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부
  • 승인 2017.03.23 10:58
  • 호수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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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소가 간다.

큰 허리를 온통 동바로 떠가지고 장거리로 끌리어간다.

저 순한디순한 소는 주인을 받은 것이다.

장거리 장사꾼들은

저녁상머리에서 이를 쑤시며

저 눈 큰 짐승의 맛을 이야기할 것이다.

잔뼈가 굵도록 다만

혀가 빠지게 부리운 저 소

순하디순하게 생긴 에미령한 눈

저것은 지금 눈을 끔벅거리며 어딘지도 모르고 끌리어 간다.

한번 메 하고

외쳐보도 못한

저 소는 주인을 받은 것이다.

그냥 쟁기를 끌고

숨가쁘게 매질만 받았다면

이 어려운 겨울을

그래도 콩꺼풀과 여물로 편안히 쉴 수  있었을 것을……

저기 소가 간다.

큰 허리를 온통 동바로 떠가지고

그 뒤에는 저 소보다 순량한 농군들이 채찍질을 하며 뒤따라간다.

그 유하디유한 무리들

저기 소와 같이 에미령한(**) 눈을 가진 농사꾼은

주인을 받은 큰 소를 벼르며 벼르며 장거리로 끌고 간다.

아 저것이 끌려가는 소고 끌고 가는 농사꾼이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자산목록 1호다. 쟁기질·써레질에 달구지도 끌어야 하고, 소처럼 제 몫을 강도 높게 하는 동물도 없는 듯하다. 24절기 중 네 번째가 되는 춘분이면 농촌이 바빠진다. 덩달아 소의 울음소리도 잦다. 

그 집의 사는 형편만 봐도 소가 있는지 알 수가 있을 정도다. 동네 어른을 만나면 '진지 잡수셨어요'가 인사였으니 그야말로 소 한 마리 갖는 것이 평생의 소원인 시절이다.

소를 키우다 보면 엉덩이에 뿔이 난 것도 아닌데 유난스러운 녀석이 있기 마련이다. 소를 잘 다루는 사람이 나서는 보지만, 주인에게 물색없이 위협을 가한 에미령한 눈의 소처럼 장마당 행일 때도 있다.

경운기와 트렉타 등 농기구가 소의 일을 대신하면서 농촌 들녘에서 나른한 오후를 깨우는 소의 울음소리는 이제 없다. 정겹기만 한 한국의 소리 한 가지가 사라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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