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가난 속에서 보은고등학교를 다니는데 보은읍에서 자취를 하는데 나는 학비를 벌어야 하기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을 하느라고 아들 자취집 한 번 가지를 못했다.
그랬더니 주인이 "느네(너희) 엄마는 스모(서모)니 어린 것을 데려다 놓고 한 번도 들여다보지도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난 속에서 신발은 검정운동화 천원짜리로 졸업을 하고 해군소위로 제대해 대우조선소에 시험도 안보고 대리로 취직을 했다.
그런 아들이 부장으로 승진을 했다고 인사를 와서 저녁도 사주고 용돈도 주고 갔다.
우리집에 경사가 났는데 아들 축하도 제대로 못해주고 받기만 했다.
우리아들은 줄도, 빽(배경)도 없이 부장이 됐다는 게 정말 좋아서 나는 구름을 타고 나는 것 같았다.
친정어머니가 "열심히 좋은 마음으로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거야"하더니 2015년에는 큰 아들이 부장이 되고 둘째 아들은 일식집을 크게 차렸다.
가난했던 내가 부자가 된 기분이다.
임재선(73, 수한 질신, 흙사랑한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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