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오장환, 문학관은 빛바랜 채 세월만
①오장환, 문학관은 빛바랜 채 세월만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4.08.13 23:48
  • 호수 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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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문학관, 문학사업 없이 해설에만 의존

지방자치제의 전면 실시는 지역 문화 행정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지역민에게 친숙한 지역 출신 유명 문인을 내세운 문학관을 건립함으로써 지역 이미지 제고와 함께 문화 관광 상품으로 활용코자 했다. 이로인해 전국적으로 문학관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보은에도 2006년 월북시인인 오장환 시인을 추모하고 그의 시 정신을 기리는 오장환 문학관이 건립됐다. 건립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오장환문학관은 지역주민들의 문학사랑방으로, 문학을 향유하는 공간으로, 그리고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는 관광상품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장환 문학관은 죽은 오장환 시인이 박제된 채 머물러 있는 공간에 불과하다. 연간 방문객이 10만명이 넘고 이로인해 지역경제까지 활성화시키는 이름난 문학관이 부러운 오장환 문학관의 연간 방문객은 5천명 남짓. 그나마 인근 정지용 문학관의 덕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용문학관을 찾았다가 돌아가는 길에 오장환 문학관을 들렀던 문학기행단들이 최근 복원된 육영수 여사 생가 탐방으로 코스를 바꾸고 있고, 올해는 세월호 사고 여파로 7월말 현재 방문객이 2천명 정도에 불과하다. 문학관이 유적지처럼 한번 돌아보면 다시 찾지 않아도 되는 곳이 아니라 도서관처럼 찾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본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을 받아 국민들의 사랑받는 것은 물론 지역경제에 상당한 파급효과까지 가져오는 손꼽히는 문학관의 운영사례를 기획 취재했다. 해방 전 후 당시 시단의 왕이라는 평까지 들었지만 외지인은 물론 지역주민들조차 발길이 뜸한 시골 자그마한 문학관 속에 갇혀있는 오장환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①오장환, 문학관은 빛바랜 채 세월만
②전문가에 의해 거듭나다 - 최명희 문학관, 동리목월문학관
③국민들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 박경리 문학공원, 황순원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
④문학관이 지역경제를 견인한다 - 이효석 문학관, 김유정 문학촌, 태백산맥 문학관
⑤오장환문학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오장환, 멀리 돌아서 고향에 왔다
문학관은 지역 출신 문학인과 지역과 연관된 문학작품을 매개로 설립, 문학예술의 학습과 감상 공간으로 시민과 청소년의 정서 함양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문화 시설이다
200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많은 문학관이 건립되었다. 이전까지 문학관 건립이 주로 뜻 있는 개인이나 민간단체에 의해 건립되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 중앙 정부예산을 지원받은 지자체 주도 문학관 건립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과 그 맥을 같이한다.
오장환 문학관도 이 범주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지역의 문학관 건립과 차이가 있다면, 월북 작가여서 해금 절차를 거쳤고 또 월북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지역 주민들이 시인 오장환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소요됐다는 점이다.
오장환 시인의 문학관 건립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민족작가회의 등 문인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인근 옥천군이 2005년 정지용 시인의 생가 복원 및 문학관 건립, 이에 탄력을 받았다. 오장환 생가 및 문학관은 2006년 완공됐다.
1988년 해금이 되자 학계에서는 오장환이라는 인물 및 작품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전개돼 오장환 시인 관련 서적들이 출판돼 지하에 수장됐던 그의 작품들이 광야로 나왔다. 그리고 고향 보은에서는 오 시인의 높은 시성을 기리는 문학제가 1996년 5월4일 제 1회 오장환 문학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됐다.
문학제를 개최하기 전 충북작가회의에서 '오장환생가터표지석'을 만들었고 제 1회 오장환 문학전 때 회인면 중앙리의 생가 앞에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무산, 임시로 회북면사무소 광장에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3년간 면사무소 광장을 지켰던 생가터 표지석은 98년 제 3회 오장환 문학전 때에 겨우 생가 앞 마을회관 광장으로 이전했다. 이렇게 해금으로 문단 및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연구활동이 활발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시간 고향 주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그 이후 전국적으로 문학관 건립 붐이 일었고 생가복원 여론을 반영한 보은군도 2006년 부지매입비를 포함해 총 15억3천만원을 들여 5천619㎡(1천700평)에 생가를 복원하고 문학관 건립 및 잔디광장과 주차장을 조성했다.
문학관 설계는 전시실과 세미나실, 영상실, 문학사랑방 등을 갖춰 시인의 작품과 사진 등 유품을 전시함은 물론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문학작품 발표 및 교류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특히 문학공원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넓은 부지는 잔디 및 조경수 각종 화목류 등을 식재해 야외 행사는 물론 주민들의 휴식공간과 문학인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는 등 나름대로 미래를 내다보는 설계로 읽혀졌다.
당대 시단의 거목이지만 고향에서 홀대받던 오장환 시인이 1988년 해금조치 이후 18년 만에 드디어 환향한 것이다.

