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에 닿는 산공기로 세포 하나 하나 재생
살갗에 닿는 산공기로 세포 하나 하나 재생
  • 송진선
  • 승인 2009.07.16 11:07
  • 호수 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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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따라 길 따라 - 탄부 국사봉에 오르다

 


갈까, 말까 이불 속에서 잠시 꾸물거리다 전화를 들었다. 비가 오는데 그래도 산을 오를 것인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대답하기를 두 말도 없이 간단다. 비도 오는데 빈대떡 먹으며 하루 종일 뒹굴뒹굴 하며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늘 오를 산은 탄부면 벽지리와 상장리, 매화리에 걸쳐있는 국자모양의 국사봉(해발 362.5m)이다.  비가 온 탓인지 속리산악회(회장 최윤태)가 주관하는 우리지역 명산 탐방에는 기자를 포함해 4명만이 참가했다.

당초 국사봉 등반코스는 탄부초등학교를 거쳐 318봉→흔히 국사봉이라 일컫는 362.5삼각점정상→264봉→279봉→하장리까지 7.2㎞를 등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장맛비로 당초의 등산계획 대신·짧은 코스를 선택하기로 했다. 탄부면 상장리 지덕 저수지 인근서 올라 정상을 등반한 후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산을 오르면서 늘 생각하는 것이 숲이 우거져 인적이 닿은 것 같지 않은 곳에도 길이 있다는 것이다. 산책로처럼 닦여진 그런 길은 아니지만 사람의 발길이 여러 번 닿아서 한 눈에 봐도 길처럼 여겨진 곳이다.

등산 초입을 보니 등산로가 없는 곳이다. 저벅저벅 발길을 옮기다 보니 버섯을 따러 다닌 사람들이나 7, 80년대 땔감을 구하기 위해 다녀서 만들어진 길인지 모르지만 사람 발자국이 닿아서 만들어진 길을 만났다.
산을 일궈 식량을 조달했던 팔 밭은 모두 묵어 망초가 가득한 곳을 지나니 나뭇가지가 우거져 앞을 가린다.  앞장 선 최윤태 회장이 얼굴을 할퀼 수 있는 나뭇가지는 제거하면서 올라가 뒤따르며 산행하기가 다소 편했다.

아무 말도 안하고 산행에 집중해 걸으면서 느낀 것인데 비오는 날의 등산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갗에 닿는 산 공기가 약간 차가운 듯 더욱 청아하게 느껴졌다. 세포 하나, 하나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숲의 향기는 푸르게 느껴질 정도로 상쾌하게 코끝을 자극했다.

만약 지금 비가내리지 않고 햇살이 나왔다면 아마도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등줄기는 땀으로 젖기 시작하고 이마에선 물방울 떨어지는 것처럼 땅방울이 뚝뚝 떨어졌을 것이다.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 한 발 떼기도 힘들고, 가쁜 숨은 턱밑까지 차올라 숨쉬기 운동을 하면서 산을 올랐을지도 모른다. 초반부터 지친 산행이었을 텐데 장맛비가 오히려 고마웠다.

 

◆제주올레같은 숲길 걷기
우거진 숲을 지나 시야가 확보되는 것에서 한숨을 돌렸다. 동북쪽의 시야가 틔었는데 속리산 IC로 관광차량 10여대가 줄지어 나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리고 비에 흠뻑 젖어있는 구병산과 시루봉, 장안면 봉비리, 개안리, 장내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옷도 비에 젖어 달라붙고 등산화 속으로 스며든 빗물에 양말까지 젖어 구질구질하긴 했지만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이 활력을 찾은 것 같은 쾌감이 느껴지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윤태 회장은 "지덕 저수지에서 국사봉 오르는 길은 능선이 좋은데다 산도 야트막한데다 숲도 좋고 무엇보다 속리사산 IC에서 가까워 걷기 코스를 잘 개발하면 제주 올레길 못지않는 명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땀으로 노폐물을 배출하고 대신 자연이 주는 깨끗한 공기로 샤워까지 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보양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나며 마주친 것은 골프장 예정 부지라는 안내판이었다.

묘지마다 이장을 하라는 안내문구가 있고 이미 많은 묘지는 이장을 해간 상태였다. 골프장이 조성되면 제주올레길 걷는 기분을 골퍼들이 느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사봉 등산로 조성
제주올레같은 걷기명소를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국사봉 정상을 향해 능선을 걷는다고 걸었는데 앞서가던 최윤태 회장이 보통 능선 같지 않다며 혹시 토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군지와 보은의 지명지 등을 훑어보아도 이곳에 토성이 있다는 기록은 없으며 최익철 상장2리 이장을 통해서도 확인한 결과 토성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능선 정상 부분이 넓게 돼 있어 토성처럼 보인 것일까. 토성 같은 능선을 따라 앞이 분간되지 않은 숲을 헤쳐 나갔다. 겨울철 나뭇잎이 다 떨어져 전방이 보이면 방향을 잡을 수 있으나, 숲이 무성할 때 길도 없는 곳을 찾아가면서 걸으니 길을 잘못 드는 등 시행착오를 겪었다.

벽지리 주민들이 장안 장을 보기 위해 산을 넘었다는 고갯길도 발견했다. 옛날 벽지 사람들이 장안 장을 보고 늦게 고개를 넘다  늑대의 습격을 받아 다친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을 때는 등골이 약간 오싹해지는 것도 느꼈다.

인적이 닿은 흔적이 없을 정도로 원시림의 모습을 갖춘 그곳을 헤쳐 걷기를 계속하니 아직도 멀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보이지 않던 정상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국사봉 정상에 육각정자와 화강암으로 제작한 국사봉 표지석이 우뚝 서있었던 것.

해발 362.5㎝인 국사봉 정상에서는 금적산, 삼승산, 구병산까지 사방을 조망할 수 있었다. 가슴이 탁 트였다. 등산, 하산시간이 2시간 남짓밖에 안됐지만 비오는 날의 등산에 대한 새로운 맛을 느낀 하루였다.

이번 명산 탐방 일행이 걸었던 구간이 아니고 벽지리 마을을 사이에 두고 국사봉 정상을 등산할 수 있는 등산로를 조성하면서 운동기구도 설치하고 쉼터를 조성해 등산객들이 삼림욕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찬샘부터 동학농민혁명 당시 피난처로 사용했다는 장수굴, 병풍처럼 둘러진 병풍바위도 있는 국사봉을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제 1회 국사봉 등반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구병산, 속리산에 가려져 그저 뒷산으로 평가 절하됐던 동네 산들이 이름을 얻는 명산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저 이름만 갖고 있던 국사봉도 등산로를 조성하고 쉼터도 만들고 묻혀 있던 볼거리를 찾아내니 찾아가고 싶고 지역의 명소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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