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학교운영위원장에서 물러난 박홍규씨
최장수 학교운영위원장에서 물러난 박홍규씨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4.04.10 10:10
  • 호수 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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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동초·속리산중에서 14년간 재임하며 학교발전에 족적 남겨
▲ 속리산중학교 운영위원장 임기를 마치며 열정을 다했던 운동장에서 미소를 띠며 촬영을 하는모습

군내 최장수 학교운영위원장 박홍규(57, 삼승 원남2리)씨가 3월 31일자로 임기를 마치고 위원장 자리를 내놓았다. 학교발전을 위해 쏟았던 열정이 채 식기 전이어서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람이 들어감으로써 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박홍규 위원장의 활동은 학교운영에 학부모, 지역사회가 참여할 때 학교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997년부터 2014년 3월 31일까지 학교운영위원장만 14년 하는 동안 그는 그냥 이름만 석자 올려 학교운영위원 정원을 채우고 그럭저럭 임기만 채운 운영위원장이 아니라 활동내용을 적으면 책 한권 거뜬하게 쓸 정도로 운영위원장의 정석을 보여줬다.

처음 학교 운영위원장이 된 것인 큰 아들이 판동초등학교 4학년, 둘째 아들은 3학년이었던 1998년이다. 학교교육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터 초중고 모두 학교운영위원장 제도를 도입해 학교운영에 학부모와 지역주민을 참여시킨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고 관련 자료를 구해 공부한 후 자발적으로 학교운영위원회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위원장으로 선출됐는데, 한 번 책임자를 맡으면 그 자리가 무엇이든 반석위에 올려놓는 열정이 있어서 다들 기대하는 바가 컸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을 냈다.

학교유치에서부터 완공, 그리고 정착 등 지금의 속리산중학교가 있기까지 박홍규 위원장을 공로자로 꼽지 않는 사람이 없다.

2009년 전국 최초 공립 기숙형중학교를 삼승면에서 유치한 것은 거의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속리중학교와 내북중학교, 회인중학교를 통폐합한 기숙형중학교 설치계획에 대상도 아닌 원남중학교가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박홍규 위원장의 웅변으로 선정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공무원보다 더 엄한 감독으로 부실 차단
어찌보면 무에서 유를 창초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속리산중학교의 전신인 원남중학교 개축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원남중학교는 개축연한이 안돼 사실상 학교건물을 신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학교운영위원장인 박홍규씨는 학교가 낡은데다 북향이고, 배수 불량으로 장마 땐 운동장 한가운데 도랑이 생길정도로 학교환경이 열악해 도교육청의 문턱이 닳을 정도로 쫓아다녔다. 안 지어주면 아이들을 천막에서 공부시키고 자신은 매일 도교육청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하겠다는 선의의 '협박'을 하기도 했다. 결국 박홍규 위원장의 끈질긴 집념으로 건물 신축비 15억원을 확보했다.

당시 확보한 예산 15억원으로는 정형화된 설계도대로 지어야 했기 때문에 시대 흐름에 맞고 아이들이 교육활동에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구성하기 위해 설계변경을 이끌어내 15억원을 30억원으로 증액시키는 성과를 얻었다.

원남중학교가 좋은 학교의 모델이 될 수있도록 공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도중에 사태가 발생했다. 비오는 날 업자가 레미콘을 타설하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당장 작업을 중단시키고, 그동안 타설한 레미콘을 제거하지 않으면 공사하지 못한다"는 엄포를 놓고 공사차량이 왕래하지 못하도록 대문을 잠그고 잠수를 탔다. 시공사는 물론 교육청관계자들의 전화로 그의 전화기는 불이 났다. 그래도 꿈쩍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자 결국 시공사가 굳은 콘크리트를 모두 깨고 다시 정석으로 작업을 한 일화도 있다.

이에 대해 "한 번 지으면 4, 50년 후에나 다시 지을 수 있는데 설계대로, 원칙대로 튼튼하게 지어야 하고 또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습공간을 짓는데 부실이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원칙을 고수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속리산중학교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숙형중학교 설립 추진위원장에 명예감독관 직함을 얻어 각종 공사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았다.

봄 개학기에 맞추다보니 시기적으로 겨울철 공사를 피할 수가 없어 난방기를 틀고 비닐로 외부의 찬 공기를 막고 공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한시도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도 공사현장에 나와 난방기가 계속 돌아가는지 확인해 전문 감독관이 무서워(?)할 정도의 명예감독관이었다.  한 번은 기름이 떨어져 난방기가 꺼져있는 것을 새벽에 확인하고 새벽 2, 3시에 감독관에게 전화해 청주에 사는 감독이 그 시간에 기름을 구입해 공사현장에 왔을 정도로 엄한 감독관이었다.

