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평안수산 박삼수씨 가족
재래시장 평안수산 박삼수씨 가족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6.02.04 11:15
  • 호수 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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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안수산 6총사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내 자식에게 만큼은 이 힘든 일을 물려주지 않겠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식으로 자식들이 가업을 잇기보다는 대처로 나가 관료가 되고 돈 잘 버는 직장인 되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근래 들어 삶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며 이른바 '폼 나는' 직업만 쫓던 시대는 지났다. 가업을 천직(天職)으로 여기고 대를 잇는 업소들이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에도 가업을 잇기 위해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둔 젊은이들의 기사가 등장하기도한다. 대를 잇는 사례는 빵집, 국수집, 밥집 등 식당 뿐만 아니라 요즘엔 부모 곁으로 귀향해 농지를 일구는 젊은 농군들도 늘고 있다. 우리지역만 해도 이같은 사례는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점점 전문화, 세분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가업 잇기야말로 자기만의 분야를 쉽고 빨리 갖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재물은 3대를 가기 힘들지만, 대물림한 가업과 장인정신은 대가 쌓일수록 빛이 난다고 한다. 본보는 올해 사업으로 지역에서 대를 잇는 업소를 찾아 시리즈로 소개할 계획이다.(편집자 주)

부부와 결혼한 두 딸, 아들, 며느리까지 전통시장서 생선과 닭 장사

설이 다가온다. 그동안 이런 이유, 저런 핑계로 고향을 찾지 않았던 자식들도 이때 만큼은 고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모처럼 부모님의 체취가 묻어있는 낡은 고향집에서 어릴 때를 추억하고 별다른 재료 없이도 뚝딱 만들어내는 어머니의 정성에 잃었던 입맛을 찾는다.

그런 자식들을 위해, 그리고 손주녀석들을 위해 고향을 지키고 있는 '늙은' 부모님은 벌써 바구니 가득 장을 봐다놓고 설날이 돼야 찾는 자식들이 오기만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다.

그러다 "업무가 바빠서 도저히 짬을 내지 못한다"는 자식의 전화 한 통에 어머니의 눈에서는 금방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우리 아들, 우리  딸 언제 볼 수 있을까? "그 놈의 자식이 뭔지…"

재래시장안의 평안수산 박삼수 사장은 아들 며느리는 물론 결혼한 두 딸까지 끼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 대목장을 치르느라 눈코 뜰 새가 없는 평안수산 박삼수(61, 보은 삼산) 대표의 가족이야기로 대를 잇는 업소시리즈 첫 회를 시작한다.

농사꾼이 생선가게 주인이 되다

박삼수씨는 원래 강원도 정선 출신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정감록에서 말하는 비결을 찾아 속리산(중판)으로 이사했다가 다시 탄부면 상장2리 숫돌로 이사해 논농사를 짓던 박삼수씨는 생선 장사를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속리산 연꽃단지인 땅을 소유하고 있던 아버지가 그 땅을 법주사에 팔아 속리산보다 땅 값이 쌌던 탄부면 상장리에 논을 사기 시작했다.

비교적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 땅을 다 팔아서 탄부 들을 샀으면 상당한 농지를 매입할 수 있을 법 한데 아버지는 농지를 구입하는데 번 돈을 투자하지 않고 4천950㎡(1천500평)을 사는데 그쳤다.

그래도 교육열이 남달랐던 아버지는 지금은 폐교된 법주초(30회), 속리중(8회)을 졸업시키고 서울로 유학보내 고등학교를 다니게 했다.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아버지 덕에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까지 마친 박삼수씨가 사회생활 처음 시작한 곳이 시계로 유명한 오리엔트 총무과다. 그 곳에서 단발머리 숙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24살 박삼수씨와 22살 윤정애씨는 백년가약을 맺었다.

한참 신혼생활을 하던 중 "장손인 니가 내려와 농사짓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냐"하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그날로 서울 생활을 접고 탄부면 상장리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농사가 지금도 어렵지만 그때도 어렵고 또 지어봤자 소득이 낮아 자식들 공부도 제대로 시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박삼수씨는 리어카 행상을 했다. 동네방네 다닌 것은 물론 장날엔 보은장 외에도 옥천, 영동, 금산 등지까지 갈 정도로 장꾼 생활을 했다.

행상으로 경험을 쌓아 장사에 자신감을 얻은 박삼수씨는 시골 생활을 접고 보은에 5평 정도 되는 작은 가게 하나 얻어서 본격적으로 어물을 팔기 시작했다. 방 하나도 없어서 가게 안에 들마루를 놓고 쪽잠을 자는 생활을 이어갔다. 겨울엔 난로를 켜놓고 지냈고 여름엔 무더위를 피해 계곡에서 자고 나왔을 정도로 살림환경이 열악했다.

