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강서면옥-45년 전통의 장모님 면발과 육수, 사위가 전수
③강서면옥-45년 전통의 장모님 면발과 육수, 사위가 전수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0.06.10 09:31
  • 호수 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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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열심히 냉면 팔고 5개월은 재충전합니다

여름철 대표음식인 냉면.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단 번에 씻어줄 만큼 시원한 육수,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의 가는 면발,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더운 여름철이면 이열치열 영양 보충을 위한 보양식 못지않게 냉면집 마다 손님들로 가득하다. 냉면 하나로 45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지역에 있는 냉면 전문점 강서면옥도 그야말로 냉면 하나로 여름마다 인복이 터진다.

보은뿐만 아니라 청주, 대전, 상주, 서울 등지에서도 강서면옥의 냉면을 먹기 위해 찾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처음 문을 연 장모님 김승희(65)씨가 냉면으로 보은 사람들의 입맛을 중독시킨 강서면옥은 지금 사위 이준영(42)씨에게 대물림돼 45년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취재를 위해 강서면옥을 찾은 지난 7일 오전. 11시가 되기 전부터 들이닥치는 손님을 맞을 준비에 손놀림이 분주했다.

전날 늦게까지 육수를 내느라 늦잠을 자는 사위 이준영씨를 대신해 김승희씨는 메밀가루를 치대서 면을 뽑고 있었고, 할머니는 삶은 계란 껍데기를 까고 무절임, 갓김치를 담아놓는 등 손발이 착착 맞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1시가 되기 전인 10시 50분경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30년 단골이라는 남상우(51)씨는 "점심이 아니라 새참을 먹는 것"이라고 답하는 것을 보니 아침부터 서두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눈대중이었지만 손님 입에 착착 붙어
강서면옥 역사와 함께 한 단골손님이라면 강서면옥의 상징을 아마도 얼굴이 곱고 예쁜 아주머니와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를 떠올릴 것이다.

그 얼굴 고운 아주머니가 보은 강서면옥의 1대 김승희씨이고, 흰머리의 할머니는 김승희씨의 친정어머니 주학근(86) 할머니다. 사위에게 대물림하기 전까지 늘 이들 둘이 손님을 맞았다.

사위가 대표가 된 지금도 이들 두 모녀는 보은 강서면옥의 상징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며 사위의 후원자로 강서면옥의 맛을 지키고 있다.

메밀 고장 강원도 평창에서 나고 자라 1965년 서울 인현동에 있던 강서면옥의 둘째 며느리가 된 1대 김승희씨는 시아버지 밑에서 14년간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조리법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1979년 속리산으로 이사를 온 친정 부모님을 따라 보은으로 이사해 처음 읍사무소 앞 현재의 보신옥 자리에서 개업한 후 무궁화 식당 자리, 상록식당 자리까지 16년간 옮겨 다니다 현재의 자리에 이르고 있다.

1대 김승희씨는 개업 때부터 변치 않고 고수한 것이 있다.
메밀의 본고장인 강원도에서 메밀을 공수해와 메밀가루를 잘 치대서 숙성시킨 후 직접 면발을 뽑고, 한우(양지)를 푹 고아서 만든 담백하고 깔끔한 육수를 내는 일이다.

제조된 것을 사다 쓰지 않고 직접 면발을 뽑아서 쓰는 그 전통을 유지한 것이 생면부지였던 보은에서 냉면전문점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

어림짐작으로 메밀가루와 전분을 섞어 면을 뽑아도, 여러 양념을 사용하는 비빔냉면의 소스도 눈대중으로 했지만 손님의 입맛에 거슬리지 않고 착착 달라붙었다. 그 맛에 강서면옥의 45년 역사와 함께 한 단골들이 만들어졌다.

◆기록 분석해 적용하는 사위
소금 조금, 간장 조금…. 도대체 조금이라는 양이 어느 정도일까. 가늠하기 어렵지만 고수들은 주재료의 양만 갖고도 조금이라는 양을 단 번에 알아차린다.

1대 김승희씨가 이렇게 수 십 년간 강서면옥의 주방을 책임지면서 눈대중으로도 척척 음식의 맛을 냈다면 2대인 사위 이준영씨는 좀 다르게 분석적이다.

이준영씨는 자신이 강서면옥에 오면서 날씨와 습도, 매출까지 기록해왔던 것을 참고해 매일매일 냉면의 양을 조절할 정도로 매우 과학적이다.

2004년 직장을 그만 두고 강서면옥에 들어와 장모님을 뒷바라지 하면서 그날그날 날씨와 온도, 습도를 기록하고 매일매일 물냉면 몇 그릇, 비빔냉면 몇 그릇이 나가는지를 기록했다.

