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초상화는 97살
할아버지의 초상화는 97살
  • 편집부
  • 승인 2016.05.1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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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보물
 
▲ 장신리에 사는 최규인씨가 1919년에 그렸다는 백여년된 할아버지의 초상화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커다란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예쁘게 꾸며진 정원 사이로 눈길을 사로잡는 백 년의 고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보은 장신에 사는 최규인(63)씨의 할아버지가 26세 때인 1915년에 출가하면서 지은 집이라고 한다. 가족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 안채에는 최규인씨의 할아버지인 고 최병완 옹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걸려있다.

무려 97년 전인 1919년에 그린 것인데 최병완 옹의 30세 때 모습이다. 양복 입은 단정한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신사 또는 멋쟁이를 연상시키는 초상화는 한 편의 뛰어난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초상화 옆면에는 '최병완 30세시'라는 표기와 아래에는 '김학성'이라는 초상화가의 영문 서명이 있다. 최규인 씨는 "그림 실력이나 화가가 영문으로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 것으로 봐서 당시 최고 수준의 화가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6.25 때 돌아가셔서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가족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민족의식이 강한 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 밑에서 공직자는 하지 않겠다며 양조장 등 개인사업을 하셨고, 문화재 보존에도 공을 들여 사비로 수집한 예술품이 상당했는데 6.25 전쟁으로 전부 유실됐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소중한 업적이 사라져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손자 최규인 씨는 할아버지가 뒷마당에 심어놓은 강직한 성품과 지조를 상징하는 대나무를 보면 나라를 사랑하셨던 그 마음이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초상화로만 볼 수 있었던 할아버지이지만 수석을 수집하는 게 취미인 최규인 씨를 보며 돌아가신 어머니는 "어쩜 그렇게 할아버지를 닮았냐"고 말씀하시곤 했다. 백 년 전 할아버지가 지은 집에서 할아버지가 심어놓은 나무를 돌보는 손자의 노년의 삶 속에 할아버지의 숨결도 같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김춘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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