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재발견…속리산둘레길(3구간)
보은재발견…속리산둘레길(3구간)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6.11.17 14:57
  • 호수 36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름 물소리는 사각거리는 갈대가 끌어안았다

■ 달천들녘길 : 구 법주분교~속리산 알프스 휴양림(14.5㎞)

 

"세상에 이럴 수는 없다. 어찌 하고 만은 날 중에 이날은 잡았나?"
지난 11월 12일 토요일 속리산둘레길 보은권역 4개 구간 중 3구간을 걷는 날을. 여러 일정이 겹치는 날이었다.
보은군민 체육대회, 시사(時祀), 김장김치 담기, 결혼식 등등. 이런저런 핑계(?)를 댈만한 행사가 집집마다, 개인마다 참 많은 날이었다.
자칫 걷기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본사 직원과 둘레길 안내를 담당하는 김진성 숲길 체험지도사 선생님만 걸을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반갑게도, 고맙게도 도깨비지역아동센터 최은경 센터장님이 초등학생과 아이들의 도우미들이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귀별을 해왔다.
휴 다행이다. 2명이 걸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일단 할 수 있으니. 그렇게 3구간 걷기 준비단계 부터 했던 마음고생은 일단 접을 수 있었다. 자 이젠 달천 들녘 길을 걷는 것이다. 얘들아 출발해볼까?(편집자 주)

 

 

 

► "선생님 지겨워요, 힘들어요"
들녘은 가득 채웠던 곡식을 거둬들여 빈들이다. 논은 바닥을 드러내고 주렁주렁 열렸던 대추와 사과나무도 알맹이 대신 된서리를 맞아 색이 죽은 이파리만 달려있다.

그래서인지 11월 중순 빈들의 을씨년스런 날씨는 어른들에게는 더욱 춥게 다가왔다. 어른들의 체감온도높이로 보니 어린이들도 당연히 춥게 보인다. 그런데 아이들은 "안 추워요" 하며 씩씩하게 걷는다. 발랄하다.

토요일, 늦잠 자고 오락이나 만화영화를 보는 달콤한 휴식시간을 빼앗겼는데도 아이들은 보은고등학교 봉사동아리인 유니크 언니, 오빠, 형, 누나들과 함께 군소리 없이 잘 걷는다. 누가 이기는지 내기라도 하듯 냅다 달리기도 한다.

그러다 숨차면 멈춰 쉬면서 뒤로 처져 지들 얘기를 하며 까르르 웃는다. 아이들은 웃음이 많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웃음이 없을까? 아이들 때문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밝아진 날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잠시나마 자연공부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 얘들아 이건 서리태라는 콩이야, 얘들아 이건 민들레꽃이야, 얘들아 이건, 얘들아 이건…, 이거 뭔지 아는 사~람~? 길동무인 김진성 숲길 체험 지도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이런저런 식물을 가리키며 자연을 알아가는 시간을 만들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아이들의 인내심, 집중도에 한계가 왔는지 "선생님 지겨워요" 라고 말을 한다. 얼굴엔 그만 걸었으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도깨비 아동센터 최은경 센터장은 "얘들아 1시간은 걸어야 되지 않겠니? 한 번 걸어보자"고 아이들을 다독이고 "우리 점심 맛있는 것 먹자"고 꼬드기며(?) 걸음걸이를 계속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구 법주분교에서부터 속리산면 하판리 원두막 쉼터까지 1시간을 걸었다.

얼마나 대견하고 고맙던지….

 

 

► 달천엔 갈대와 '달뿌리'가 지천이더라

달천들녘 길은 한마디로 밋밋했다. 그런 길을 아이들이 1시간을 걸으니 얼마나 재미 없었을까? 구 법주분교와 상판교를 지나 하천변 제방 길을 그냥 걷는 것이다. 보은군이 시행하는 달천 고향의 강 사업이 진행돼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를 함께 조성하는 구간이고 또 공사 구간이더라도 이미 자전거도로가 조성돼 있는 곳이었다. 하수종말처리장을 지나 중판 문화마을을 지나기 위해 연결한 산길과 백현리를 지나 백석리 은점마을 앞 산길과 임도, 그리고 장갑1리부터 알프스 휴양림에 닿는 구간의 짧은 산길을 제외하면 그냥 하천제방도로다.

길은 넓다. 길이지만 도로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보였다. 하천엔 억갈대와 달뿌리가 지천에 갈려 있다. 많은 곳은 하천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차있다. 갈대꽃이 만개해 좀 있으면 꽃잎이 다 떨어질 것처럼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갈대와 달뿌리가 덜해 하천이 드러난 곳을 보니 맑은 냇물이 풍부하게 흘렀다. 정화기능이 탁월하다고 하는 달뿌리와 갈대가 빼곡한 하천을 통해서인지 초겨울로 향하는 길목의 달천 물은 깨끗해서 둘레길을 걷는 이들에게 개운함을 선물로 안겨줬다.

