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떡으로 만들어 쌀의 부가가치 높인다
(양양 송천떡마을, 서천 모시송편마을)
④떡으로 만들어 쌀의 부가가치 높인다
(양양 송천떡마을, 서천 모시송편마을)
  • 박상범 기자
  • 승인 2014.08.20 23:48
  • 호수 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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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으로 만들어 쌀의 부가가치를 높인다

농민 수는 감소추세고 농가소득도 하향세다.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 판매하는 1차 산업으로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농산물 생산에서 가공은 물론이고 농업과 농촌자원을 활용한 관광농업까지 포함하는 6차 산업화를 시도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물론 지자체에서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보은군이 매년 조사하는 주요 소득작물에는 빠졌지만, 쌀은 여전히 보은지역 농업의 중심에 있다. 보은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의 미질은 도내 최고 수준임에도, 그동안 브랜드 통합 및 홍보에 무관심한 바람에 고품질의 미질에도 불구하고 저가미로 전락한 상태이다. 여기에 쌀 시장까지 개방되어 보은지역 쌀은 그야말로 위기에 빠졌다.
이제 고품질의 쌀을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가공하여 판매하는 2차 산업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거창한 가공공장도 필요가 없다. 마을주민 20~30명이 모여 함께 쌀 가공품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족하다. 전국의 몇몇 지역에서는 쌀을 떡으로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덕분에 주민들의 소득도 높아졌고, 함께 일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지역주민들이 함께 모여 쌀을 떡으로 만들어 파는 강원도 양양군 송천떡마을 영농조합법인(대표 탁은기)과 충남 서천군 모시떡마을 영농조합법인(대표 양만규)의 성공사례에서 보은지역 쌀의 판매 전략을 찾고자 한다.

관광지에서 떡 팔던 설움 딛고 마을기업 만들다
강원도 한계령과 오색약수 아래에는 여름 피서지로 유명한 송천계곡이 있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발원한 맑은 송천계곡을 품고 있는 마을이 양양군 서면 송천리이다. 양양읍내에서 10여㎞ 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유명한 송천계곡이 있을 정도로 고라데이(골짜기의 강원도 사투리) 마을이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이 마을이 매일 새벽 1시가 되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마을에 있는 떡 방앗간에서 떡을 만들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개조 3명의 아낙네들이 모여 전날 불려놓은 쌀을 빻아 반죽을 만들고, 속에 들어갈 고물을 만든다. 이렇게 떡 만들 준비가 끝나는 새벽 4시경이면, 나머지 4개조 12명의 아낙네들이 합류해 작업장에서 떡의 모양을 잡고 고물에 버물려 떡을 만들고 포장작업을 한다. 이렇게 만든 떡을 새벽 6~7시 택배차량에 실어 전국으로 배송한다. 당일 만든 떡을 소비자들에 보내기 위해 새벽부터 밤을 새다시피 하는 것이다.
여름 휴가철과 가을 단풍철에는 주문량이 크게 늘어 이런 작업을 하루 3차례씩 해야 할 정도이다. 평소 쪄내는 떡의 양은 하루 100㎏, 한 달이면 3톤에 달한다고 한다. 힘은 들지만 새벽잠을 포기하고 떡을 만든 대가가, 지난해 총 8억원이라는 매출로 돌아왔다. 1인당 2천200~2천500만원의 소득을 올렸고, 출자 조합원 31가구에도 100만원씩의 배당금이 돌아갔다. 변변치 않았던 농업소득을 올리던 산골마을에서 60대 이상 고령 농업인들이 농업 외 소득으로 1년에 2천500만원을 버는 것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권은경 사무국장은 "송천떡의 특징은 100%가 정성이다. 어머님들이 새벽부터 떡을 만들고, 떡에 들어갈 쑥 등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험한 산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감안하면 2천만원 남짓한 수입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면서 "하지만, 산골마을에서 농외소득 2천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므로,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는 매일 출근부에 도장을 찍을 정도로 떡 사업에 어머님들이 열정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송천떡마을의 성공은 '절박함'에서 시작됐다. 산골이라 땅이 좁고 변변한 소득 작물도 없어, 주민들은 쌀농사와 감자, 옥수수를 일구며 근근이 살았다. 그러던 중 1970년 초 한계령이 뚫리고 길이 나면서 한 두 사람이 직접 채취한 산나물과 쌀로 떡을 만들어 오색약수터, 설악산 입구, 해수욕장 등에서 팔기 시작했고 장사가 제법 되자 10여명까지 늘었다.
