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재발견…속리산 둘레길(1구간)
보은재발견…속리산 둘레길(1구간)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6.08.24 23:53
  • 호수 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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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자연의 속도로 심신을 치유하다
 

이런저런 이름을 붙인 길이 많다. 옛날 나무 짐꾼들이 다니던 길부터 버섯을 따느라 누볐던 길,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이 넘던 길 등 길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참 정감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길들이 펼쳐놓은 그림을 줍다보면 아마도 전국 팔도 안가보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 장장 9시간 먼길을 돌아 안내센터에 도착한 둘레길 길꾼들이 유종의 미를 거둔 의미로 파이팅을 외쳤다.

보은군과 괴산군 상주시와 문경시에 걸쳐있는 속리산의 둘레를 하나의 길로 연결하는 속리산둘레길도 닦고 있다. 이중 보은구간은 이미 길이 완성돼 간간이 사람들의 발길이 찾아든다. 아직은 제주도의 올레길처럼 인파가 몰리지는 않아 한적하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본보 주최로 시행될 속리산 둘레길 보은구간 도보여행이 지난 8월 20일 시작됐다. 구병산 옛길로 이름지어진 1구간은 마로면 임곡~적암~갈평~수문~장안 불목~봉비~개안리 대추홍보관(안내센터)까지 총 14.2㎞에 달한다.

▲ 일명 콧구멍 다리라 불리는 적암천내 세월교. 말목재를 넘어 적암리를 오갈때 사용하고 있다.

둘레길 걷기를 시작한 지난 20일에는 폭염으로 한반도가 들끓었지만 얼음물 하나 끼고 걸으니 그런대로 걸을만 했다. 이 더위에 해냈다는 뿌듯함이 주는 쾌감이 컸다.

연일 34, 5도가 넘는 불볕더위에도 역사적인 첫 걷기대열에 이름을 올린 군민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 칡이 천지다. 적암리 마을을 돌아 갈평리로 향하기전 굴다리 칡넝쿨이 커튼처럼 늘어져 있다.

구간걷기를 선도한 김진성 숲길체험 지도사가 마을의 지명에 담긴 뜻, 지형, 그리고 비지장 문화재 등 지역 자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지역에 살면서도 지역을 모르는 길꾼들에게 소중한 정보가 됐다.

 

# 퀴즈, 이름 하나에 마을은 두 개

1구간 출발지인 임곡리의 여름날 아침 풍경이 아름답다. 연꽃단지에는 연꽃이 거의 진 후 연밥이 한해를 갈무리하고 있고, 돌담 위에 햇살을 받은 호박, 첫눈이 내릴 때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봉숭아꽃이 정리된 마을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이름 한 개에 마을 수는 두 개 마을인 곳은 1구간 출발지인 마로면 임곡리와 경북 상주시 임곡리이다. 마을을 두 개마을로 가르는 중요한 기준인 도랑이 마을 중앙을 횡단하고 있다.

임곡리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임곡리의 원 마을인 임실과 서당골을 합쳐 임곡리라 했는데 특히 임실마을의 형상이 누워있는 소의 뱃속 같다고 해서 우복동(牛腹洞)이라 부를 정도로 아늑하다. 경북의 지명지에도 임곡은 예부터 피난지로 알려졌으며, 복초(伏草), 전곡(全谷), 임실(壬實), 임곡(壬谷)으로도 불리었다고 적고 있다. 진주 강씨와 인동 장씨의 세거지(世居址)였는데, 동학의 도소(都所)가 설치되었던 충북 보은군 장내와 가까운 까닭으로 동학농민군의 근거지였다고 한다. 임곡리 마을에 동학교도 강선보의 생가가 남아 있고, 마을의 북쪽 능선 너머 계곡에는 묘(墓)가 있다.  조선 후기의 술사 이명박이 임실 즉 임곡을 우복동(牛復洞)이라 칭했으며 임곡 일대에는 우복동과 관련된 태조산, 대모산, 용굴. 시루봉, 적바위 등이 있다. 태조산(太祖山)은 임곡에서 보는 구병산('상산지'에는 구봉산으로 기록)을 가리키며, 남자의 얼굴 모양이라 한다.

▲ 1구간 출발지인 임곡리에서 눈길을 뺏어갔던 볼거리들.

마을안길을 벗어나면서 임곡리 주민들이 적암리로 가기 위해 이용하던 옛길인 말목재가 나온다. 산의 모양이 말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곳에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용굴도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98년 수해가 나기 전까지 적암천에 큰 다리가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으나 수해 후 세월교(일명 콧구멍 다리)로 바뀌고 또 서당골방향으로 농어촌도로가 개설되면서 사실상 이용도가 떨어졌는데 둘레길 코스로 이용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숲으로 이뤄져 있고 보라색 빛깔이 고운 칡꽃이 달콤한 향기까지 내뿜어 아침을 대충 먹은 산객들에게 배고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줬다.

구병산 등산 시작점인 적암리 정자까지 발길을 재촉해 마을 뒤를 감싸안고 있는 마을길을 걸으니 둥근 안테나가 비행접시처럼 눈앞에 들어오는 위성지구국 안테나가 보인다. 지금은 기능을 다했지만 옛날 태평양과 인도양 상공에 위성을 쌓아올려 전 세계와 송수신을 했으며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전 세계로 중계했다. 이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80년대까지 마로면 갈평리에 초소를 세워 방위병이 보초를 서기도 했다.

