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2. 전통문화에 현대예술 입힌 지속가능 창조도시 일본 가나자와
②-2. 전통문화에 현대예술 입힌 지속가능 창조도시 일본 가나자와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3.11.28 00:39
  • 호수 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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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로 인구45만명의 도시가 800만명이 운집하는 도시로 바꾸다
▲ 공장을 공연장으로 만든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시민들의 예술사랑방이다.

가나자와(金澤) 시는 일본 혼슈의 중서부 지방에 위치한 이시카와(石川) 현의 행정엸교육엸문화 중심지로 인구 45만여 명의 작은 교토라 불린다. 에도시대이후 전쟁을 벌이는 대신 학문과 예술을 장려한 봉건 영주에 의해 일본 내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가가유젠(염색), 금박 등의 전통 공예와 다도 등 격조높은 문화를 꽃피우며 번성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도쿄, 오사카 등에 비해 공업화가 늦어지면서 평범한 지방 도시에 불과했던 가나자와가 최근 문화예술교육 중심의 창조도시로 부활하면서 2009년 6월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창조도시 네트워크(크래프트&포크 아트 부문)의 일원이 되는 등 일본을 대표하는 창조도시로 새로운 명성을 얻고 있다.

인구 45만여명인 가나자와를 찾는 관광객은 현재 8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가나자와가 한 때 잘나가던 역사도시에 머물지 않고 국제적 주목을 받는 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가나자와의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즐기는 시민들, 그리고 그런 시민을 중심에 놓은 가나자와 시의 문화정책에서 해답을 찾는다.

1996년 조성된 시민예술촌과 2003년의 창작의 숲, 2004년 문을 연 21세기 미술관 등 3대 문화예술 관련 시설이 높은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오로지 시민 행복도시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오래된 공간을 재활용하고 그렇게 해서 재탄생한 새로운 창조적 공간에서 시민들이 행복한 문화예술을 즐기고 그것이 외부에 알려져 명성을 얻고 지역 활성화의 기폭제 된것이다.

◆100년 된 방직공장이 시민예술촌으로
1996년 문을 연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은 창조도시 가나자와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취재진이 찾아간 시민예술촌은 축구장 2개를 합친 것보다 넓은 잔디밭과 붉은색 벽돌 건물, 그리고 건물 앞을 흐르는 개울이 눈에 들어온다. 100년 넘은 방적공장 부지가 공원인지 예술촌인지 헷갈릴 정도다.

1919년 설립된 방적공장이 1993년 문을 닫자 가나자와 시는 이곳을 인수해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 했다. 9만7천㎡에 달하는 넓은 부지에 자리한 공장, 창고들은 음악, 연극, 미술 등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는 연습과 발표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음향과 조명 등 전문 설비가 갖춰져 있지만 가나자와 시민 등 지역에 한계없이 사용료는 6시간에 1천50엔으로 오픈 이래 한 번도 사용료가 오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3~4시간이 걸리는 먼 지역에서도 가나자와를 찾는다고 한다.

이같이 시민예술촌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개관 후 6개월간 10만 명의 시민이 참가했고, 이후 5년간 이용자 수가 100만 명을 넘겼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240만 명이 이용했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찾는 시민예술촌의 핵심은 365일 24시간 개방된다는 것. 누구나,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곳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동이 트기 전에 찾아와 색소폰을 부는 회사원, 새벽 1~2시까지 연습을 하는 직장인 밴드 등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24시간 문을 열면 관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호쇼 유타카 촌장은 “시민들이 규칙을 잘 지켜줘서 별 어려움 없다. 다들 이곳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집에 낙서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없지않느냐"고 답했다.

관리와 운영은 시민으로 구성된 가나자와예술창작재단에서 전담한다. 촌장도 이 재단에서 선출한다. 예술 관련 동아리의 연습 및 공연, 전시가 가능하고 어린이 예술 교육 및 체험도 이뤄지며 노년층의 문화예술 공간 역할도 한다.

관리 운영비는 이용료 수입이 10%에 불과하고 90%를 시 예산으로 충당하지만 시민들이 즐거운 예술활동을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시 예산 과다충당에 대한 이의가 없다.

시민들이 참여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고 외지인들도 많이 오고 그것이 도시의 활력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효과에 만족하는 것이다.

◆'창작의 숲’-전통 공예예술 활동
시가지에서 차를 타고 동남쪽으로 30분 정도 가면 닿는 유와쿠온천 인근 언덕에 자리한 '가나자와 창작의 숲’도 가나자와 시가 운영하는 문화공간이다.