수년간 그 같은 기록을 계속하면서 기온이 높고 습도가 높으면 냉면 매출이 폭주하고 기온은 높되 습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더위를 덜 느낄 때 냉면의 매출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한 것.

그래서 그날, 그날 기온과 습도를 봐가면서 냉면 양을 조절하니까 노동력도 절약되고 여유롭게 손님을 맞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냉면의 면발을 좌우하는 메밀가루와 전분의 비율, 게다가 한우 육수의 비법, 양념장에 들어가는 재료의 양 조차도 눈대중 보다는 계량화를 할 정도다.

또 장모님시대에 하던 갈비탕, 만두, 돼지갈비 메뉴를 접고 냉면과 수육으로 단품화 해 서비스 제공에 심혈을 기울였고 전국의 유명한 냉면집을 탐방하며 다른 무엇을 찾아내는데 정열을 쏟았다.

자신이 손님 되어 모든 식탁 의자에 앉아 식당 전경을 둘러보며 식당의 분위기를 살피며 눈에 거슬리는 것을 바로잡고, 손님이 오면 즉시 주문 음식을 내놓아 기다리는 동안 기분이 상하게 하지 않게 했다. 그만큼 회전율이 높아졌다.

오전 11시에서 저녁 8시까지 늦으면 9시까지 영업 하는 동안 하루 300그릇 이상의 냉면이 나갈 정도다.
이는 1대 김승희씨가 생각해내지 못한 2대 이준영씨가 만들어 낸 경영효과다.

그래서 2005년부터는 3월말 또는 4월부터 10월 중순까지만 영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오롯이 다음 영업을 위해 재충전을 하는 시간으로 사용한다.

 

◆전국 최고 냉면전문점이 목표
보은 강서면옥을 전국 최고의 냉면전문점 경지로 끌어올려 로열티를 받고 분점을 운영하는것이 목표인 이준영씨가 김승희씨의 사위된 것은 정말 우연이다.

속리산 사내리에서 가내 두부공장을 하던 외할머니가 보건소 여직원(김현정씨)에게 자신의 외손자를 소개했으나 나이가 너무 어려 김현정씨가 1999년 5월 김승희씨의 무남독녀인 김형신씨를 소개, 그 해 11월 결혼에 골인한 것.

서울에서 막내로 태어나 힘든 일 한 번 하지 않았던 이준영씨는 "냉면집이 그냥 그런 줄 알았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줄 정말 몰랐다"며 "오랜 전통을 고수해온 장모님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혀를 내둘렀다.

대물림은 했지만 늦은 시간까지 육수 우려내는 일을 하는 이준영씨를 대신해 오전 일인 면발 뽑는 것과 양념 소스를 만드는 것은 아직 장모님의 손을 빌리는 형편이라 이준영씨는 늘 죄송하다고 한다.

그래도 장모님과 손발을 맞춘 맛 때문인지 외지에서도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과거보다 손님이 30% 정도 늘었다.

특히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대전, 청주는 물론 상주, 김천에서도 오고 소문을 듣고 왔다, 인터넷을 보고 왔다는 등 손님이 늘어난 것을 실감한다고.

소문을 듣고 일부러 왔다는 손님들은 "이렇게 맛있는 냉면집이 왜 시골에 있느냐"며 청주나 대전에서 해보라는 권할 정도라고 한다.

손님들의 칭찬에 자신감이 생긴 이준영씨는 강서면옥의 전국화를 꿈꾸고 있다. 또 하나의 꿈은 그동안 고생하신 1대인 장모님을 쉬게 하기 위해 직접 운영을 접고 로열티만 받고 경영하는 사업도 생각하고 있다.

서울 서소문동 삼성본관 옆의 본점과 강남점, 수원점, 그리고 미국 3개점이 운영되고 있는 강서면옥과 같은 집이지만 보은 강서면옥만의 냉면 맛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1차 공격지역이 매력적인 냉면 집이 없는 청주다. 이준영씨는 조만간 시장조사도 할 겸 간을 보러 갈 계획이다.

김승희표 냉면에서 깔끔하고 항상 웃는 인상의 이준영표 냉면으로 단골손님들의 입맛이 길들여지고 있는 강서면옥의 전국화, 브랜드화가 기다려진다.

한우육수의 담백함이 묻어나는 시원한 물냉면이 최고야, 소스 맛이 일품인 비빔냉면이 최고지.  자장면과 짬뽕처럼 자웅을 겨루기 힘들다. 냉면이 불티나게 나가는 여름철, 냉면 한 그릇으로 무더위를 보낼 사람들이 강서면옥에 줄지어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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