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기계처럼 일만, 지금은 고객들과 정을 나눠요
처음엔 기계처럼 일만, 지금은 고객들과 정을 나눠요
  • 김선봉 기자
  • 승인 2016.04.28 13:01
  • 호수 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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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노동절 …하나로마트 계산원 유창숙씨를 만나다
▲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키고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며 파업에 나섰다. 헤이마켓 광장에서 수천명의 노동자와 경찰이 충돌하여 수십명이 다치고 사망했다. 경찰은 이런 과정을 노동자 탓으로 돌리고 4명의 노동자를 사형시켰다.

1923년, 일제의 가혹한 수탈에 항거한 노동자들은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를 요구하며 최초로 우리나라 세계노동절대회를 개최했다.

그렇게 시작된 5월 1일 노동절을 맞이하며 남들 다 쉬는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휴가철, 명절에는 더 바쁘게 일하는 마트 계산원 여성노동자와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지난 4월 26일 저녁시간, 퇴근하고 일복도 갈아입지 못한 체 본사 사무실을 방문한 유창숙씨. 결혼을 하지 않아 나이보다 앳된 모습이며, 작은 체구 속에 감춰진 수줍은 미소를 살며시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벌써 5년이 되었네요. 2010년에 입사했으니까"

청주 서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했던 그녀는 5년 전 고향 부모님 곁으로 돌아오게 됐다. 2남 1녀의 고명딸로 자라온 유창숙씨는 어렸을 적 삼승면에서 사과농사를 짓던 부모님과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한다. 청년기를 도시에서 보낸 그녀는 다시 고향에 돌아와 농협하나로마트 직원채용소식을 듣고 계산원으로 일하게 됐다. 다른 사람들은 파트이동으로 업무변경이 되곤 하는데 유창숙씨는 계속 같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취미요? 글쎄 이 일을 시작하고는 생각해본 적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녀가 일하는 시간은 아침출근과 점심출근으로 구분된다.

아침 8시 출근하는 날에는 저녁 7시 퇴근, 점심 12시 30분 출근하는 날에는 밤 10시 퇴근이다. 아침 출근과 점심 출근이 이틀 간격으로 교대돼 그녀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14시간 동안 직장에서 얽매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성회관이나 문화원에서 하는 강의를 받고 싶어도 계획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좀 나요. 지점장님이 새로 오시면서 지난달부터 의자가 생겼어요"

2010년 근무시작 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산대 옆에는 의자가 없었다 한다. 하루종일 한자리에서 서서 일하는 계산원들은 다리가 퉁퉁 붓고 쥐가 자주 난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 의자에 앉아 다리도 풀고 휴식도 취하면 좋을 법도 한데 보기에도 좋지 않고 민원이 발생하기도 하여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다 한다.

김응숙 지점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의자가 생겼고, 자주 현장에서 함께 일한다고 한다. 직접 계산대에서 손님 물건을 담아주기도 하고 연로하신 분들은 차까지 옮겨주기도 하며, 물건 진열도 함께 하면서 직원들 어려움을 하나씩 해결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힘든 점이 많다고 한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쭉 펴본 적이 없어요. 다리를 쭉 뻗으면 쥐가 나거든요. 그래도 익숙해져서 일할 때 쥐가 나는 것은 덜해요. 잘 때는 자주 나지만..."

여름 휴가철, 명절, 그리고 주말에는 손님이 많아 두 발이 한자리에 딱 붙어서 하루종일 기계처럼 손만 왔다갔다 한단다. 어깨결림도 심하고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에는 한쪽 발에만 무게중심을 두어 순간적 힘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버겁다고 한다.

"보람요? 처음엔 몰랐는데 이제는 고객님들 이름이나 회원번호, 특징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요"

그녀의 작은 기억이 사람들에게는 고마움으로 다가간다고 한다. '어? 오늘은 이거 안 사셨네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등의 살가운 질문은 '나를 기억하나?'하는 표정과 함께 '아, 네. 어떻게 아셨어요'라며 자신을 기억해주는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고 한다.

"처음엔 기계처럼 일만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고객들과 정이 쌓여요. 또 고객의 민원발생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든든한 버팀목이죠. '함께' 산다는 건 행복한 일이에요"

작은 소원이나 직장에 바라는 것을 묻자, "계산원에서 야채부로 옮겼으면 좋겠어요. 다른 분야도 골고루 배워보고 싶거든요"고 답한다.

크게 바라는 점이 없다며 말을 아끼던 그녀는 기자의 끈질긴 물음에 '월급이 조금만 올랐으면 좋겠다'고 한다.

정직원들이 임금 올랐다고 할 때, 마트 직원들은 국가기준 최저임금이 얼마나 올랐냐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마트직원과 신규채용 직원고용 형태가 달라, 신규직원들은 정규직으로 될 수 없는 구조이다. 최저임금에 따라 기본월급이 정해지기 때문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신은 혼자이기 때문에 괜찮은데, 가족이 있는 동료들은 자기랑 다를 것이라 한다. 또한 계산원은 마감 시 금액이 차이가 있으면 사비로 채워 넣어야 한다며, 다른 마트의 경우 월 5만원씩 일괄지급해 부족분은 직원이 채우고, 한달 동안 실수 없이 정확하면 직원이 갖는 제도가 있다며 우리도 조금씩 논의를 해봤으면 하는 바램을 드러낸다.

주 1일 휴무, 주1회 종일근무(8시 출근, 밤10시 퇴근), 서비스 정신노동, 농협법 개정 등으로 고용불안이 예상되는 지금도 그녀의 모습은 밝기만 하다.

"열심히 일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오잖아요. 이제 짬을 내서 새로운 것도 배우고 운동도 할 생각이에요" 땀흘려 일하는 그녀의 모습과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그녀의 눈빛이 더욱 빛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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