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삶
준비된 삶
  • 편집부
  • 승인 2017.06.08 10:31
  • 호수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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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철

대한노인회 보은군지회에서 강의 요청이 왔다. 오년 전쯤, 농협군지부장 때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기억이 나서 전화를 한 것 같다. 강의 날짜를 보고 쾌히 승낙을 하였다.

'무슨 내용으로 강의를 할까?' 강의 대상이 칠십대에서 팔십대의 어르신이라 딱딱한 경제문제를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건강을 이야기 하는 것도 주제에 넘는 일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누구나 한 번은 꼭 가야할 길인 '죽음'을 강의 주제로 정했다.

"오늘은 여러분께 삶의 한 부분인 죽음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가 직접 겪은 형님 두 분의 죽음을 보면서 잘 준비된 죽음과 갑작스럽게 맞이하는 죽음이 어떻게 다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머리말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나에게는 형님 두 분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살아 있다면 팔십대 초반이다. 말이 나의 형님이지 나이 차이로 보면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다. 두 분이 일 년 사이를 두고 돌아가셔서 그 충격은 매우 컸다. 큰 형님께서는 사십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둘째 형님은 늘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것이 꿈만 같다.

큰 형님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돌아가신 해 5월이다. 마침 딸아이 졸업식이 있어 우리 부부가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졸업식을 마치고 형님이 계신 덴버에 도착하니 형님께서는 무척 반가워했다. "우리 막둥이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 내 생전에 동생을 또 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사실 지난 달 수술이 예약되어 있었어. 동생이 온다고 해서 좀 미뤘지. 이번에 수술을 하면 성대를 건드려 다시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지 뭐야. 그래도 동생하고 마지막 인사는 해야지."하며 밝게 웃는데 나의 가슴은 먹먹해졌다. 결국 형님은 그해 12월에 돌아가셨다.

언제 부터인가 둘째 형님을 만날 때마다 어깨가 아프다고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의 친구에게 형님진료를 부탁했다. 며칠 후 진료를 받은 형님은 활기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동생 덕분에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병원에서 진료 잘 받고 왔어. 교수님 말씀이 한 달간 약을 먹으면 차도가 있을 거래. 역시 큰 병원을 가야해."하며 고맙다는 말을 몇 차례나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어 다시 가서 종합검진을 받으니 '폐암 말기'란다.

큰 형님은 종교도 있었고, 여러 번의 수술을 해서 죽음의 문턱이 늘 가까이 있음을 아셨다. 그래서 담담하게 죽음의 준비를 하신 것 같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에게도 유언과 같은 말을 했다. 큰 아들로 부모님과 형제를 버리고 이민 온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막둥이 동생을 챙겨주지 못한 점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순리대로 살라고 했다. 내 손을 꼭 잡고서….

반면 늘 당당하시고, 열심히 사셨던 둘째 형님께서는 '폐암말기'라는 진단에 충격이 너무나 커서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였다. 한 밤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는 "동생 나 좀 살려줘. 나 더 살고 싶어."하시며 우셨다. 잠을 자면 저승사자가 데리러 온다며 늘 의자에 앉아 계셨다. 졸고 계신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자리를 펴고 눕게 하려면 막 화를 냈다. 생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다보니 가족 모두가 아무 말도 못하고 안절부절 했다.

사람은 아니 모든 생물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살아서 잘사는 것도 좋지만 잘 죽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있을 때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 나의 모습을 살아서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의미있게 할까? 그런 뜻에서 보면 이번 강의는 노인회원보다 오히려 내게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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