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톺아보기 ⑬ 주민자치
보은톺아보기 ⑬ 주민자치
  • 편집부
  • 승인 2017.05.25 10:44
  • 호수 3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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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재

장장 3개월 동안이나 지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동안이들 축사밀집문제'가 해결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연로한 어르신들까지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인 결과,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허가를 내준 군 당국은 두 차례에 걸쳐 주민의견을 수렴하고 축산인의 이견을 조율하는 성의를 보였습니다. 군의회는 임시회를 열어 '보은군 가축사육 제한조례'를 개정함으로써 축사문제가 일단락된 것이지요.

이번 일을 통해 모두가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케 되었고, 축산인들도 스스로 책임의식을 갖게 된 것은 커다란 소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어떤 것인지 체험으로써 알게 된 것은 향후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축사문제 해결에 앞장서서 헤쳐나간 마을 이장이 환경개선을 위해 적극 나서는 것은 물론 주민들의 삶에 문제가 발생하면 무엇이든지, 언제든지, 적극 나서겠다는 다짐을 했다지요. 그는 또 말하기를 마을주민들이, 법적 행정적 문제가 없는 사안이라도 실제로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그럴 때마다 “법으로도 안 되고 관청에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며 지레 포기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 함께 고민하고 지혜를 모으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가슴속 깊이 묵직함으로 자리 잡았다는 대목에 이르면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동안이들 축사밀집 문제는 풍취·신함·중동 3개리 외에도 학림·산성·강산·성주·봉평·후평·장신·죽전·수정·어암리 등 보은읍 지역은 물론 마로면과 삼승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그 영향이 미치는 것입니다. 마을 이장께서 환경개선에 나서고 주민들의 삶에 문제가 발생하면 적극 나서겠다고 하시는데, 환경보전은 물론 주민들에게 문제가 발생할 때 나서기보다는, 예상되는 문제를 미리 찾아내서 예방하는 능동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한걸음 더 나아가 주민들이 원하는 것,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필요한 사항을 발굴하여 관철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다면 어떻겠습니까.

정부, 지자체 등 위로부터 내려오는 정책, 지원 사업을 피동적으로 수행하기보다는 신함리 마을고유의 경쟁력 있는 사업 또는 앞에서 열거한 여러 마을이 연대하여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일 수도 있고, 보청천 유역이나 읍·면단위로 차별화 된 사업을 스스로 찾아내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아마도 이러한 취지의 공동체가 보은군내에도 있을 것입니다만, 필자는 이웃 옥천군 안남면의 사례를 참고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 보죠.

위에서 내려온 '제도적 공공성'이 아니라 아래에서 길어 올린 '생활의 공공성'이 발현된 것으로 환경부의 정책을 끌어냈다. 안남면이 시작하면서 환경부는 상류지역 지원사업 방향을 일부 전환했다. 안남면의 대단위사업 예산은 해마다 1억5천만 원 가량 된다. 주민들은 먼저 논의기구를 만들었다. 12개 마을 이장, 12개 마을회 추천 주민 등 24명이 지역구라면 자율방범대장, 체육회장, 새마을부녀회장, 풍물단장, 생활개선회장, 주민자치위원장 등 15명 정도가 비례대표 격으로 참여해 40명 내외의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라는 주민 평의회가 만들어졌다. 스스로 공론장을 만든 것이다.

읍면동 단위 의사결정 구조는 대부분 면장, 동장을 중심으로 좌지우지하는 게 현실이지만, 안남면은 주민 스스로 구심을 단단히 잡았다. 지역발전위원장은 위원들이 직접 선출을 했고 면장은 주민들의 논의를 들었다. 이는 기실 행정자치부가 추진하려는 읍면동 주민자치의 가장 강력한 모델이다. 이는 그동안 수많은 지자체에서 만들어온 '들러리식' 거버넌스 위원회라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도와준다'는 협치가 아닌 '스스로 한다'는 자치의 구심으로 움직거린 사례다. 매달 회의를 했고, 2주에 한 번씩 운영위원회를 했다. 지금은 '안남지역공동체'라는 사단법인으로 진화했다.

맨 처음 한 사업은 안남면의 10년, 20년 뒤 미래계획 수립. 농업과 농촌 두 분야로 나뉘어 설계했고 끊임없이 전문가 집단과 논의해 만들었다. 이 사업계획으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응모해 50억 원 가까운 공적 재원을 끌어와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스티커 붙이기를 하는 등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마을 무상버스를 만든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민이 스스로 운영하는 배바우작은도서관, 민이 직접 만든 한글문해 어머니학교, 마을신문도 만들었다. 스스로 축제도 기획해 매해 가을 '작은 음악회'도 수년째 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패를 가르고 갈등과 분열이 있었지만 그들이 사라진 뒤 주민들의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공고해졌다. 이 뿌리들이 든든하게 자라고 확장돼 농림부가 법제화하려는 농업회의소와 같은 군 농업발전위원회를 만들었다.

권력이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스스로 각인하지 않는다면 늘 패배는 정해져 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누구에 의해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적으로 연대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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