감독만 제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간 구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4인1실 기숙사에 화장실을 2개를 넣고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본관 중심부에 휴게실을 갖추는 등 이용자 편의의 시설을 설치해 아이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이렇게 학교 외관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24시간 생활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시설하고, 아이들의 동선을 고려한 설계에 부실을 막기 위한 철저한 감독으로 총 198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최적의 학교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속리산중은 보수 없는 직장일 정도
2011년 3월 속리산중학교로 첫 입학생을 맞은 이후 학생들이 계속 늘어나 120인실 규모의 기숙사가 부족해 3년만에 180인실로 증축했을 정도로 속리산중학교는 전국에 소문나 있다.

3개 중학교 통폐합으로 연간 5억8천만원의 예산을 절감해 감사원 표창을 받고 고속도로현장에서 소나무를 구해와 식재하고 '생명의 숲' 사업에 응모해 5천만원을 지원받아 환경을 꾸며 100대 아름다운 학교로 선정된 학교다.

견학 오는 학부모나 타 학교 교사들이 학교를 참 잘 지었다고 평가할 때 기분이 참 좋다는 박홍규 위원장은 칭찬이 훈장보다 더 값지고 그동안 흘린 땀흘린 보람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건물이 완공된 후에도 박 위원장 관심은 계속 됐다. 올해 3월 31일자로 학교운영위원장을 내려놓기 전까지 매주 1, 2회 학교에 꼭 들러 아이들과 대화하고 또 선생님들과 대화하며 부족한 것, 개선해야할 것 등을 직접 수렴했다. 학교에 들르지 않을 때는 잠자기 전이라도 꼭 학교를 생각했다고 할 정도로 속리산중학교는 또다른 일터였다.

그러면서 일반 아이들이 수업 후 자유시간을 누리고 저녁시간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과 달리 기숙형이어서 24시간 학교에서만 있는 아이들을 위해 그는 아이들의 아빠를 자청, 기숙사에 간식용으로 사과를 들여 놓는 자상함도 보여줬다.

부모 밑에서 보살핌을 받다가 부모와 떨어져서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특기 적성교육, 인성함양을 위한 1인1악기 교육, 체력증진을 위한 검도 연마, 그리고 친환경 식재료를 활용한 급식 등 어느 것 하나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없다. 어쩌면 속리산중학교 선생님보다 더 아이들에게 신경을 쏟고 학교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고도 할 수 있다.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속리산중학교가 입소문을 타면서 학생수가 늘고 과거 보은읍, 마로면 다음에 삼승면이었던 지역세가 보은읍, 삼승면으로 성장한 것에 일조한 것 같아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늦게 철들어" 석사학위도 취득
처음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았던 판동초등학교에서는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  아침 7시30분이면 학교에 나가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돌려 공부하게 한 후 농장에 나갔을 정도다. 흙먼지 바람 일으키는 운동장에 파란 잔디를 입히고, 500만원을 들여 영산홍을 심는 등 화단을 정비하고 재력가의 도움을 받아 판동초등학교 유래비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수요일엔 교직원들과 친선 배구대회를 가지며 학부모와 교사간 소통의 시간을 갖고 오후 시간에는 교사와 면담하면서 애로사항을 수렴해 이를 해소시켜주는 등 운영위원의 모범답안지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렇게 판동초등학교와 속리산중학교 학교운영위원장을 하면서 공부에 흥미가 생긴 박 위원장은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젠 교육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학교운영위원장으로 보낸 14년은 그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학창시절 지금과 같이 공부를 했다면 원하는 직업을 갖지 않았을까 추억해본다는 박 위원장은 판동초(2회)를 졸업하고, 보은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22회)했던 성적 우수자였다.

하지만 부모그늘을 벗어나 읍내에서 생활하며 성적이 하락하자 교사였던 형님(박진규 전 보은교육장)의 불호령으로 원남중학교(1회, 현 속리산중학교)로 유턴, 청주 운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수의대를 나와 젖소목장을 하는 롤모델 외삼촌처럼 자신은 건대 수의대를 나와 목장주를 꿈꿨으나 모든 게 여의치 않아 연암축산대에서 공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고향 원남에서 보은군 1호 민간 가축인공수정소를 내 사업을 시작했다. 한 때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성업을 누리기도 했다.

현재도 인공수정업을 하면서 전공을 살려 양돈 1천200두를 사육하는 박홍규 위원장은 새로운 위원장이 교사와 학부모, 학교간 관계를 잘 형성해 학교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지역에서 자율방범대장, 방범협의회장, 보은군학교운영위원회 협의회 부회장, 보은축협 이사, 판동초 총동문회장, 군 농업경영인회 감사를 맡기도 했으며, 도교육감 상 등을 수상한 박홍규 위원장이 3월 31일 운영위원장을 내려놓으면 자신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속리산중학교 교정을 둘러보며 자신의 손때 묻은 과거를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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