달천 들녘길 주변은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몰리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자가 걸으면서 피서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 발견됐다. 만약 둘레길이 없었다면 이곳이 처음인 기자와 같은 사람들은 접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는데 중판리 아래 둘레길 건너편으로 산과 연접된 냇가엔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가 드리워져 있어 이곳에 텐트치고 무더위를 피하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조용히 캠핑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곳이다.
 

 

► 역시 숲길, 산길이 좋다

하천 제방도로를 얼마를 걸었을까 좀 지겹다 싶을 즈음에 산으로 접어드는 산길이 나왔다. 이제야 좀 둘레길 다운 길인 것 같다.

산길은 백현리를 지나 백석리를 보면서 걷는 동안 입문하게 된다. 장안면 장재리에 있는 말티재를 박석(薄石)티라고도 하는데 돌을 얇게 깔아서 길을 낸 고개라는 의미인데 이곳도 산에 있는 돌을 깔아서 바닥을 만들어 길을 냈다.

박석로(薄石路)가 끝날 즈음, 3단의 계곡이 나왔다. 비가 온 뒤가 아니어서 물은 소량이었지만 생각지도 않은 곳에 계곡이 있어 색달랐다. 그리고 약간 경사가 있는 숲길로 이어지고 이어 닦은 지 오래된 백석 임도로 연결됐다.

낙엽이 만든 길은 폭신폭신 쿠션까지 느껴져 걷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상수리, 굴참나무, 졸참나무 잎이 만든 참나무 낙엽 길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삭바삭하니 소리까지 맛있다. 그리고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곳은 낙엽송의 낙엽이 소복소복 쌓였다. 꼭 소리없이 내린 눈처럼 보드라웠다.

장갑리를 지나 신정리 휴양림으로 이어진 둘레 길에서는 그동안 몰랐던, 감춰져 있던 장갑리의 새로운 경치를 볼 수 있었다. 바닥에 암반이 드리워져 있는 계곡 같은 개울가에 옛 조상들이 경치가 빼어난 곳에 정자를 지어 풍류를 즐겼던 것을 흉내낸 정자가 있었다. 1996년경 지어져 역사성이나 건축미 등은 없지만 과거처럼 시를 읊고 정사를 논하는 것 까지는 아니라도 동네 주민들이 이곳에서 유유자적하게 더위를 피했을 것 같다.

이 쇠락한 정자 건너편, 즉 둘레길 건너 새말 동네에는 동네 아낙들이 토속신앙으로 섬기던 서낭바위가 있다. 그런데 부정을 타서일까? 1980년 홍수 때 서낭바위가 물을 좌측 둑 안쪽으로 역류시키자, 당시 마을에서는 장갑 들 새마을 보의 집수 면적을 크게 하고 홍수예방 의도로 수해 복구 때 다이너마이트로 깨뜨렸는데, 서낭바위를 터트린 사람은 3개월도 못 살고 죽었다는 안타까운 얘기도 전해져 오고 있다.

이같은 마을의 전설을 기억하며 민박집이 이어지는 개울가를 따라 걸으면 3구간 중 이번 걷기의 종점으로 정한 충북알프스 휴양림 입구에 다다른다. 언제 걷나하는 중압감으로 다가온 14.5㎞ 구간 걷기는 걷다보니 이렇게 마무리 됐다.

 

► 개선할 점

3구간을 걸으며 아쉬운 것은 제방도로가 너무 길다는 것과 원두막 같이 돈이 많이 드는 시설이 아니더라도 중간 중간 그루터기나 바위돌 등이 없다는 것. 일정 부분 걸어야 경우 원두막을 만날 수 있는데 그 길이가 너무 길다. 조망 포인트나 중간 중간 전설이나 이야기 거리 등이 담긴 해설판이 있으면 지루함이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또 백현리는 제방도로로 통과하기보다는 동네 안으로 들어가 1906년 천주교 신자들이 토굴생활을 하고 옹기를 구우며 신앙생황을 했던 보은군의 대표 공소가 있었던 마을이라는 역사도 느끼고 37번 국도가 현재의 도로로 개설되기 전 속리산과 산외면을 이었던 야트막한 잣고개, 성고개를 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여기에 사과마을인 산외면 백석2리 은점구간은 동네 위쪽으로 길을 내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발아래로 펼쳐진 마을을 감상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트레킹 족들은 5월엔 온통 하얀 사과꽃으로 물든 마을을 감상하는 깜짝 선물도 제공받을 수 있다. 뜻하지 않은 선물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오래토록 마을을, 그리고 속리산 둘레길의 보은구간을 기억할 것이다.

 

길 안내 : 김진성 숲길체험 지도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