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촉도(歸蜀途)
귀촉도(歸蜀途)
  • 편집부
  • 승인 2017.04.27 11:22
  • 호수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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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廷柱)에게 주는 詩-

'귀촉도'는 오장환 시인이 만주의 서정주를 만나고 난 뒤에 쓴 시로 월간 '춘추'(1941. 4)에 발표했다. 당시 서정주 시인은 만주에서 양곡 상회 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오장환은 서정주의 첫 시집 '화사집'을 직접 만들어 줄 정도로 사이가 각별하였기에 만주에서 만난 서정주의 모습이 눈에 자꾸 밟혔을 것이다. 오장환은 '귀촉도'의 전설을 차용해서 우리 민족이 처한 당대의 상황을 가장 적확하게 짚으며 부제까지 달아 용기를 잃지 말라는 위로의 마음을 서정주에게 글로 전했는데 그 시(詩)가 '귀촉도'다.

첫 연의 '파촉(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 리(西域 三萬里).' 라고 했는데 '서역 삼만 리 파촉(巴蜀)길은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행과 행 사이에는 마음만 있으면 돌아갈 길이 있음을, 즉 조국의 주권회복을 예견하고 있다.

3연에서는 어렵게 번 돈을 장안의 술값으로 써 버릴까, 걱정하는 마음과 만류를 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서정주의 꿈과 희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오장환은 서정주의 희망이 잘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면서  '새벽별 모양, 빤작일 수 있는 것일까, 로 마무리 한다.

서정주도 월간 '춘추'(1943, 10)에 같은 제목의 시를 발표한다. 그런데 발표 시(詩)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물론 시의 제목은 같을 수가 있다. 하지만 두 시를 비교해 보자면 오장환은 '파촉(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 리(西域 三萬里).' 라 하였고, 서정주는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로 문장을 뒤집었다. 이 구절은 누가 보아도 서정주가 이미지 차용했고, 또는 모방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시인은 '주고받은 시에서 차용은 허락되는 관례이기 때문에 몇 군데 이미지가 추출되었다고 모방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라고 말하지만 서정주는 어떤 사연인지 '귀촉도'에 답 시(詩)로서 정확하게 표기하지 않았다. 분명하게 문제가 있는 서정주의 '귀촉도'임에도 불구하고 시(詩)의 발표 연대를 명확하게 읽지 않은 사람들은 부제 -정주(廷柱)에게 주는 詩- '귀촉도'가 반대로 서정주의 시를 차용한 것처럼 오답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오장환의 묵시적인 동의나, 허락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서정주는 귀촉도를 두 번째 시집 표제로 삼았다. 자신의 전부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벗 서정주가 그 보다도 더한 것을 요구해도 오장환은 기쁨 마음으로 주지 않았을까?

일제 강점기 단 한편의 친일시도 쓰지 않았던 오장환은 서정주가 변절을 하면서 관계를 끊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가 혹 자신의 시집에도 넣지 않은 도둑맞은(?) -정주(廷柱)에게 주는 詩- 귀촉도(歸蜀途)때문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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