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3. 예술입힌 작은섬, 관광명소로 활력 찾은 일본 나오시마
②-3. 예술입힌 작은섬, 관광명소로 활력 찾은 일본 나오시마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3.12.05 10:15
  • 호수 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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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폐기물로 오염된 섬, 현대미술의 천국이 되다
▲ 나오시마 혼무라 지역의 오래된 가옥에 예술을 입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나오시마 혼무라 지역 거리의 모습.

나오시마(直島). 일본 가가와현 세토나이카이 국립공원 구역에 속하는 섬이다. 둘레가 16㎞, 면적 14㎢로 우리나라 여의도 정도에 불과하며 인구는 3천300여명 남짓하다. 이 작은 외딴 섬이 1년이면 거주 인구의 100배가 넘는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명소가 됐다.
세계적인 여행전문지 '콘드 나스트 트래블러’는 이 섬을 파리, 베를린, 두바이 등과 함께 세계 7대 관광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유는 섬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예술의 섬'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20년전만 해도 줄어드는 인구와 황폐해진 경제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리던 작은 섬이 어떻게 세계적인 관광지로 이름을 알리게 됐을까?

◆기업의 의지가 낳은 산물
나오시마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죽어가는 섬이었다. 1917년 섬 북쪽에 미쓰비시사가 중공업단지를 건설한 후 70여년간 구리 제련소에서 나오는 연기와 폐기물로 섬은 황폐해졌다.
1960년대 7천900여명에 달하던 인구는 1980년대 중반 절반 이하로 줄었다. 회생이 불가능할 것 같던 섬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현 행정가의 강력한 자구노력과 이에 화답한 한 기업가에 의해서다.
미야케 치카즈쿠(三宅親運: 1909~1999)는 36년 동안 나오미사초 단체장을 지냈다.
미야케는 섬 일대를 '깨끗하고 건강하고 편안한 정경’으로 바꾸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섬 북쪽을 '산업지역’. 섬 관문인 미야노우라 항 인근은 중심상권역으로 '생활·교육 영역’, 남부 혼무라와 고단지 마을 지역을 문화예술리조트 영역으로 나눠 개발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재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미야케 동장은 지역 기업가들을 찾아다니며 계획을 설명하고 투자를 권유했다.
여기에 화답한 것이 후쿠다케 출판사의 후쿠다케 데쓰히코 회장이다. 대도시인 오카야마 태생인 그는 나오시마 남쪽 땅을 사들여 어린이를 위한 캠프장을 지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미야케 동장은 이미 1970년대 초반 일본의 유명 건축가인 이시이 가즈히로에 의뢰해 나오시마 초등학교와 중학교, 유치원을 리모델링, 예술적 조형미가 두드러진 새로운 학교로 재탄생시킨 바 있었다.
후쿠다케 회장은 문화예술에 대한 선진적 조예를 가진 미야케 동장에 감복해 기업의 사회 공헌 차원에서 나오시마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결정한다. 그가  사망하자 후계자인 아들 후쿠다케 소이치로 현 베네세 그룹 회장이 유지를 받들었다.
후쿠다케소 소이치로는 1987년 섬의 남쪽을 사들인 후 1988년 '나오시마 문화촌 구상’을 발표하고 1989년 국제어린이 캠프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부터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함께 본격적으로 예술의 섬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죽어가던 심이 현대미술의 본거지로
베네세 그룹과 안도 타다오의 만남이 나오시마를 현대미술의 본거지로 탈바꿈시킨다. 첫 사업은 '자연, 예술, 건축의 공생’을 주제로 한 미술관 건축이었다. 건물은 안도 타다오의 특징인 노출콘크리트 공법이 오롯이 녹아있다.
건물 밖 오브제와 내부 그림을 한 동체 안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해 눈을 뜨고 바라보는 모든 곳이 작품이 되는 진경을 느낄 수도 있도록 했다.
이어 건축된 지중 미술관(2004년)은 안도가 꿈꿔왔던 건축 철학이 집약된 공간이다. 미술관을 땅속에 넣었지만 덕분에 자연과 미술작품, 건축물이 완전한 조화를 이뤄 숭고한 감정을 자아낸다. 언덕 지하에 미술관을 매설해 외형적으로 자연능선을 해치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조명이 없이도 모든 공간에는 사방에서 빛이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과 물질의 진정한 조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하다.
일본 출신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인 구사마 야요이 작품들 또한 나오시마 곳곳에 설치돼 있다. 미야노우라 항에 닿으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붉은 호박과 베네세 하우스 앞 해안에 위치한 노란 호박은 이제 나오시마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자리매김됐다.

