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2. 문학관, 전문가의 기획을 먹고 자란다 … 최명희 문학관
②-2. 문학관, 전문가의 기획을 먹고 자란다 … 최명희 문학관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4.08.28 09:43
  • 호수 2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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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 하나로 사람들을 문학관으로 끌어들이는 마력 지녀
▲ 1년뒤에 받아볼수 있는 나에게 쓰는 느린 우체통. 문학관에서 받아볼수 있도록 발송 작업을 하고 있다.

전국에 있는 문학관이 다 거기서 거기는 아니다. 대부분 특징적인 것들을 갖고 있다. 특징을 제대로 잡느냐, 못 잡느냐에 따라 문학관의 활성화 여부가 좌우되는데, 이번호에 소개할 소설가 최명희 문학관은 어떻게 운영해야 사랑을 받는지 핵심을 아는 전문가가 콘텐츠를 뽑아내는 탁월한 기획력, 그리고 열정에 의해 활성화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혼불이라는 장편소설 한 편만 알고 작가에 대해 잘 모르는 최명희 문학관은 손글씨 쓰기로 유명한 문학관이다. 엽서에 쓰던, 아니면 작가의 작품을 필사하든, 1년 뒤에 받는 나에게 쓰는 편지 든 이름만 다를 뿐 손으로 직접 쓰는 이벤트가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곳이다.

최명희 길이라는 길 이름까지 갖고 있는 최명희 문학관은 주말마다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루는 전주 한옥마을에 있지만 주요 도로변이 아닌 약간 변방에 있어 일부러 관광 안내 지도를 들고 찾아야만 찾을 수 있는 곳에 위치했다.

1998년 작가가 사망한 후 2000년 문학 작가, 예술인, 유족 등이 주축이 돼 기념 사업회(회장 장성수 전북대 국문과 명예교수)가 꾸려져 각종 기념사업을 하고 있었고 문학관은 그로부터 6년 뒤인 2006년 개관했다. 국비 3억 원을 포함해 총 16억 5천만 원이 투입됐으며, 오장환 문학관만큼이나 규모가 작다.

전주시로부터 관리 위탁을 받은 기념 사업회에 지원되는 시비 보조금은 인건비를 포함해 총 1억 4천만 원이다. 여기에는 전북 남원에 있는 혼불 문학 공원 내 묘지 및 문학관 인근에 있는 생가터 관리비도 포함,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기념사업회 사무국에서는 거액의 사업이 소요되지 않는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국민적 사랑을 받는다.

그 아기자기한 프로그램들은 최명희와 동떨어진 새로운 그 무엇이 아니라 모두 최명희로부터 파생된 콘텐츠들이다.

"문학관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현장에 들어가서 만지거나 뭘 소개해서 말하거나 오감, 즉 얼굴을 찡그리고 나와도 기억에 남는 공간이 되려면 뭔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느낄 수 없게 방치한 공간들이 많다. 문학관이 죽은 이를 위해 만든 것이고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은 맞지만 결국은 산 사람을 보고 온다. 즉 운영되고 있는 것에 의해 사람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운영자들이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한 최명희 문학관 최기우 학예연구실장(극작가 겸 전주대 겸임교수)의 열정으로 탄생된 다양한 콘텐츠들을 펼쳐본다.

최명희 손 편지, 다양한 콘텐츠로 확산
최명희 문학관에 들어서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은 방문객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는 모습이다. 책상에 다소곳하게 앉아 엽서를 쓰거나 전시관 내 최명희 작가의 작품 일부를 쓰거나 평상에 앉아서도 쓴다.
쓰는 사람은 중고등 학생 같은 청소년, 대학생도 있지만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의 모습도 흔히 발견된다. 좀처럼 글씨를 쓰지 않고 손쉽게 전화를 하거나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채팅용어가 등장할 정도의 축약된 글자 몇 개로 의사소통을 하는 요즘 세태에 종이 위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이채롭게 다가온다.

전국적인 글쓰기 열풍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누군가에게 전달해야할 편지, 엽서가 꾸준히 부쳐지고 있다. 아마도 빨간 우체통이 아직 사라지지 않는데 최명희 문학관이 한 몫 한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같이 최명희로 인해 확장된 콘텐츠가 편지쓰기, 손 글씨, 엽서쓰기이다.

손글씨 공모전까지 연다. 매년 5월~9월까지로 기간을 한정하는데, 매년 3천500명가량이 참가할 정도로 최명희 문학관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손 글씨 공모전은 단순히 글씨만 예쁘게 써서 되는 게 아니다. 글 전개는 잘 되었는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까지 평가해 수상작을 선정하는데 총 150명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수상작을 바탕으로 글씨를 공부하는 미술인도 있고 아이들이 써낸 작품 중 기발한 아이디어는 아동문학 교재로 활용되기도 하고 악필을 교정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대회 개최 후 3년간은 수상작들을 모아 책으로 발행했는데 널리 알리는데 한계가 있어 지금은 당선작들을 인터넷에 공지해 누구나 퍼가서 글씨 연습을 하는 등 활용할 수 있도록 운용하고 있다.