만들고 나니 시설은 허점투성이
문학관 설계는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었으나 오장환 문학관은 생소한 작가를 모셔놓은 전시공간에 불과하고 보은군이 계획했던 문학공원으로써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문학관 건립을 위해 당시에는 관련부서 공무원들이 전국의 문학관을 다니며 답사를 하기도 했다. 전국의 문학관 중 잘된 부분을 반영하는 벤치마킹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오장환문학관의 시설만 보면 작가 소개 및 작품 전시, 영상실, 커뮤니티 공간인 문학사랑방, 세미나실 등 문학관의 기본적인 구조를 갖췄지만 허점투성이다.
사무공간 조차 없이 문학관 방문객을 맞이하는 안내 데스크가 근무자들의 사무공간으로 전락했다. 최대 40명까지는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전시공간은 폭이 좁아 10명이 동시에 전시공간에 들어가 관람할 경우 공간이 꽉 차 북적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협소하다. 좁은 복도 양쪽에 전시물을 배치해 한 사람씩 보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실내 화장실 규모 또한 너무 적다. 구색만 갖추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더욱이 당초에는 세미나실도 없이 건축된 것을 나중에 증축을 통해 공간을 확보했을 정도로 안목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수용인원이 최대 40명밖에 안돼 1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춘 타 문학관에 뒤쳐진다.
그동안의 보도된 기사들을 점검해보면 보은군은 오장환 생가 및 문학관을 중심으로 문학공원을 만들어 지역주민 및 전국의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상품으로 확장시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문학관 건립 8년이 지난 지금 오장환 문학관을 보면 작가의 작품과 작가의 일생을 담은 공간을 보은군에 만들어놓은 것에 만족해야할 형편이다.
비전문가인 공무원들이 눈대중으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학예사가 있어서 설계에서부터 평면 구성까지 참여한다면 문학관 운영과 활성화에 있어 많은 이점을 가져다줄 수 있었는데 처음부터 보은군은 이 부분이 없었던 것이다.

운영 프로그램도 없으니
그렇다면 문학관이 지역주민이 폭넓게 문학을 향유하고 지역주민들의 사랑방으로 각광받는 공간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문학관엔 보은군에서 운영하는 해설사 1명과 청원경찰 1명, 청소 등 관리 인부 1명이 상근하고 있다. 문학관 관련 예산은 인건비를 포함해 관리비만 있을 뿐 이런저런 문학 관련 사업을 추진할 예산이 별도로 없다. 있다면 1천만원 상금의 오장환 문학상과 500만원 상금의 신인문학상을 포함한 오장환 문학제 행사비로 총 7천만원이 전부다.
하지만 오장환 문학상 등 오장환 문학제 사업은 시성 오장환을 기리는 사업이긴 하지만 특정한 날 하루, 이틀에 그친 것으로 오장환 문학관을 활성화 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
문예창작대학, 찾아가는 문학교실, 문학기행, 작가와의 만남, 작가의 작품 완독을 돕기 위한 작품 함께 읽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는 타 문학관의 선진운영사례를 오장환 문학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고 이것을 보존·전시함은 문학관 본연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작품을 일반인에게 널리 알리고 일반 대중의 문화 향수를 이끄는 것 역시 문학관의 역할이다.
최근에는 이같은 문학관 본연의 역할 이외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지역민에게 문학을 기반으로 한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문화기반 시설을 이용한 문화창달 및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역할까지 요구되고 있다. 보은군은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유정 문학촌이 위치한 기차역 이름이 김유정 역이고 우체국은 김유정우체국이다. 최명희 문학관 주변의 도로 이름이 최명희 길이고 박경리 문학공원으로 인해 새주소 이름이 토지길되고, 황순원 문학관은 소나기 길에 있다. 초보적인 인물 마케팅조차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보은군은 오장환문학관의 주소를 회인 5길에 두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오장환 시인의 동시 '정거장'을 써놓은 문학관 앞 시내버스 정거장 벽면은 관리되지 않아 오장환의 동시가 낙서처럼 보인다. 이것이 오장환 문학관의 현주소다.

그나마 문학해설사의 역할에 의존
행정의 낮은 인식, 문학관 자체적인 연중 운영 프로그램이 하나 없이 오장환 문학관이 그래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으로 만든 데는 오장환 문학관의 문학 해설사로 있는 임선빈씨의 노력 덕분이다.
쓸고 닦고 풀 뽑고 꽃 심어 가꿔 문학관을 반들반들하게 만들고 있는 임선빈 문학해설사는 방문객들에게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낯선 오장환 시인을 찰진 해설로 귀에 쏙 들어오게 하고 전시품에 다름 아닌 오장환 생가조차도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별 것 없는 안이지만 깨끗한 창호지가 발린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 안에서 방문객들에게 차 대접을 하기도 한다.
사용하지 않아 녹이 빨갛게 슬 법도 하지만 들기름을 먹여 반들반들하게 해놓은 무쇠 솥에서 여름이면 옥수수나 감자를, 가을·겨울이면 고구마나 송편을 쪄서 먹게 하는 등 문학관 방문객들에게 소중한 추억거리로 제공한다.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시인 오장환의 이름을 임선빈 문학해설사의 이같은 체험 제공으로 오장환 문학관을 기억하게 하고 재방문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재밋거리로는 좋지만 문학을 향유하는 문학관 본연의 역할로 방문객들에게 더 다가가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현재 경주의 동리목월문학관장을 맡고 있는 한국문학관협회 장윤익 회장은 문학관은 "단순히 작가의 유품 소집, 책이나 작품, 유품을 전시하는 전시기능에 그쳐서는 안되고 교육기능, 문예진흥 기능 등 다양한 기능을 활용해야 활성화된다며 앉아서 사람 오는 것만 기다려서는 안된다"며 "국민들에게 문학의 기능이 이렇다는 것 알려주고 문학 활성화 축이 되어야 하고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문학관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 안에서 문학관을 지속 가능한 문화공간이 되게 하는 발동기는 소프트웨어다. 다시 말해 문학의 고장 보은을 만드는 동력은 건물을 짓는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지어진 건물 안에서 일을 벌이는 것이다. 그만큼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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