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의 들보
내 눈의 들보
  • 편집부
  • 승인 2016.10.20 11:12
  • 호수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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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결혼식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아내와 함께 스페인으로 떠났다. 올해가 회갑이라 올 초에 아들과 딸이 여행사에 예약하고 용돈까지 두둑하게 주었으니 이 통장 저 통장 잔고를 볼 필요도 없다. 입던 옷 몇 가지 주섬주섬 가방에 넣고는 가장 평안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부부의 따뜻한 정이 온 몸을 감싼다.

스페인은 내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지평선이 보이는 1천미터 이상의 고원지대부터, 올리브나무, 귤나무가 무리지어 있는 끝없는 평원까지 그렇게 넓은 땅인 줄 몰랐다. 2천년 전 로마시대의 성읍부터 지금의 가우디 성가족성당까지 아름다운 건축물이 시대별로 줄지어 서 있는 곳,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함께 공존함으로써 문화의 향기가 더욱 짙어지는 나라, 바로 스페인이다.

나의 평상심을 깬 것은 함께 간 일행의 지나친 시끄러움 때문이다. 여행사를 통한 그룹 여행이다 보니 구성원은 다양했다. 내가 유심히 살펴본 즉 50대 후반부터 60대 여성이 주류였고, 남자는 나를 포함하여 단 2명이다. 차를 타든지, 식당에서든지 함께 온 사람들끼리 모여서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은 우리의 민낯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는 분명 품위가 있는 부인이요 어머니일 텐데 세상 밖으로 나오니 자유부인으로 모두 변신한 것 같다.

"여보,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지요. 이런 저런 사람이 다 함께 공존하며 사는 것이니 긍정적으로 보세요" "당신 말이 옳소.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 왔으니 즐겁게 지내다 갑시다. 그런데 저기 안경 쓰신 분은 좀 지나친 것 같소. 나이가 있으면 좀 점잖게 있지, 이사람 저사람 가르치려고 들고, 마치 자기가 대장처럼 저렇게 큰소리로 이야기하니 듣기가 거북하오. 그래서 옛 말에 나이가 들수록 말을 적게 하라고 했나 보오"

내말이 씨가 되었는지 그 분으로 인하여 일행이 잠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여행하려니 일정이 톱니바퀴처럼 빡빡하게 돌아갔고, 이 분에게는 그런 일정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뒤에서 불평을 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화장실 사용문제로 현지에 있는 안내자와 말다툼이 시작되어 모든 사람들의 여행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고 말았다.

다음날, 말 많은 그분도 분위기가 변한 것을 보고 미안했는지, 아니면 자기 자존심에 흠집이 갔다고 생각했는지 하루 종일 버스는 조용했다. 나는 속으로 깨소금이라고 생각하며 그 분의 옆모습을 흘깃 흘깃 바라보니 입을 꼭 다물고는 차창 밖으로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여 공항에 있는 항공사에 문의할 일이 있어 찾아가니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길게 서 있다. 나는 얼른 두 줄 중 짧은 줄을 찾아 뒤에 서 있으려니 젊은 사람이 나를 보며 자기 뒤에서 서라고 한다. 나는 좀 언짢은 목소리로 "이 줄은 줄이 아닙니까?" "아니죠. 우리가 한 줄로 서 있는데 당신이 새치기 한 것 아닙니까?" "뭐요? 내가 세치기라고요. 그럼 이 줄은 무엇입니까?" 젊은 사람이 나를 한심한 듯 바라보며 한 마디 한다. "줄도 제대로 못 찾는 사람이 웬 말이 이렇게 많아" "뭐야, 당신 몇 살인데 나에게 그런 막말을 하오" 내 음성이 커지자 젊은 사람 옆에 서있던 나이든 분(아마, 어머니인 듯)이 얼른 자리를 뜨며 젊은 사람을 슬며시 잡아당긴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조용해지며 비웃듯 나를 쳐다본다. 그 때다 갑자기 공항 천장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아 어찌 너는 남의 눈에 티는 그렇게 잘 보면서 네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너도 실수투성이 인간인 줄 몰랐느냐? 줄이 한 줄인지 두 줄인지도 제대로 구별도 못하는…"

류 영 철

아동문학가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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