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단상(斷想)
봄날 단상(斷想)
  • 편집부
  • 승인 2017.04.20 10:38
  • 호수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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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인

봄날이 참 아름답습니다. 산에는 진달래가 분홍 미소를 보내고 냇가에는 버드나무가 푸른 머리카락을 바람에 부드럽게 날리고 있습니다. 강물은 평화롭게 흘러가며 태고의 노래를 부르고 길가에는 벚꽃이 굽이굽이 뭉게구름을 피워 올립니다. 들판 이곳저곳에는 벌써 부지런한 농부의 정직한 땅방울이 맺혀 있습니다. 때맞추어 봄비가 알맞게 내려주니 산과 들에 근심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시화연풍에 대한 기대감이 높습니다.

  혹독한 겨울이 물러가고 생명의 봄이 활짝 펼쳐지는 요즘의 풍경을 보노라면 왠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자연이 치열하게 마련해주는 이 아름다운 변화에 인간은 그저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겨울의 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한 일이란 것은 오직 더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지구에 더 무거운 부담을 안겨준 것 뿐 입니다.

드넓은 자연의 변화보다 더 거센 변혁의 소용돌이가 대한민국을 휘감고 있습니다. 탄핵정국을 통과한 열차가 마침내 대통령 선거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원내 정당의 경선을 거친 다섯 명의 후보가 연일 토해내는 각종 공약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그리고 마음을 때로는 시원하게 또 때로는 불편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긴장되고 복잡한 과정을 유권자인 국민들은 차분한 마음으로 꼼꼼하게 지켜보면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봄날 오는 5월 9일 냉철한 마음으로 막중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 자체가 한 편으론 즐겁고 또 한 편으론 역사의 무게감에 엄숙해집니다.

이번 대선은 희한한 선거가 되어 버렸습니다. 유력한 여권 후보가 없고 오히려 야권의 두 후보가 유력 후보로 뛰고 있는 상황입니다. 판이 이렇다 보니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단골 양념이던 북풍과 관권 개입의 시비가 끼어들 여지가 아예 없는 말 그대로의 공명선거, 정책선거가 될  전망입니다. 다만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두 유력후보간의 흠잡기 식 과열 경쟁이 선거판을 지저분하게 만들지나 않을 까 하는 우려입니다. 모쪼록 두 후보자는 말 할 것도 없고 두 후보자가 속한 진영 모두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언행을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도 선거의 본령인 정책과 각 정책간의 차이점과 실현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고 시시콜콜한 선정적 보도는 삼가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품격은 결국은 그 국민들의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수행하는 외교행위가 상대국가로부터 그 국가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한반도와 관련된 사안들이 당사자인 대한민국의 입장이 존중되지 않는 상황에서 논의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기이고 수치입니다. 요즘 한반도를 에워 싼 강대국들 간의 행태를 볼 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쾌하고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 진일보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후보자를 선택하는 길이 이런 불쾌감과 불안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활짝 피었던 살구꽃이 속절없이 지는 것을 바라보자니 가슴 한 쪽이 허전해집니다. 안쓰러운 마음에서 살구나무 밑둥치를 쓰다듬다가 허공에 연분홍 꽃잎이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날벌레들이 많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부지런한 거미가 벌써 줄을 친 것입니다. 거미줄에 걸린 꽃잎을 보며 문득 이재용씨와 박근혜 전대통령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는 혼자 나지막하게 이렇게 읊조렸습니다. "부지런한 거미는 봄의 풍류를 즐기는데 탐욕스런 두 사람은 스스로가 친 정경유착의 그물에 걸려서 나라를 어지럽히고 자신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구나."

이씨가 나뭇가지 어딘가에 기대어서 거미도 봄의 정취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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