그야말로 먹고살기 위해 주민들은 부녀회를 중심으로 마을 공동방앗간을 설립해 원가를 절감하고 판로를 개척했다. 양양은 물론이고 속초·동해·강릉 등을 다니며 '송천떡'이란 이름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전통방식으로 만든 송천떡은 입소문을 타면서 점차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송천떡의 인기가 높아지고 사업 규모가 커지자 관리가 어려워졌다. 또 별도로 떡을 만들어 파는 경우도 생겨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며 마을공동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2009년 4월 송천리 마을전체 36가구 중 31가구가 출자해 '송천떡마을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법인의 울타리 안에서 공동체의식을 키우면서 마을 공동체사업으로 떡 사업에 나섰고, 떡 방앗간은 출자가구 중 절반에 달하는 41~73세의 마을 아낙네 16명의 직장이 됐다. 주민들은 매월 1회 이상 회의를 하며 마을기업과 마을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해 떡만들기체험장을 건립하고 각종 체험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한 56번 국도가 지나가는 마을입구에 떡 및 특산물 직판장도 마련했고, 4일과 9일에 장이 서는 양양장에서 직거래 판매도 한다.  피서철에서는 양양해수욕장에서 떡을 파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3명 5개조가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판매를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1년엔 행정안전부가 선정하는 우수마을기업에 선정되면서 7천만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았다. 이 지원금으로 설치한 급랭시설은 더운 여름에도 신선한 떡을 전국에 판매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행정안전부가 무료로 지원하는 컨설팅을 받아 포장도 고급스럽게 바꿨다.
떡사업이 성장하면 송천마을은 물론 인근 지역의 경제도 활성화됐다. 쌀 등 원재료를 인근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구입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의 일자리도 늘어났는데, 법인 회계총무와 사무국장, 체험장 관리자 등을 마을 및 인근 지역에서 채용했다. 송천떡마을이 유명해지면서 마을을 찾은 체험객이 1만 2천명에 달하면서 마을에 10곳의 펜션·민박이 생긴 것도 성공한 마을기업이 가져준 변화다.
이렇게 법인 설립 5년 만에 성공한 마을기업이 됐지만, 법인 설립초기의 공동체정신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수익의 10%는 마을발전기금으로 조성해 마을공동사업에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연말 마을주민회의를 통해 사용처와 방법을 결정한다. 갈등 발생시에는 마을회의를 통해 주민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공동사업을 통해 발생한 수입과 지출에 대한 투명성 확보를 위해 회계전담인원을 채용했다.
또한, 맛 좋고 품질 높은 전통 송천떡을 유지하기 위해 원자재는 기본적으로 마을에서 생산되는 쌀을 구입해 사용하고, 부족한 경우에는 지역농협에서 구입하고 있다. 마을에서 생산되지 않는 떡의 부재료는 양양군 및 강원도에서 품질이 가장 좋은 것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송천떡마을은 마을주민 모두가 함께 참여해 공동체를 구성해 마을의 전통을 유지하고 화합을 도모하고 있으며, 나아가 고객들에게 전통그대로의 떡 맛을 전해주기 위한 노력으로 10억 가까운 연 매출을 올리는 성공한 마을기업을 세웠다.
권은경 사무국장은 "마을단위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 간의 '협동과 연대'가 중요한데, 이는 농민들은 자본력·판매력·기술력·정보력 등 모든 분야에서 취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입과 눈길,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차별화된 상품으로 소비자를 공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더불어 "이제 막 시작한 마을기업들은 소홀하기 쉬운 회계·세무를 철저히 하고 주민 간 문제의식도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옷감 재료였던 모시, 송편 재료로 변신하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하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모시옷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이 모시옷의 재료가 모시풀인데, 한산면뿐만 아니라 이웃 화양면에서도 많은 모시가 생산되고 있다. 화양면 월산리 달고개 모시마을은 이 모시풀을 이용해 송편을 만들어 유명해졌다.