또 1년 뒤의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사업도 있다. 시작한 지 7년 정도 됐는데, 처음엔 무료로 하다다 지금은 유료로 전환했다. 문학관을 찾은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인데 올해도 지난 6개월간 8천명이 참가했다. 문학관을 찾은 지 꼭 1년 만에 받아보는 편지여서 일률적으로 같은 날 동시에 편지를 발송하는 게 아니라 거의 매일 발송 작업을 할 정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하지만 1년 전에 편지를 썼는지 생각지도 않다가 뜻밖의 선물처럼 편지를 받고 좋아하는 당사자들을 생각하면 귀찮아도 중단할 수 없다고 한다. 편지를 읽으면서 당시를 추억하고 최명희 문학관을 떠올리는 추억여행을 가질 수 있는 것이어서 방문객들에게 문학관을 매력적으로 보게 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손 편지로 인해 파급된 또 하나의 콘텐츠로 최명희 작품뿐만 아니라 전주시 지명 등 전주시와 관련된 작품 모으기를 실시했다.

이 사업으로 최명희 문학관에서 전주시와 관련된 작품 2천500여 편을 찾아냈다. 이 작품들을 역시 책으로 묶어 행사 때 관객들에게 나눠줘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전주에 대해 잘 모르고 또 전주의 작가를 잘 모르던 시민들에게 전주를 새롭게 보고 애향심을 갖게 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전주시 일오동과 관련된 시는 이런 게 있고 서신동 출신 시인으로는 누가 있고, 마전이란 공간에 대해 누가 시로 옮겼는지 등등을 알 수 있으니 시민들에겐 색다른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던 것.

문학관에서는 최명희 선생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이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자원봉사를 오는 학생들에게 최명희 소설 혼불 서너 장을 읽게 한 후 맘에 드는 문장이나 구절, 단어가 있으면 오려서 가져가게 한다. 소설 혼불은 최명희의 작품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말이나 감동을 주는 문구, 귀감이 되는 구절을 오리기 때문에 학생들이 소설 혼불의 또 다른 주인이 된다.

교정 작업까지 장장 17년에 걸쳐 쓴 소설 혼불 10권을 그대로 필사하는 작업도 진행한다. 역시 쓰기, 손글씨 콘텐츠의 일환이다. 1, 2장 쓰는 것도 힘든 요즘인데 소설 10권을 모두 필사한다는 게 작가만큼이나 아니 작가보다 더 힘든 필사의 어려움을 몸소 체득할 수 있다. 방대한 분량을 필사한 어려움을 감수하고 대 장정 길에 오르는 열혈 팬들도 있다.

우리 동네 이야기 말하기 대회도 있다. 동네 이야기를 듣고 와서 말하는 것. 혼불 작품이 가지는 특징이기도 한 것을 갖고 말하기대회를 만들어 콘텐츠로 쌓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최명희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콘텐츠는 큰 비용 들이지 않고도 문학관을 홍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제는 최명희 작가를 기억하게 하는 상품이 됐다.

최명희 문학관에서 하는 소외지역이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시낭송대회, 문학 강연은 다른 문학관과 차이가 있다.

문학 보다는 빵이나 떡, 아니면 노래 공연이 필요한 어르신 등이 아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작가와의 만남으로 진행하고 있다.

문화바우처사업으로 진행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소외지역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시인이나 소설가 등 저자와 만나는 시간을 갖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연간 15회~20여 차례 실시하고 있다. 한 달 한 번 이상 하는 셈이다.

작가의 작품 의도를 설명하고 직접 친필 사인한 시집이나 소설, 수필집을 나눠주는 단순한 행사이지만 작가가 직접 사인한 시집을 선물로 받으면 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일지라도 그 시인은 그 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와의 만남을 좋은 추억으로 갖게 된다.

중고등학생들에게는 그 수준에 맞춰서 작가를 섭외하는데,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쓴 작가를 섭외해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일, 교과서에서 본 작가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최명희 문학관은 전문가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최명희 작가는 작가가 죽기 전 책으로 출판된 게 혼불 밖에 없었고 최명희 관련 박사나 석사 학위 논문 속에 나오는 작품도 2, 30편에 불과할 정도로 작가의 작품이 많이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문학관에서 최명희 작가의 작품 발굴에 나서 사보 등에 발표한 작품 등 210편을 찾아냈다. 2, 30여 편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실적이다.

문학관 홈페이지도 살아 꿈틀댄다. 이 또한 문학관 가족들의 열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문학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방문느낌이나 바라는 점을 적는 일상적인 자유게시판만 있는 게 아니다.

매일매일 문학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남긴 흔적(방명록)을 홈페이지에도 게시하고, 그달 그달 문학관에서 시행한 각종 사업이나 방문한 사람들의 모습 등 문학관의 일상을 소개하고, 매일매일 문학관 가족들이 뽑은 선생의 귀한 한마디라는 오늘의 필 록은 소설 혼불 중에서 발췌해 다함께 읽고 느낌을 갖게 하고 있다. 죽어 있는 오장환 문학관 홈페이지와 크게 비교되는 모습들이다.

최명희 문학관 최기우 학예연구실장은 "유품이 아무 것도 없는 김유정 문학 촌에서 김유정의 소설 봄봄에 나오는 '점순'이라는 콘텐츠를 끄집어내 점순이 선발대회를 가진 것처럼 오장환 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고 오장환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면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 문학관 활성화도 기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예를 들면 오장환 시 현대적으로 해석하기, 오장환의 삶을 쫓아가는 그림지도 만들기, 전국의 오장환 이름 찾기 대회, 오장환의 예쁜 시를 담은 시비를 마을 어귀에 설치해 코스를 만들면 오장환의 시 밟아가며 친숙해질 수 있는 테마기행도 될 수 있고 문학제 때 흔히 하는 심포지엄 등 학술대회 대신 오장환의 시를 활용한 문화 콘텐츠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또는 문학관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 등으로 바꿔서 개최하는 것도 문학관이 활성화되는데 희미한 불빛이라도 제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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