본래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민가들을 보존해놓은 사립박물관이었던 창작의 숲은 2005년부터 시민들이 판화, 염색, 직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9만㎡ 규모의 이 공간은 100년~120년 이상된 일본 전통 여관 건물을 재활용한 숙소와 사무동 등이 자리한 본관 건물 외에도 4개의 공방 건물과 1개의 세미나건물이 호젓한 숲과 조화를 이룬다.

이곳은 가나자와 지역의 젊은 전통 공예 예술인 수십 명이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입주해 작품을 창작하는 공간이다. 이와 함께 가족 또는 동아리 단위의 숲속 문화 체험 및 전통 공예 체험장의 역할과 아웃도어 휴식공간 및 세미나 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 물론 운영은 모두 시민 자생 조직이 전담한다.

구로자와 신 창작의 숲 소장은 “옛 건축물을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와 창조적 활동을 하는 것으로 가나자와 사람들은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에 대한 오랜 전통과 갈망이 있었기 때문에 창작의 숲은 자연스럽게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곳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연간 2만여 명이 이용한다. 입주한 젊은 전문예술인에게는 소액이지만, 창작 지원금까지 지원되고, 이들이 때때로 시민과 어린이들에게 강사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21세기 미술관’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
시민예술촌과 창작의 숲이 과거의 문화유산을 활용한 곳이라면 가나자와의 또다른 명소인 21세기 미술관은 세계적 주목을 받는 최신 건축물이다.

문화예술 창조도시 가나자와의 현대적 랜드마크인데 2010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지마 가즈요, 니시자와 류에의 설계로 2004년 지어졌는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 중심의 건축으로 명성이 높다.

전시품보다 건물이 더 유명한 미술관인 21세기 미술관은 수족관처럼 투명하고 공원처럼 개방적인 모던한 건축으로 2004년 개관 이래 쇠락하던 도시의 이미지를 단숨에 바꾸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가나자와 시청과 가나자와 성, 그리고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兼六園)에 인접 한 21세기 미술관의 콘셉트는 '정원처럼 들어가기 쉬운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형태부터 특이하다. 완전하게 둥근 원형의 납작한 건물은 외벽을 모두 120장의 대형 유리로 연결해 안팎의 경계를 허물었다. 또 동서남북 4개의 출입문은 건물의 앞뒤를 없애고 정문이 따로 없고 4곳의 출입구를 통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미술관 밖의 부지와 미술관 내부간 높이에 차이가 없다. 즉 미술관 안으로 들어올 때 올라서는 계단이 없는 것도 특징이기도 하다

경계와 정형을 허문 개방성이 특징인 이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걸작품인 셈이다. 그래서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몰려드는 것이기도 하다.

가나자와 시가 2004년 초,중,고교가 이전하고 남은 부지에 토지 구입비를 포함, 200억 엔을 들여 완공한 이 미술관은 지난해까지 이미 328억 엔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만들어 낸 것으로 가나자와 시는 밝혔다. 개관한 지 1년 만에 가나자와 시 인구의 3배를 훨씬 넘는 157만 명이 방문하기도 했으며 매년 150만 명 이상이 꾸준히 찾는 곳이다.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무료 존(Zone)에는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는데 하나같이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대중적 작품들이다. 이와함께 가나자와 시민들이 만든 각종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시민갤러리도 미술관 내부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유료로 운영되는 특별전은 1년에 4, 5회 열린다.

전시회 존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용 가능한 도서관, 카페 등이 있는 교류 존도 많은 방문객이 찾는데 밤 10시까지 무료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21세기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가 아르헨티나 출신 레안들 에를리치의 수영장(2004)이다. 강화유리에 물을 채운 실내 수영장을 사이로 지상과 지하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21세기 미술관의 오치아이 히로아키 홍보실장은 “이 미술관은 현대미술관이면서 동시에 학생들의 작품 발표의 장이 되거나 미래를 이끌어갈 초등학생들을 위한 예술문화교육활동의 장이기도 해, 문화 창조의 중심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지역의 초등학생은 4학년 때 누구나 필수적으로 미술관 체험을 하도록 교육과정이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시민예술촌, 창작의 숲, 21세기 미술관으로 통칭되는 창조도시 가나자와시의 문화정책이, 문화예술이 침체된, 정체된 도시를 재생하고 활력을 불어놓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2010년 현재 가나자와를 찾는 관광객 수가 815만 명가량이다. 시 인구가 45만 명 정도이니 20배 가까운 관광객이 오는 셈이다." 가나자와 시 문화정책과장 도기시 유타카 씨의 설명이 침체된 지역을 살리는데 있어서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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