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재발견...속리산 세조길 개통
보은재발견...속리산 세조길 개통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6.09.29 12:04
  • 호수 3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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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둔 속리산의 푸른 속살, 베일을 벗다 … 현대인에게 무위자연이란 휴식 선물
 

푸름이 살아있는 청아한 속리산 오리숲, 세심정 가는 길이 '세조길'로 탄생했다. 법주사 앞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세조길은 목욕소 근처에서 기존 탐방로로 연결된다. 편도 2.35㎞인데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풍부해 치유와 힐링의 공간이 되기에 충분하다.

세조의 피부병을 치료한 맑은 물을 담고 있는 목욕소 인근에 설치된 세조길 입구의모습.

특히 속리산은 피톤치드의 발생량이 치유의 숲 타당성 조사 기준 최고 점수까지 초과한 수치를 얻었고 음이온도 최고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조사된 전국 최고의 산림 치유와 힐링 명소다.

보통 느티나무는 뚱뚱한 밑둥을

자랑하지만 세조길에서 만난 느티나무는

밑등보다 가지되기에 열중한 모습이다.

기존 탐방로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에게 세조길은 '출입금지', '출입제한', '무단 침입시 관련법에 의거 처벌을 받는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문구에서 자유롭다. 그동안 그곳이 얼마나 궁금했는지, 그곳이 주는 풍광은 어떨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무시무시한 경고에 호기심을 꾹꾹 눌러왔었다.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속리산의 속살을 기꺼이 내어줘 걷는 이들은 속리산의 새로운 세상을 선물로 받았다.

새로운 세상이지만 차를 타고 멀리 떠나야만 걸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동네 뒷산 산책하듯 닿을 수 있으니 자연이 주는 호사를 우리는 아주 가까이서 누릴 수 있게 됐다.

세조길은 법주사 삼거리를 지나면 언제나 찰랑찰랑한 물결을 자랑하는 저수지 수변을 따라 이어진다. 저수지 물에 비친 산 그림자, 나무 등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그동안 주왕산 국립공원의 대표적 명소인 주산지에 버금가는 경치를 조망을 할 수 있다. 세조길의 대표적인 사진촬영 명소다.

한반도 지형처럼 보이는 세조길.

1급수가 흐르는 계곡은 목교로 통과해 숲터널로 이어지게 했다. 이 길에 삼거리를 만들어 탈골암 가는 길도 연결해놓았다.

기존 탐방로가 콘크리트로 포장된 문명의 길이라면 세조길은 숲과 숲 사이, 산림과 산림 사이를 교묘하게 잇고 이어지게 만들었다. 바위가 있는 곳, 계곡이 있는 곳엔 나무 기둥을 올려 바위 위로 길을 내고 계곡위에 길을 냈다.

그래서 땅을 딛고 걸을 수도 있지만 공중을 걸을 때도 있다. 땅엔 야자매트를 깔아 푹신하고 공중엔 나무데크를 깔아놓아 타박타박 걸을 때마다 탄력이 느껴지는 게 좋다.

어른 아이, 심지어 휠체어 등 기구에 의지하는 장애인들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서둘러 걸을 필요가 없다.

목욕소 앞에는 누군가 쌓아놓은 아주 작은 돌탑이 앙증맞다.

저수지 여수토 아래에서 법주사쪽으로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철성분에 의해 빨간 녹물이 든 자갈, 계곡에는 양 날개를 활짝 펼친 가오리 모양의 돌멩이, 이유 모를 까만 칠로 분장한 것 같은 돌멩이, 마음을 담아 잔자갈로 쌓은 낮은 돌탑, 눈썹 바위, 지금은 사라져 흔적만 있는 법주사 또다른 절터, 그리고 이름모를 꽃 등…. 세조길을 걸어야만 구경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저수지 아래에서 만난 나무. 용틀임을 한것이 보인다.

부족한 듯 몇 개 설치해놓은 간이의자는 길손들이 휴식을 취하며 간식이며 음료를 맛있게 먹게 해줬다. 또 운동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어서인지 세조길에도 운동기구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아마도 가장 고급스런 헬스장일 듯싶다.

세상엔 많고 많은 길이 있지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여행심과 낭만을 부르는 길은 드물지 않나 싶다. 세조길이 딱 그곳이다. 길 '덕후(한 가지에 과도하게 열광하는 사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었다.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이 있고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인 속리산 법주사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는 세조길은 숲속을 걷는 상쾌함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많은 나무들이 울창한 산속이라 햇살도 막아주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불어오는 바람이 식혀준다. 자연을 벗삼아 걷다보면 어느 새 더위는 잊어버린다.

눈썹바위라고 명명된 것이다. 어떻게 해서 눈썹바위인지....

맑은 공기, 푸른 하늘, 이름모를 산새의 지저귐, 나무와 흙과 바위, 계곡이 옆지기를 해주는 세조길을 걷다보니 몸 한쪽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던 체증은 어느새 가셔져 있었다. 몸이 가볍다. 머리도 가볍다. 많이 비워내니 다시 채울 수 있는 공간을 산이, 그리고 길이 만들어 줬다.

