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0.05.13 10:14
  • 호수 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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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길따라 … 둘레산행 4구간 : 피반령~498.0봉~먹티~378.0봉~왕재~염티고개(도상 10㎞)
▲ 피반령 정상에 선 산행 참가자들.

본사와 속리산악회(회장 조진)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보은군 둘레산행 5월 산행이 지난 9일 실시됐다. 산행 길에 오른 사람은 총 14명. 25명, 못해도 20명은 산행에 동참했던 것에 비하면 산행에 동행한 숫자가 너무 저조하다.

논 삶으랴, 모내기하랴, 고추묘 이식하랴, 고구마 심으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영농철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게다가 이날 남부3군 생활체육대회까지 열렸으니 산행을 하고 싶어도 대회참가 때문에 부득이 하게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람까지 생겨 산행 참가자는 더 준 것이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로부터 잘 다녀오라는 정중한 인사를 받고 집결지인 보청천 하상주차장을 출발해 산행 시작지점인 피반령(皮盤嶺)으로 향했다.

온도가 낮아 온풍기를 팡팡 틀어놓았을 정도로 기온이 낮았던 것이 불과 2주 전이었는데 산하는 이미 봄옷도 더운지 성급한 놈들은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 날 우리는 자연이 빚어낸 색채의 마술, 싱그러운 초록세상을 두 눈 가득 담아왔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산행을 시작한 피반령은 해발 360m. 종전 같으면 산 아래에서 죽어라고 바로 360m까지 올라야 했을 그 높이를 우리는 편하게 차량을 타고 왔으니 이번 산행은 시작부터 수월했다.

보은과 청원군의 경계인 피반령 주변 산 능선은 청주, 청원주민들의 주말마다 아니면 시간이 날 때 자주 찾는 주요 등산코스여서 등산로는 산책로처럼 사람들의 발길로 잘 다져져 있었다.

물기를 가득 먹은 나뭇잎들이 초록 그늘을 만들어줘 자외선 걱정 없이 산책하는 기분으로 등산을 재촉했다.
여름같은 봄 날씨여서 곧바로 몸이 후끈 달아올랐지만 초록 그늘이 드리워진 행운 때문에 크게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진달래가 지고 난 산속은 철쭉꽃이 천지였다. 그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진분홍 빛이 아니다. 하얀색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분홍빛도 아닌 것이 뭐라 색감을 표현할 수 없는 철쭉꽃에게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3년 전. 그 때도 보은군 둘레산행 때였는데 산외면 대원리 뒤쪽에 위치한 검단산 구간에서 바로 이 연분홍빛깔의 철쭉꽃을 보고 감탄했던 것이 생각났다. 철쭉꽃 터널이 장관이었다.

산행하는 내내 3년 전에 걸었던 검단산 구간의 연분홍빛깔의 바로 그 철쪽꽃 터널이 선하게 그려졌고 엄마가 불렀던 노래가 입가에 맴돌았다.

누구 노래인지도 모르는 그 노래는 바로 이 소절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부여잡고…"

연분홍 철쭉꽃은 구간 내내 흐드러지게 펴 있어 그 꽃을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산행이었다. 등산을 다녀온 지금도 철쭉꽃의 잔향이 남아 있다. 완전히 그 철쭉에 "필이 팍 꽂혔다".

 

◆"심봤다" 행운도 건져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피반령 구간은 단풍이 유난히 곱다. 소나무 보다는 참나무 등 입사귀가 넓은 나무들이 많아서 인지 곱디고운 단풍이 눈을 빼앗아가는 곳이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던 바로 그 구간을 두 발로 걸었다.

참나무 종류가 많아서 인지 등산로는 참나무 잎이 천지다. 평지를 걸을 때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았지만 경사가 높은 곳을 걸을 때면 건조해진 낙엽이 밟혀 부서지는 소리가 완전 소음에 가까웠다.

귀를 맑게 청소하는 산 새 소리가 아니라 적막을 깨는 그 소리가 과하게 표현하면 난청을 일으킬 정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능선이 가파르지 않다는 것. 산마다 완만한 경사여서 오르고 내리는 것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498m봉우리에는 삼각점이 있고 아래쪽에는 누가 만들어놨는지 나무 의자도 있었다. 산행의 피로를 잠시 풀면서 이곳에서 옻 얘기 등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산행을 즐겁게 한 것이 봄나물을 뜯을 수 있었다는 것. 그 중 가장 큰 행운이 산삼 한 뿌리를 채취했다는 것. 가는 줄기가 위로 쪽 뻗었고 다섯 손가락처럼 이파리 다섯 개가 분명하고 고슬고슬한 부드러운 흙살 속에 뿌리를 내린 산삼을 진짜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심마니 고수들이 흘리고 간 산삼을 채취했으니 이보다 더 즐거울 수가. 내년 5월 산행에는 산삼주를 선보인다고 하니 동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고사리도 많았다. 앞서 간 사람들이 뒤에 오를 사람들의 몫으로 남긴 고사리가 의외로 많았다. 저마다 한 두 때 찌개를 끓여먹을 수 있을 정도로 수확이 좋았다. 고사리를 채취하다가 먹티 지점에 다다를 즈음 길을 잃어 주변을 뱅뱅 돌았을 정도니 고사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산 마늘도 천지였다. 언뜻 보기에는 둥글레 처럼 생겼는데 저게 산 마늘이냐는 물음에 주부 9단인 나기연(보은 교사)씨는 산마늘 잎 요리에 대한 설명으로 등산의 피로를 가시게 하는 양념을 친다.