서천군은 충남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과거 한때 16만 명이 넘는 큰 군이었으나, 현재는 6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군으로 전락했다. 군세가 이렇게 위축되다보니, 화양면 월산리도 마을주민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청년들이 되돌아오는 않는 볼일 없는 마을에 불과했다.
이에 서천군은 2004년 '어메이티 서천'을 구호로 내걸고 군내 320개 마을을 대상으로 마을발전 시범사업 신청을 받았다. 이때 당시 마을이장을 맡고 있던 양만규 현 달고개 모시마을 영농조합법인 대표를 중심으로 마을주민들이 힘을 모아 시범대상 마을 선정을 추진했고, 3개 마을 중 한 곳으로 선정되면서 마을만들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모시송편을 만들 것은 아니다. 마을주민들이 일치단결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마을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목표의식을 세우고 주민 간 인사를 '사랑합니다'로 정했다. 이와 함께 수시로 주민 의식교육을 하고, 합동생일잔치 매월 1회씩 개최(현재까지 11년째 시행 중)해 사랑이 넘치는 함께 사는 마을분위기를 조성했다.
1년간의 노력 끝에 2005년 화양면 월산리가 어메이티 최우수 마을로 선정되면서 마을만들기에 탄력이 붙었고, 여기에 농촌진흥청 농촌테마마을로 선정되면서 2억원의 국비를 지원받게 됐다.
이때 시작한 것이 서천군의 대표적인 모시를 이용한 마을체험사업으로, 모시짜기, 태모시만들기, 실짜기와 함께 모시 잎을 활용한 모시송편 만들기였다. 단순 체험사업의 하나로 시작했던 모시송편은 체험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과거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모시잎을 이용해 송편을 해먹었던 기억을 되살려 만든 모시송편이 마을의 주요 소득원이 된 것이다. 2008년 달고개 모시떡마을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모시송편을 만들어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법인 설립초기 마을주민 전체가 출자를 하자고 의견을 모았으나, 실제 7명만이 출자에 참여해 법인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반응이 좋고 출자를 하고 싶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다시 출자자를 모집해 현재는 40명에 달하고 있다. 출자자 대부분이 56~85세의 주민이며, 출자자 중 33명 모시마을 떡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떡공장에서 일하는 주민 대부분이 50~60대 이지만, 내 직장이고 내 사업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정성을 들여 모시송편을 만들었다.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판매량을 급격히 늘어 2011년 추석에는 인터넷 판매사이트인 '옥션'에서 음식관련 14위, 떡관련 판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에서는 열흘마다 1차씩 공급해야 할 정도로 모시송편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제는 법인에서 직접 재배하는 모시밭 5천평이 부족해 30㎞나 떨어진 마을에서 모시 잎을 가져와야 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송편의 주재료인 품질 좋은 모시 잎을 사용하기 위해 서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받은 모시종자를 이용해 모시를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 4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떡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33명의 인건비로 1억 6천만원이 지급되었다. 자신이 일한 시간을 따져서 월급으로 급여를 받고 있는데,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천500만원을 받고 있다. 돈을 벌기보다는 다함께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인 조합원들에게는 월급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2013년에는 농촌공동체사업 대상마을로 선정되어 5억원을 지원받아 떡공장을 새로 신축하고 모시송편과 함께 모시한과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할 정도로 마을기업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카톨릭농민회 제14대 중앙회장을 지낸 양만규(72) 대표는 "농촌에는 오랜 역사를 통해 전해 내려오는 지역의 특색 있는 전통이나 제조기술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이를 발굴하고 현대에 맞게 발전시켜 활용한다면 가장 경쟁력 있고 차별화된 상품이 나올 수 있다. 농산물 생산 및 가공을 중심으로 3차 산업화를 통해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과 소득향상 효과도 도모할 수 있다. 특히, 고령화된 농촌마을에서 노인들의 일자리 찾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고향을 떠났던 젊은이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면서 마을기업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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