그래도 장사는 운대가 맞는지 잘됐다. 방 한칸 없던 궁핍한 살림도 점차 일어나 그런대로 방 한칸은 들일 정도로 나아졌다. 그곳에서 할머니와 1남2녀, 그리고 부부까지 6명이 복작 복작거리며 15년간 살았던 첫 가게에서 현재의 자리로 이사를 나왔다. 첫 가게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생선취급하며 틈새로 닭 공략 주효

생선만으로 가게를 키웠지만 장사가 늘 잘되는 것은  아니어서 사계절 중 특히 생선 관리가 어려운 여름철 벌이를 고민해야했다. 어떻게 하면 계절을 타지 않고 사철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거리였다.  그러다 찾아낸 것이 바로 닭이다. 삼계탕, 백숙 등 여름철 닭 요리가 많기 때문에 승부처로 삼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2000년경이다. 생선 취급점으로만 알고 있는 고객들에게 닭고기도 판매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1마케팅도 하고 마트와 경쟁하기 위해 닭 한 마리도 배달해주는 서비스에 주력했다.

가게 앞에 비어있던 점포에는 채소, 두부, 정육까지 다양한 물건을 파는 식자재 업소를 유치해 가게 주변에서 거의 모든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상권을 만들기까지 했다.

한 식당에서 열 번의 배달 요청을 해도 바쁘다는 핑계 한 번 대지 않고 배달해줄 정도로 세심하게 챙겼다. 그 결과 군내는 물론 옥천 청성·안내, 경북 용화·화령에서도 배달주문이 들어왔다. 생선이나 닭 주문을 하면서 부탁하면 채소, 고기까지 구입해다 주는 서비스로 관계가 끈끈해져 단골 식당은 더 늘고 자연적으로 고객도 늘었다.

이렇게 장사의 외연이 넓어지면서 일손이 딸려 부부 외에 종업원 한명을 두고 일했는데, 그래도 바빠서 도저히 감당이 안될 정도였다.

종업원 6명이 모두 가족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가족 경영이다. 가게 경영계획을 나름 세우고 자식들이 받는 연봉을 계산하고 6명이 매달려도 되겠다는 판단과 비전이 보이자 박삼수 대표는 자식들을 불러 들였다.

시집간 큰 딸은 5, 6년 경력의 간호사로일하고 있었고 작은 딸도 이미 출가외인이었고, 아들은 인천공항 보안과에서 근무하는 걸 붙잡아 내렸고 회사에 다니던 며느리도 사표쓰고 내려왔다.

생선 가게 자식들이지만 아들은 손가락 끝으로 생선 꼬랑지를 겨우 들고 큰 딸 또한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비린내 난다고 고개를 흔들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지만 "너희들이 직장에서 받는 월급 주겠다, 직장생활 하는 것 보다 나을 것이다, 아빠 도와달라"고 설득한 끝에 자식들 모두 아버지의 가게인 어물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가족경영, 대를 잇는 업소로 출발한 것이다.

장사가 서툴고 어설펐던 자식들도 분업화로 전문성을 키워 지금은 베테랑들이 됐다. 전체 총괄과 함께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떼서 오는 유통 전담은 박삼수 대표가 맡고 부인 윤정애(59)씨와 큰 딸 소영(36)씨는 생선 담당, 작은 딸 미영(31)씨는 전화 주문과 배달 담당, 외동아들 영식(29)씨는 닭 담당, 그리고 며느리는 총무 업무를 맡고 있다.

아침 7시에 문을 연 후 주문을 받아 탑차 1대, 배송을 위한 배달차 3대를 운행하며 저녁 8시, 늦으면 9시까지 장장 12시간, 13시간을 꼬빡 일하고 겨울엔 춥고 여름엔 냄새나는 곳이지만 두 딸과 아들 내외, 그리고 부부까지 6명의 가족 모두가 내 사업으로 여길 정도로 애착을 갖는다.

3자녀와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이 희망

가게를 시작한 후 1년 365일 중 추석과 설날 단 이틀만 쉬었다는 박삼수 대표는 "자식들 초등학교 입학식, 졸업식, 소풍 한 번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가족 여행 한 번 못가고 오죽하면 장모님 돌아가셨을 때도 자식들과 내가 교대로 가게를 열었다"고 말했다.

변변한 쉼의 여유없이 오로지 가게 파묻혀 살아온 박삼수 대표 가족은 올해 특별한 외출을 감행하려고 한다.

그동안 여행다운 여행 한 번 다녀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올해는 저녁에 조금 일찍 문 닫고 가까운데 펜션 하나 얻어서 고기 구워먹고 바깥 공기 좀 쐬고 들어오는 식으로 휴가 계획도 잡고 있다.

이보다 더 큰 꿈은 모두가 한 집에 사는 것. 가업이랄 수 있는 평안수산을 기반으로 자식들 모두 먹고 살고 4층 규모의 건물을 지어 한 지붕아래 세 자녀와 모여 사는 꿈이라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도시에서 직장 다니며 잘 살고 있는 자식들이 들어와 비린내 나는 생선 가게를 가업으로 삼아 대를 잇고 있는 3자녀와 박삼수 대표 부부의 계획이 희망으로 싹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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