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중의 초여름밤은 어둡기만 했다
세중의 초여름밤은 어둡기만 했다
  • 김선봉 기자
  • 승인 2016.06.09 10:39
  • 호수 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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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구본양 조합장과 간담회가 있기 하루 전날 세중이장단과 대의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바쁜 농사철이라 좋은 일로 모이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3개월째 농협과의 갈등 문제로 초대된 농민들의 얼굴에는 웃음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만큼 농민들은  결정을 내리는 것에 쉽지 않은 듯 보였다.

"처음 원칙대로 갑시다. 반나절 판매도 싫고 하루 판매도 싫습니다. 원상복구하던지 아니면 전부 조합원 탈퇴하던지"

“하나로마트 포함, 주유소, 농자재, 농약까지 직원 한사람이 하루 일하는 것으로 합시다"

여기저기서 불만썩인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리를 주선한 세중리 김종천 이장은 "젊은 직원 한사람이 농약, 농자재, 주유소운영을 하룻동안 하는 것으로 건의하자. 기존의 하나로마트는 없애고 금융창구는 현금지급기로 대체하면 직원 한사람이 운영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흑자경영이 가능해 세중 외의 조합원한테 적자로 인한 피해도 없다"라며 격양된 이장들과 대의원들을 설득했다.

결국 다수의 의견은 김종천 이장이 제시한 안으로 모아졌다.

간담회가 정리되고 몇몇 이장들이 남아 커피한잔으로 옛일을 회상했다.

"세중학교가 있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동네에 남아 있다"

몇 년전 작은학교 세중이 폐교위기에 있을 때, 학교와 동문, 마을주민들이 똘똘 뭉쳐서 세중학교를 지켜냈다고 한다. 농협 또한 그들에겐 학교와 같은 존재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모여 꿈을 나눈다면, 농민들은 농협에 모여 농사정보도 나누고 커피한잔으로 고된 일로 지친 몸을 서로 위로해가며, 달래던 마을회관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자식들도 오기 싫어하는 농촌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평생 땅만 파던 7,80세 어르신들은 경운기 몰 힘이 없어 '죽음의 운전'을 하면서도 땡볕아래 일을 하고 있다.

농협, 군청 행사 때마다 '수입개방으로 어려운 농민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는 영혼없는외침(?)에도 그들은 소리내어 서운해하지 않았다. 농산물가격 폭락, 농자재 폭등에도 한숨만 쉬며 묵묵히 일만 했다.

그런 그들에게 손가락질한다. 적자로 피해준다고.

그러나 그들은 단 한번도 적자운영을 고집하면서 세중지소를 살려달라고 한 적이 없다. '직원 한사람만이라도 아니면 격일제라도 그것도 안되면 농번기만이라도'하며 총회전부터 호소했다. 그러나 호소는 묵살됐고 책임있는 어느 회의에도 그들의 호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들의 외침은 조합장이라는 단단한 벽에 부딪혔고, 세중 외의 지역에서는 무관심의 벽에 부딪혔다.

3개월이라는 외로운 시간에 갖힌 농민들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소주잔을 채우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간담회 자리가 무르익어 가면서 붉어진 농민들의 얼굴은 술 때문인지, 햇살에 검붉게 그을린 얼굴인지, 무거운 마음의 얼굴빛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들의 먹먹한 표정과 무게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여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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