초록세상에서 찾아낸 꽃분홍색의 꽃이 화사하다.

생김새도, 크기도 다른 여러 나무들이 어울러 사는 숲길을 혼자 걸을 때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되고 여럿이 같이 걸을 때는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도 길러준다.

저수지아래 법주사 부도탑이 있는 인근의 절터도 확인할수 있다.

각박하게 쫓기듯, 피로에 찌든 채 다람쥐 체 바퀴 돌 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세조길은 행복을 채워준다. 그래서 숲길 세조길이 좋다.

 

속리산과 세조의 인연

세조길은 조선의 7대 왕인 세조가 속리산 복천사(지금의 복천암)까지 가는 행차길로 세조 사은(謝恩) 순행길이다.

노년의 세조가 왕위와 권력을 얻기 위해 저질렀던 모든 악행과 잘못에 대해 참회(慙悔)했던 길로 스승인 신미대사를 만나 마음의 안정을 얻고 미래의 강국 조선을 만들 것을 다짐했던 길이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신미대사는 당시 복천사 스님으로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세종의 명으로 석보상절 편찬 작업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 당시 편찬된 책자들은 초기 한글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사용됐다. 현재 복천암에 신미대사 부도탑이 있다.

속리산은 세조와 얽힌 전설이 참 많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 연거랑이 소나무)과 목욕소다.

군지를 참고해서 살펴보면 속리산 입구에 수호신처럼 서 있는 정이품송은 세조가 법주사(복천사) 행차시 연(가마)이 지나갈 때 세조가 '연 걸린다'며 세조의 연을 멘 사람에게 주의를 주자 축 늘어져 있던 소나무의 가지 하나가 신기하게도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피접을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갈 때 이 나무 아래 이르자 갑자가 소나기가 와서 세조 일행이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세조가 친히 소나무에게 정이품(正二品)의 품계를 하사했다고 한다.

법주사와 세심정 사이 계곡을 이르는 목욕소에도 세조와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세조는 속리산에서 피부병에 대한 요양도 할 겸 고승들에게 국운의 번창을 기원하는 법회도 갖도록 했다. 특히 복천암(당시 복천사)에는 유명한 학조대사와 신미, 학열 등 법사들이 모여 대법회를 열었다. 세조는 법회 중 쉬는 시간을 이용해 여러 신하를 물리치고 홀로 산책을 하다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목욕소의 맑은 물에 심취해 목욕을 하는 중 약사여래의 명을 받아 왔다는 월광태자가 나타나 대왕의 병은 곧 완쾌될 것'이라고 하고 사라졌다. 이후 신기하게도 종기가 깨끗이 없어져 이후 세조가 목욕을 하고 병을 고쳤다 하여 목욕소라 불렀다.

또 속리산 법주사는 약 3천여명의 스님이 살았고 60여 채의 건물이 있었던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세조가 속리산을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머물며 스님들과 담소를 나누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던 장소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건물은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지금은 건물 터만 남아있다.

이밖에 정이품송 동편, 즉 새목이 서남쪽으로 정이품송이 서있는 부근의 마을인 진터가 있다. 이곳은 세조의 큰딸과 관련이 있는데 아버지의 왕위 찬탈에 반대해 한양에서 도망치던 중 만난 나무꾼 총각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는 아버지가 죽인 김종서 장군의 손자임을 알게 되지만 두 사람은 속리산에 숨어 살며 가정을 꾸리던 중 요양차 속리산을 찾은 세조일행을 발견한 공주가 아버지 세조를 피해 김종서와 아들과 떠나버린다. 이들을 역적의 무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이곳에 진을 치고 공주의 가족을 쫓았으나 잡을 수 없었고 세조는 자신의 딸이 숨어 살고 있음을 알고 천륜의 정이 쏠렸으나 차마 발설하지 못했다고 한다.

 

속리산을 노래하다

길 곳곳에 옛 선인들이 속리산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시조 등을 적은 게시대를 설치해놓기도 했다.

화담 서경덕이 속리산 아래에서 쉬다라는 제목의 5언절구로 속리산에서 속세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노래한 시도 감상할 수 있다. 또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원로대신 김종수가 속리산으로 장기여행을 떠나자 봉조하김종수속리지행삼수 중 두 번째 시로 속리산을 그림 그리듯 노래했다.

또 실학자 이익은 친척 이성환(1689~?)이 보은현감으로 나가자 속리산의 경관을 옥산(玉山)에 비유한 시도 감상할 수 있다. 그동안 간과했던 아니 몰랐던, 이같은 속리산에 대한 보다 풍부한 지식 정보는 세조길 개통이 주는 덤이다.

고즈넉한 산사마저 자연이 된 속리산 세조길은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던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준다. 그래서 걷는다.

송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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