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미당리(美堂里)
다시 미당리(美堂里)
  • 편집부
  • 승인 2017.05.18 11:01
  • 호수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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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당리(美堂里)'는 1946년 7월 종합교양잡지인 '대조'에 발표되었다. '대조'는 1946년 1월 1일 창간되어 1948년 12월 15일 통권 28호를 끝으로 폐간이 된다.

오장환이 그토록 열망하던 조선이 독립되었지만 광복의 기쁨도 잠시 신탁통치 결정은 좌우의 극심한 대립과 여론의 분열을 가져와 사회는 점점 혼란스러워갔다. 그 틈을 이용하여 무슨 본부, 무슨 당이 생겨났는데 '대조'는 특별히 어떤 당의 편을 들지 않고 공정할 것을 밝힌다. 하지만 좌익계열로 분류된 문인이 쓴 글은 찾기가 힘들었다. 대부분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있는 서정주, 김동인, 최정희 등 우익계열 인물이 참여하였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익의 입장을 대변한 잡지였다.

'다시 미당리(美堂里)'를 도종환 시인은 "이 시는 방황 끝에 돌아온 자식을 큰 사랑으로 대해주는 사모곡이다. 어머니의 사랑에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는 자신에 대해 쓴 시다" 라고 말한다.

오장환은 '다시 미당리(美堂里)''어머니 서울에 오시다','어머니의 품에서'등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 사랑을 시로 썼는데 공교롭게도 세 작품 모두가 1946년 작이다.

1946년 '조선문학과 동맹'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고 오장환과 함께 서정주도 참여한다. 하지만 서정주는 '조선문학과 동맹'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선청년문학가협회'로 옮겨 간다.

일제강점기를 문학의 암흑기라고도 하는데 시인 오장환은 그 시절을 '인간 최하층의 생활을 하면서도, 아주 구할 수 없는 곳에까지 이르지 않았던 것은 천만다행으로 시를 영위하였기 때문이다.' 말하고 있다. 친일 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던 오장환의 생활은 궁핍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고통에는 미당 서정주와의 결별도 포함이 되어 있으리라. '시인부락'동인으로 만나 서정주의 첫 시집 '화사 집'을 오장환은 직접 만들어 줄 정도로 서정주에 대한 우정이 깊었다. 서정주를 너무나 좋아했던 오장환은 미당이 하숙하였던 보안여관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드나들었다고 한다. '정주에게 주는 시'로 서정주가 힘들 때 위로를 하였던 오장환 시인이다. 그러나 서정주의 친일 시 발표 이후 그 관계가 소원했던 오장환은 조국의 광복 후 서정주의 호 미당을 시의 제목으로 넣어서 발표한 것에는 어떤 연유가 있는 건 아닌지.

물론 한자로는 다르다. 서정주의 호 '미당'은 '아닐 미' 자에 '집 당' 자를 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완성되지 못한 집'이란 뜻이 된다.

오장환의 미당(美堂)은 아름다운 집, 즉 오장환 시인이 살고 싶은 집은 아닐까. 다만 그곳에 미당 서정주가 없음이 너무나 커서 복받치는 슬픔을 누르지 못하는 오장환의 심경을 그러나 당신은 언제든 괴로움에 못 이기는 내 말을 막고 이냥 넓이 없는 눈물로 싸주시어라.

'다시 미당리(美堂里)'가 '다시 미당(未堂)'으로 읽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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