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든 남자랑 꽃순이를 아시나요"
"꽃을 든 남자랑 꽃순이를 아시나요"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7.06.01 10:48
  • 호수 3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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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향기에 푹 빠진 홍순기·김몽순씨 부부
▲ 향긋한 작약 향기를 맡으며, 노후 대책을 생각하고 있는 홍순기, 김몽순 부부가 다정하게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장님 꽃밭이 어디예요?" "아 예~, 속리산 중판 문화마을 앞에 자전거도로가 나 있는데 그 길로 하판리까지 쭉 내려오면 돼요." 꽃밭의 주인인 홍순기 사장님의 안내를 받고 찾아나선 작약꽃밭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꽃밭에서 기자를 기다리는 홍순기(64, 속리산 하판, 웅골)·김몽순(61)씨 부부를 발견하고 자동차 문을 열자마자 향긋한 작약향기가 코끝에 닿는 것을 보니 주변이 온통 작약향기로 휘감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4, 5일 전에만 오셨어도 싱싱하게 핀 꽃을 볼 수 있었을텐데 지금은 많이 졌어요." 먼발치에서 보더라도 활짝 피었는데 꽃이 졌다니. "꽃이 진 상태가 이 정도예요? 진즉에 왔으면 정말 저는 취했겠는데요?" 정말 그랬다. 꽃은 여전히 예뻤고 향은 또 얼마나 진하던지….

꽃을 보고 향기에 취하려고 작약을 심은 것은 아닐 테고 무슨 이유로 논에 작약을 심었을까?

3년 전부터 5천950평방미터(1천800여평)에 작약농사를 짓고 있는 홍순기·김몽순 부부는 "노후대책으로 시작한 거예요. 벼농사 지어봤자 기계값 제하고 인건비 빼면 이 정도에서 400여만원밖에 못 벌어요."

홍순기·김몽순 부부는 "작약은  인삼처럼 묵으면 묵을수록 돈이 돼요. 올해 3년째이니까 내년 또는 내후년이면 고소득이 예상돼 노후대책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소득이 높아지는 것은 이해되지만 어쨌든 4, 5년간은 작약밭 1천800평에서 얻는 소득은 없기 때문에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을까?

농사거리는 식량할 정도의 벼농사 외에 웅골에 대추밭 8천200평방미터(2천500평)이 있고, 작약 심은 논 옆으로 특용작물 더덕 1천650평방미터(500평)를 재배하고, 또 고추 990평방미터(300평)를 경작한다. 대추만으로도 높은 소득을 얻기 때문에 작약밭 1천800평을 묵혀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작약으로 인해 3년 묵힌 비용은 이미 고추농사로 모두 뽑았다.

논에 벼나 심지 무슨 도라지고, 하수오를 심느냐며 수근거림은 작약을 심은 후에는 더 커졌다. 사실 작약을 심은 1천800평은 논이다. 벼로 얻는 소득이 적기 때문에 홍순기·김몽순 부부는 농지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벼가 아닌 특용작물로 전환한 것이다.

작목을 전환할 때마다 벼농사보다는 소득이 더 높았지만 아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작약을 재배한 것인데 지금생각해도 잘한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작약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쌀금이 싸다고 하면서도 농민들은 벼농사를 고집해요. 같은 규모라도 어떤 작물을 식재하느냐에 따라 평당 소득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농민들은 다 아는데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홍순기·김몽순씨 부부는 작약은 현재 주 농사거리인 대추와도 겹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대추와 벼의 수확시기가 겹쳐 일손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런데 작약은 건달농사라고 할 정도로 별로 손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봄에 풀 한 번 매주면 끝, 여름이면 밭고랑에 풀이 자라지 못할 만큼 잎이 무성해지고 8월 말복 즈음 씨앗만 따주면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다는 것.

대추농사가 힘들어 시작한 작약농사는 작목간, 여기에 작기 조정도 되고, 일손도 덜고, 소득은 더 높으니 도대체 몇 석 몇 조라고 해야할까?

홍순기·김몽순씨 부부는 속리산 둘레길 구간인 이곳 경지 주변을 가꾸는데도 관심이 크다. 작약꽃이 진후 여름에는 흰색과 보라색의 예쁜 도라지꽃이 주변을 물들인다고 한다. 그냥두면 잡초만 무성해지는 밭둑과 밭둑의 사면에 예쁜 꽃까지 볼수 있는 도라지를 가꾸기 때문이다.

홍순기·김몽순씨 부부는 "작약꽃을 심은 이 구간이 속리산 둘레길 구간이예요. 초봄이면 유채, 봄 작약, 여름 도라지, 가을 메밀 등 경관작물을 둘레길 주변에 식재하면 이곳을 찾은 탐방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군에서 이런 작업을 하면 좋갰다고 덧붙였다.

"위로 딸만 내리 5명을 낳고 저를 낳았는데 아들을 기다렸던 어르신들이 실망해서인지 몽땅 딸이라는 뜻으로 제 이름을 몽순이라고 지었대요. 그 후 8년 만에 동생을 봤는데 또 딸이예요. 칠공주 집이죠"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를 말하는 김몽순씨는 남편 홍순기씨와의 사이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었어요. 다행이죠"하며 웃었다. 함박꽃처럼 화사한 그 웃음소리가 얼마나 향기롭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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