◆주민 참여의 이에(家, 빈집) 프로젝트
베네세 그룹이 처음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만든다고 선언했을 때 주민들은 이들을 반신반의했다. 결국 제 잇속 차리기 아니냐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점차 변해가는 섬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진심에 감동하기 시작했다. 감동의 결정은 '이에 프로젝트(집 프로젝트)에서 나타났다.
이 프로젝트는 섬 동쪽해변의 전통마을인 혼무라(本村) 지역의 150~200년 된 전통가옥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주민들의 예술참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어서 나오시마의 대표적인 예술프로젝트로 단연 주목을 받는다.
혼무라 지역의 한 주민이 동사무소에 오래된 가옥을 기증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주민들은 베네세 그룹과 협의해 이 집을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만들었다.
설치미술가인 미야자마 다츠오가 개축을 맡고 마을 내 125가구 전 주민이 설치에 참여했다. 사각 풀장 안에 디지털 계수기가 들어있는데, 주민들이 놓고 싶은 대로 계수의 위치가 정해졌다고 한다. 물론 세토내해를, 숫자는 그 섬에 사는 사람을 의미했다. 이 작품 '시간의 바다(Sea of Time)’가 설치되면서 1998년 3월 이에 프로젝트 1호인 카도야가 탄생했다. 모퉁이에 있는 집이라는 의미인데, 섬의 전 가구, 기업, 예술가가 모두 참여해 서로에 대한 긍정적 이해를 돕는 계기로 작용했다.
카도야 성공에 자극을 받은 안도 타다오는 이듬해 버려진 절터를 이용해 제2호 건물인 남사(南寺, 난지)를 만들었다. 내부에는 공간과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 '달의 뒷면’이 놓여있다.  내부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기본 2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 인기작품이다.
이밖에 전통 신사의 계단을 광학 유리로 바꿔 지하에서 지상으로 연결되게 한 '고오진자(護王神社)’, 옛날 소금창고로 사용하던 곳에 아크릴로 그린 현대화를 건 모습ㅇ리 인상적인 다'이시바시(石橋)’, 다이방으로 된 옛 기원의 모습을 재현한 고카이쇼, 버려진 치과건물을 각종 잡동사니와 자유의 여신상 등을 콜라쥬 형식으로 배치해 톡톡 튀는 감각을 주는 '하이샤(치과)’도 있다.
이들 작품은 1건물 1작품 개념으로 지난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모두 7채가 완료됐다. 올봄 완공된 '안도 뮤지엄’까지 더하면 8채가 완성된 셈이다. 원래 100년된 건물이던 안도 뮤지엄은 안도 타다오가 이를 모두 해체한 후 자신을 대표하는 노출 콘크리트로 집을 짓고 해체한 집을 다시 붙인 작품이다. 안도가 살아온 역사와 대표 작품 소개, 베네세 그룹과 나오시마 그룹 등이 전시돼 있다.
베네세 그룹이 현재까지 나오시마에 투자한 금액이 6천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앞으로 30년 동안 더 투자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직은 투자에 비해 수익이 그다지 나지 않는 사업이지만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경제는 문화의 시녀"라고 강조할 정도로 투자대비 효율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문화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문화의 힘을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신념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이같은 베네세 그룹의 의지로 오지에 가까웠던 나오시마는 가가와현 35개 지자제 중 소득 1위로 올라섰다. 인구 감소세도 2001년을 기점으로 완만해지고 있다.
29년 전만 해도 잠잘 곳이 한두 군데에 불과했으나 최근엔 민박집과 음식점이 30여 곳으로 늘어났다.

◆나오시마의 효과 인근 섬으로 전파
이같은 나오시마의 효과는 인근 섬으로 확산됐다. 한센병 환자들의 요양섬으로 쓰였던 오시마, 일본 최악의 산업 폐기물 투기사건이 발생했던 테시마, 제련소가 폐쇄되며 쇠락한 이누지마 등에서도 '이에 프로젝트’와 비슷한 시도가 진행되거나 미술관으로 바꾸는 작업 등이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베네세 그룹이 2010년 처음 시작한 세토우치 국제 미술제는 세토내해에 있는 여러섬의 자연과 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제다. 올해는 나오시마를 중심으로 데시마, 오기지마 등 12개 섬에서 봄, 여름, 가을 세 차례로 나눠 열렸다. 첫 회였던 2010년 관람객이 무려 94만명이 다녀갔고 2011년에도 4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일본 관광청은 밝히고 있다.
기타가와 프람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 총괄 감독은 “경제 효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오시마 등 섬에 살고 있는 고령의 노인들이 직접 행사에 참여하면서 활기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지역과 장르, 세대가 다른 여러 사람과 하나의 프로그램을 완성해가는 즐거움이 우리 행사의 가장 큰 목표다"라고 말했다.
나오시마 취재를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찾은 공항에서 한양사이버대학교 디자인학부 3학년 박지혜 학생 등 4명의 한국 대학생을 만났다. 3박4일간 나오시마 등 섬을 투어하며 세토우치 예술제를 보고 베네세 하우스, 지중미술관 등을 관람했다는 이들 대학생들은 나오시마 얘기를 많이 들어서 투어를 했는데 너무 좋았다 역시 예술의 섬이었다고 감탄했다.
나오시마 섬 거주민들의 즐거움, 커뮤니티의 부활, 이 모두가 예술을 통해 이뤄낸 성과다. 예술이 침체된 지역에 활력을 준다는 것을 나오시마의 성공적인 사례에서 또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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