양파 절임 하듯, 깻잎 담그듯 양조간장과 물, 설탕을 섞어 끓여 산 마늘잎을 넣고 담그면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 식당에선가 약간 달콤한 맛의 산 마늘잎으로 밥을 싸서 먹었던 기억이 났다.

남성들은 찬 기운을 이기고 싹을 틔운 옻 순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다. 다들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조진 회장은 옻이 올라 고생했던 것을 기억하며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누구는 처가에서 옻닭을 먹기 전 기름은 아니었지만 꼭 기름 같은 그 무엇을 한 잔 마셨는데 그 이후로 탈 없이 옻 요리를 먹는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것이 옻 진이었다고 한다.  산에서 나고 자라는 것들이 사람이 먹으면 생명까지 해하는 독초도 있지만 자연은 우리에게 무한정 식량을 제공하는 것 같았다.
자연의 싱싱함을 눈에다만 가득 담아 왔지만 생기가 돌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길은 사람과 사람 문화를 이어줘
피반령~498.0봉~먹티~378.0봉~왕재~염티고개 구간은 보은군 회인면 오동리와 용촌리, 용곡리, 회남면 남대문리이고 이웃하고 있는 지역은 청원군 가덕면 청룡리와 문의면 마구리, 마동리, 묘암리, 염티리다.

이중 문의면 마구리와 마동리는 먹티고개를 이용해 회인면에 닿았고 염티리는 염티고개를 넘어야만 회남면에 닿을 수 있었다.

모두 문의면에 소재한 학교를 다니고 문의 장을 이용했지만 주민등록 등초본을 떼는 등 행정업무를 보기 위해 마동리와 마구리 주민들은 먹티고개를 넘었고 염티리 주민들은 염티고개를 넘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 지역 주민들이 문의면 편입을 요청해 1989년 행정구역을 개편해 3개 마을을 모두 문의면에 편입시켰다.

이는 보은군의회가 개원하기 전에 일어난 일로 만약 그 때 지금처럼 의회가 있었다면 아마도 구역 조정은 어려웠을 것이다. 경북 용화가 보은군이 생활권이지만 경북에서 놓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번 산행의 특징은 고개로 시작해 고개로 하산한 것이다. 첩첩산중에서 길을 만난 것이다. 피반령이 있고 회인면 용곡2리 쇠푼이(佳亭子)에서 청원군 마동리로 이어지는 먹티(墨嶺, 먹령이라고도 함)와 장고개도 있다.

청원군 가덕면과 보은군 회인면과 경계를 이루는 피반령은 회인현에서 청주목, 한양으로 향하는 중요한 고개다.
오리 이원익 선생이 6월에 경주목사가 되어 부임하는데 지방관아의 으뜸 관리인인 경주호장이 청주까지 네 사람이 메고 가는 가마 마중을 나와 이원익 선생이 그 가마를 타고 가던 중 문제의 피반령을 만났다.

이 때 호장이 목사의 재치를 실험할 겸 머리를 써서 "가마로 고개를 넘으려면 가마꾼들이 피곤해 회인에서 유숙을 해야 한다"고 속였고 이원익 선생은 빨리 경주에 당도해 업무를 처리하려는 마음으로 호장의 말을 순순히 듣고 가마에서 내려 걸어서 넘는데 호장이 목사를 살피며 웃는 것을 보고 자신을 속인 것을 알았다.  그러자 이원익 선생도 호장에게 "내가 걸어서 넘으면 너는 마땅히 기어서 넘어야 한다"고 명령했다. 호장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 험난한 고개를 기어올라 손바닥과 무릎에서 피가 나왔을 정도다.

결국 회인에서 하루 유숙하고 보은으로 가는 도중 다시 험한 고개를 만났는데 장난을 치면 또 기어서 넘으라고 할까봐 호장이 나무를 베어 수레를 만들어 이 고객를 넘었다고 한다. 그 뒤부터 '피발령'이 되었고 수한면 차정리 수리티는 수레로 넘었다고 해서 '수레티재'라고 했는데 한문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피발령은 '피반령'으로, 수리티재는 '차령'이라 표기했다고 한다. 지금 이 고개는 청주와 보은을 이어주는 중요한 고개다.

먹티고개는 쇠푸니 북쪽에 있는 고개로 회인에서 청원군 마동리를 거쳐 문의로 넘어가는 고개다 힘센 장수가 나올 혈이기 때문에 이여송이 이 산을 칼로 쳤을 검은 피가 흘렀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또 장고개는 용곡리와 신대리, 죽암리와 송평리 주민들이 회인장보다 규모가 컸던 문의장, 신탄진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이다.

용곡3리 김동근 노인회장에 의하면 쇠푸니(용곡2리) 서북쪽에 있는 장골 주변에서 나무를 해서 장고개를 통해 문의장에 나무를 내다 팔아 필수품을 구입하고 이웃 사람들도 만나는 소통의 장이었다고 회고했다. 3, 40년 전의 일이라 골짜기는 나무들이 무성해 길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고갯마루는 평평해 고개였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들 고개는 모두 산을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지만 이웃마을과 소통하기 위해 최단거리가 될 수 있는 곳에 길을 낸 것이다.

지금은 고개를 터널로 연결하고 있는데 피반령 고개 역할을 하고 있는 고속도로 피반령 터널은 회인면 용촌리 갯골을 지나 청원군 문의면 마구리 두만이 마을로 이어지고 있다.
첩첩산중에서 만나는 길로 인해 산꾼들은 안도감을 갖는다. 장고개 먹티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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