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야, 편지를 쓴다.
뜨락에 살구나무 올라갔더니
웃수머리 둥구나무
조-그만하게 보였다.
누나가 타고 간 붉은 가마는
둥구나무 샅으로 돌아갔지,
누나야, 노-랗게 익은
살구도 따먹지 않고
한나절 그리워했다.
'편지'는 시집간 누나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빌려 자신이 누나와 헤어질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옛날에는 여자가 시집을 갈 때 가마를 타고 갔다. 동생 오장환은 누나가 탄 가마가 집을 떠나 동네를 지나면서 안보이게 되자 살구나무로 올라간다. 누나가 가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켜보고 싶어서다.
뜨락에 있는 살구나무에서 누나가 타고 가는 붉은 가마가 '웃수머리'둥구나무 좁은 길을 돌아갈 때까지 바라본다.
누나의 가마가 보이지 않게 된 뒤에도 동생은 누나를 생각하면서 한나절을 보낸다. 먹거리가 풍성하지 않았던 시절 평상시 같으면 노랗게 익은 살구를 따먹으며 신나게 놀았겠지만 그날은 입안에 침부터 고이게 하는 그 노란 살구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집가는 누나와 헤어져야 하는 이별의 아픔과 누나에 대한 그리움이 세밀화를 그린 듯 생생하게 전달된다.
오장환을 고향의 시인이라고도 하는데 '편지'에도 낯설지 않은 회인의 지명을 만날 수 있다. '웃수머리'는 오장환이 태어난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에 있는 마을로 숲이 울창해서 '웃숲머리' 또는 '숲거리'라고 불렀다. 현재는 마을은 쇠락하고 숲도 사라졌지만 '숲거리' 란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과 몇 그루의 고목이 옛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웃수머리'는 누나 오남환의 결혼 시기도 추정해 볼 수 있게 한다. 오장환은 회인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를 가는데 누나의 결혼은 이사를 가기 전, 1학년~3학년사이가 아닌가 한다.
'편지'는 1936년 조선일보에 발표한 작품으로 오장환의 가슴속에는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회인의 시냇물이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 감지되고 있다.
<참고문헌 -도종환의 오장환 詩 깊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