로 가경천변 살구나무거리를 걷는다. 가뭄이 심하니 예전과 같은 수량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원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거기에 살구향까지 코끝을 간질이니 도심지에 이만한 산책로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근래 운동하다 자주 눈에 띄는 것은 반려견이다. 하루 종일 주인을 기다린 충직한 개에게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풀어 주려는 의도도 있겠고, 아니면 아직도 남아 있는 그들만의 본능을 일깨워 주려는 사려 깊은 주인의 뜻도 있을 게다. 비록 목줄은 하고 있지만 그들은 산책로를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한다.

작년과 올해 딸과 아들을 결혼시켜 새 살림을 내니 집안이 썰렁하다. 아이들이 있었을 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집안이 늘 가득한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반려동물이다. 우리 부부는 곰곰이 생각하다 금붕어를 데려오기로 했다. 그 이유는 늘 움직이지만 조용하다는 것이 첫 번째고 유지비도 크게 들지 않으면서, 실내습도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새벽기도를 가기 전에 거실의 불을 켜면 금붕어들은 일제히 입을 수면위로 내밀고 "쪽 쪽"소리를 내며 나에게 몰려든다. "어허, 너희들이 배가 고픈가 보구나. 그래그래,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내가 얼른 손을 씻고 와서 밥을 줄 테니."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이놈들은 더 소리를 친다. "아빠, 아빠. 배고파요. 빨리 밥 주세요. 쪽 쪽."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금붕어를 보며 이야기를 한다. "열 마리 중 살아남은 것은 너희 넷이구나. 일주일 동안 얼룩이 세 마리와 검둥이 세 마리가 모두 죽어 걱정을 했는데 그래도 너희가 살아주니 정말 다행이다. 막내 홍단아! 너무 많이 먹지마라. 몸이 무거우면 활동하기 어렵단다."라고 말하면 금붕어들도 내말을 알아듣는지 연신 꼬리를 치며 내 주위를 빙빙 돈다.

날이 더워지자 어항에서 비린내가 나기도 하고 수초나 조개에 파란 이끼가 낀다. 전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청소를 하였는데 이제는 보름에 한번 씩 청소를 해야 깨끗하다. 우선 금붕어들을 다른 용기에 옮기고 나면 어항과 수초를 조그마한 솔로 구석구석 청소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도 깨끗한 물과 수초 그리고 조개들을 넣어주면 금붕어도 기분이 좋은지 한동안 어항 가장자리를 빙빙 돌면서 개운한 표정을 짓는다.

아버지께서는 겨울이 되면 꼼짝을 못했다. 중풍으로 한쪽을 못 쓰기도 했지만 추위가 아버지의 몸을 더욱 굳게 하였다. 지금처럼 집집마다 샤워시설이 있든지 아니면 자가용이라도 있었으면 그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어째든 80년대 겨울동안 보름에 한 번씩 아버지를 목욕을 시키는 일은 솔직히 나에게는 고통이었다. 아내는 아침부터 물을 데우고, 나는 커다란 고무 대야를 안방으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추울까봐 한옥 창호지 문 위에 담요로 걸어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옷을 벗기고 커다란 고무 대야 속으로 아버지를 들어가게 하는 일부터기 난관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몸무게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젊은 며느리에게 벌거벗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버지나 나나 싫었다. 아버지를 목욕시키고 나면 나는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머리 감고 면도까지 깨끗이 한 아버지의 얼굴에 화장품을 발라드릴 때면 "아이 시원하다. 야야 늙은이에게 화장품은 뭘 바르냐." 하면서도 개운해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갑자기 어항 속 금붕어에서 아버지의 그 개운함을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점점 희미해져 가는 아버지에 대한 조그마한 추억을 반추하다 보니, 초로의 나의 얼굴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잠시 눈물이 되어 주르륵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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