# 갈평구간 유일하게 능선으로 연결

적암리에서 갈평리로 이어지는 구간은 산길이다. 마을을 통과하는 구간이 아니고는 대부분 숲길이고 그늘이 드리워져 한여름 뙤약볕에도 그런대로 걸을 만했다. 적암리를 지나 갈평리를 잇는 구간, 갈평 주민들은 가래실이라 부르는데 선두에 섰던 사람들이 멧돼지가 지나갔다고 알려왔다. 등줄기에 오싹함이 느껴지면서 공격해오면 어찌해야 하나 잔머리도 굴렸지만 도망가면 자기를 공격하는 줄 알고 달려들기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춰야 한다는 최소한의 방어법을 기억해내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산 아래까지 내려와 마주한 갈평리 마을 모습은 배신임수로 형태, 풍수상으로도 안정돼 보인다. 중심을 잡고 있는 430년 된 노거수 느티나무가 한 눈에 들어오고 바로 옆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어 길꾼들의 쉼터가 되기에 충분했다.

여행 중 최고 기다리는 시간은 식사시간이 아닐까? 모두들 도시락을 풀어놓았다. 보통의 관광이 먹거리를 찾아 삼만리를 하지만 도보 여행하는 길꾼이나 등산을 하는 산꾼들에겐 시어터진 김치쪼가리, 짜 빠진 장아찌가 반찬의 전부여도 도시락이 최고의 만찬이다. 대충 뭉쳐놓은 주먹밥도 어쩜 그리 맛있을까? 이날 둘레길 도보여행 일행들이 펼쳐놓은 반찬행렬은 계란말이, 김, 김치, 우엉조림 등 다양했다. 나눠먹는 맛도 일품이었다. 땀을 많이 흘리고 많이 걸어서 체중이 줄 것 같지만 땀을 흘리고 에너지를 소비한 것 이상으로 먹기 때문에 체중 조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날도 밥에 김밥, 빵, 옥수수까지 위장의 부담을 느끼면서도 계속 먹었다.

노곤해지는 게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져 정자에 팔자로 누워 한 숨 자면 최고의 휴식일 것 같은데 너무 쉬었다고 생각했는지 일행들이 다시 길을 재촉했다. 먹고 난 뒤 느껴지는 몸의 묵직함. 식탐을 좀 줄일 걸 하고 아쉬워하지만 때는 늦었다.

콘크리트 포장된 마을안길, 농로로 이어지는 구간을 터벅터벅 걷다보니 어느새 산으로 접어든다. 다행이다. '힘을 내요 슈퍼 파워'를 속으로 읊조리며 다리에 힘을 가해 경사진 산책로를 걸었다. 그나마 그늘 속을 걸으니 배는 불러도 좀 나았다. 속리산둘레길 보은구간 중 유일하게 산 능선으로 길이 조성돼 있는 갈평리 구간엔 소나무가 즐비해 오후 3, 4시까지 뿜어는다는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기분 때문인지 좀 상쾌해지고 무거웠던 위장도 약간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길은 산 능선을 타고 수문2리(방화실) 막골로 이어졌고 막골 이후부터는 불목리, 봉비리까지 마을길, 농로가 계속됐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최악의 오후시간을 극기훈련 하는 심정으로 견뎠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둘레길도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길은 1구간 종점인 장안면 개안리 대추홍보관인 안내센터에 닿았다. 1구간 14.2㎞ 걷기는 오전 9시20분경 출발해 오후 3시40분경 도착, 당초 4, 5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연장된 장장 7시간 정도 소요됐다. 발이 지칠대로 지쳤지만 길 끝에서 누린 여유가 정상에 오른 쾌감 못지 않다. 이날 최연소 참가자 수정초등학교 5학년 이영찬 군까지 참가자 모두 성취감 충만한 상태로 기분좋게 1구간 걷기를 마무리했다.

길안내 봉사를 한 김진성 숲길체험 지도사는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이왕 둘레길 걷기 시작을 했으니 다음번에도 참석해 4구간까지 모두 종주하자"고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 방화실과 불목 구간 코스 조정 필요

말목재, 적암리에서 갈평리로 내려오는 구간, 갈평리 능선을 거쳐 방화실로 내려오는 구간은숲길로 삼림욕을 즐기기에 최적이었다. 하지만 일부 구간은 코스 조정의 필요성도 느껴졌다.특히 갈평리에서 수문2리 방화실로 넘어오면서 둘레길 코스는 마을로 잇지 않고 농로를 연결해 불목리로 향하게 했는데 이 길보다는 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노선은 태양광발전소가 시설돼 있는 것만 보고 가게 길이 조성돼 있는데 마을쪽으로 방향을 조정하는 것이 볼거리 제공면에서도 훨씬 좋다.

2년 전 태풍에 의해 보호수인 둥구나무 가지가 부러져 수형이 크게 변하긴 했지만 느티나무 노거수가 마을 중심을 턱 버티고 있다 큰 나무가 품는 그늘이 넓어 둘레길 길꾼들이 고목아래에서 쉬면서 마을자랑비 등을 통해 방화실의 유래를 접하는 등 지역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 불목리를 거쳐 봉비리로 이어지는 구간은 현재 산업단지 쪽으로 코스를 잡았는데 이곳 보다는 불목리와 봉비리간 옛길인 서낭고개로 구간 조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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