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 마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 마라
  • 박상범 기자
  • 승인 2015.09.24 09:43
  • 호수 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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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직선거법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혐의로 보은군 공무원들이 충북지방경찰청으로부터 수사를 받은 것이 벌써 1년 하고도 반년 가량이 지났다.
 
당시 정상혁 군수뿐만 아니라 전 비서실장들을 포함한 많은 공무원들도 피의자 내지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세월이 흐르는 것처럼, 경찰수사를 받았던 공무원들이 심적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둘씩 흘러나오고 있다.
 
본인들이야 '뭐가 좋은 일이라고 말을 하겠나' 만은 이들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았던 가족 및 지인,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이야기 중 관련 공무원들을 가장 힘들게 했다는 것이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에 군수실로 불려 들어가 약 10~20분간 1대1 면담을 하고 나온 것이다. 이런 후 수사기관에 들어가 조사를 받으니, 그 심적 부담이 오죽 했을까싶다. 일부는 조사를 받고 돌아온 후 다시 군수실에 들어가 재차 면담을 했다고 한다.
 
자신과 관련된 사건으로 인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가는 공무원들을 군수가 미리 불러 면담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법적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들 공무원의 심적 부담이 어떠했을 지는 정 군수의 재판에 증인을 출석했던 공무원들의 답변태도에서 엿볼 수 있었다(기자는 1심과 2심 재판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검찰의 공소사실, 증인들과 피고인(정상혁 군수)이 진술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법정에 출석한 공무원들은 윗선의 지시 없이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한 일이라고 답변하거나, 객관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궁색한 답변을 하곤 했었다.
 
당시 공무원들이 심적 고통을 받은 일들이 하나 둘씩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은 정 군수의 재판이 거의 일단락됐고, 그만큼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일이 또다시 벌어지고 있다. 또 정상혁 군수와 관련이 있다.
 
지난 8월 초 청주지검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혐의로 군수 비서실장 A씨와 읍면 공무원 8명을 정식 및 약식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 1월 12일 각 읍면사무소의 주민등록시스템을 활용해 3천900여 지역주민에 대한 전출 및 생존여부 등을 파악해 군수 비서실에 보고했고, 이를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비서실장의 남부3군 인구늘리기에 필요한 자료 확보라는 입장과 수사기관의 군수 재판에 유리한 증거로 제출하려 한 자료라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이런 사실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읍면 공무원들이 약식명령(벌금 100만원)에 반발해 정식재판을 통해 부당함을 밝히려 하자, 몇몇 공무원들이 나서서 읍면 공무원들을 회유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청구권(정식재판)을 포기하고 약식명령을 수용하라는 것은 벌금 100만원의 전과자가 되라는 것이다.
 

과연 자신들이 당사자라면, 승진과 호봉, 표창 상신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전과를 안고 공직생활을 이어가겠는지 묻고 싶다. 이것이 동료이자, 후배 공무원들에게 할 짓인지, 퇴임 후에 이들의 얼굴을 어떻게 쳐다볼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정상혁 군수는 2010년 7월초 본지와의 취임 인터뷰에서 '군수실의 문턱을 낮춰 공무원들이 지위 고하를 떠나 자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업무가 아닌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아버지처럼 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련의 모든 사건들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인 만큼, 결자해지(結者解之) 심정으로 관련 공무원들의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이런 은밀한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알고도 팔짱만 끼고 있다면, 나 혼자 살겠다고 자식들을 사지로 내몬 비겁한 아버지와 다름없다.
 
더 이상 8명의 공무원들에 대한 회유가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공직사회에서 불만이 축적되어 가고 있음도 간과하지 말기를 바라며, 세월이 흐르면 진실이 밝혀진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거짓과 위선이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박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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