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 어떻게 가능한가(국내외 사례 찾기)
②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 어떻게 가능한가(국내외 사례 찾기)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3.11.13 22:08
  • 호수 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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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공소 골목에 예술을 입히니…

▣ 글 싣는 순서
① 예술, 쇠락한 지역 탈출구될까
→②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 어떻게 가능한가(국내외 사례 찾기)
 ▣ 철공소 골목에 예술가들이 몰려든 서울 문래동
 □ 도심흉물 폐공장이 예술단지로 거듭한 인천 아트플랫폼
 □ 전통문화에 현대예술 입힌 지속가능 창조도시 일본 가나자와
 □ 예술입힌 작은섬, 관광명소로 활력 찾은 일본 나오시마

경제개발로 꽃피운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급속한 도시화를 수반했다. 이로인해 우리고장과 같은 농촌은 농업을 등진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함으로써 빈자리가 발생하고 그 빈자리는 또 다른 젊은이들이 채운 게 아니고 빈자리로 남았다. 인구는 급격 감소해 지역의 생산 기반마저 무너졌고 소비인구의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70년대 말 13만명에 달했던 보은군 인구는 2013년 10월말 현재 3만4천295명으로 10만명 가까이 감소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9천826명으로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는 인구구조를 갖고 있다. 그 어느 분야에서도 지역의 활력을 기대할 수 있는 면이 없다. 이같은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11개 읍면마다 적게는 2개, 많게는 4, 5개 까지 있었던 초등학교 수가 현재는 1면 1개교에 보은읍과 마로면, 삼승면이 2, 3개교가 유지돼 15개교에 불과하다. 지역에 있던 각종 공공기관, 금융기관은 폐쇄하거나 인근 지역과의 통폐합되는 등 지역은 점차 쇠락하고 상권은 위축되는 실정이다. 보은군 중 가장 번화가이면서 인구가 집중된 군청 소재지역도 저녁 7시만 되면 상가를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유령의 도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속리산 국립공원 등 지역 내 소재한 유명 관광지를 찾는 유동인구가 있긴 하지만 지역에는 여전이 아무도 살지 않아 방치된 무너진 빈집들이 상존하고 있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던 근대문화유산 정도의 공공기관 청사는 정부의 재산관리 계획에 의해 매매돼 여지없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부서지고 있다. 이같이 우리고장은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을 정도로 쇠퇴의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본보는 문화예술이 어떻게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어떻게 지역을 재생시키는지, 8월21일~23일, 8월 28일~9월 1일까지 취재한 국내외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지역 재생의 지향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아주 재미있는 동네가 있다. 예술과 철공소.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할 수 없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교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기분좋은 만남이 있다. 예술가들의 새로운 중심지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얘기다.

쇳소리가 끊이지 않고 메케한 공기로 뒤덮인 곳, 1970년대 후반 철재산업의 중심지였던 문래동이 10여년 전부터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낡은 건물에 형형색색이 그림을 입혔다. 그러면서 침체됐던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늪을 매립해 방직공장을 지었던 문래동은 1970년 공업화가 시작되면서는 수만개에 달하는 철공소들이 밀집한 철재산업의 허리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서비스업 위주의 산업화로 철재산업은 시흥을 비롯해 김포, 검단, 시화, 반월 등 수도권 공단지역으로 옮겨가고 1990년대 외환위기까지 겪으면서 문래동은 건물 곳곳이 비어있던 서울의 대표적인 침체지역이었다.

그 많던 철공소는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내내 복작거리던 거리는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 수많은 철공소와 철재상들이 떠난 자리는 폐허처럼 남았다.  특히 철재상들이 입주했던 상가 2~3층이 그랬다. 건물이 비었다고 해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가 곤란했다. 1층에 입주한 철공소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곳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바로 예술가들이다. 리스크를 안고 있는 건물의 전월세는 싸게 마련. 그것이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싼 임대료라는 매력 덕분에 비어 있는 공간에 다양한 장르의 작업실이 들어섰다.

젊은 작가들의 작업실이 밀집해 있던 홍대 인근 지역이 상업지구로 뜨면서 33.06㎡ 전후의 작업실 시세가 크게 올라 가난한 예술가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문래동으로 스멀스멀 들어온 것이다.

7, 8년 전부터 그렇게 하나둘 입주하기 시작한 예술가들이 지금은 200여 명. 100여 개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고, 춤을 춘다. 그들은 시끄러운 낮 시간을 피해 저물녘이면 하나둘씩 자신만의 창작공간으로 찾아든다.

문래동 예술가들이 저비용만 고려해서 문래동에 정착한 건 아니다. 낮에는 시끄럽고 밤에는 적막한 준공업지 특유의 환경이 예술가들에겐 최적지였던 것이다. 음악가, 설치미술가, 공연단은 문래동의 낮을 사랑했고, 시나리오 작가, 만화가, 기획자들은 문래동의 밤에 빠졌다. 방치된 건물은 미술가들을 열광시켰다. 들어가서 멋대로 조형물을 달고,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해도 눈감아주는 곳은 드물다.

문래동의 공간이 이들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특유의 그림으로 채색되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불러 모아 문래동은 새로운 문화특구로 발전, 조금씩 활력을 찾고 있는 곳이 됐다. 생기를 잃은 지역을 살아나게 한 것은 문화예술이 가진 힘이다.

◆낮엔 시끄러운 쇳소리 밤엔 예술 창작공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주최로 이뤄진 공동기획에 참여한 기자단이 서울 문래동을 방문했던 문래동의 낮은 쇠를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3가의 철재상가 골목에 들어서면 이곳의 상징처럼 들려오는 소리라고 한다. 골목 구석구석에 밀집해 있는 철공소에서는 쇳가루로 범벅이 된 작업복 차림의 사내들이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노동자의 작업 열기가 가실 즈음, 문래동 철재상가 골목은 변신을 한다. 오후 6시 무렵이면 철재공장의 셔터가 서서히 내려간다. 그러면 더 확실하게 문래동의 철공소 골목은 예술 골목으로 변신한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그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철재상가 2층과 3층의 창문 불빛이 하나 둘 켜진다. 문래동에 모여 사는 예술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공장이 가동될 때는 보지 못한 닫혀있는 출입문에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그려져 있고 공장 이름의 간판도 예술이다.

건물 곳곳에는 이들 예술가의 흔적이 묻어난다. 아기자기한 작업실 푯말에서부터 철공소 셔터 문에 그려진 익살스러운 룏그래피티(graffiti : 벽이나 그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까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이후 문래동 공단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문래창작촌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의 매력을 한눈에 알기가 어렵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방문객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대다수 작업실이 건물 지하나 옥상에 있어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올해 3월에는 문래동에 입성한 작가들의 동의를 얻어, 작가들의 작업실을 표시해 둔 작업실 지도도 만들어졌다.

문래동 예술인들의 사랑방을 자처하는 공간도 생겨났다. 지난 7월 12일 문을 연 갤러리 카페 '솜씨(Cotton Seed)’에 가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문래동 작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솜씨 갤러리의 박창범 매니저는 "솜씨는 상업성을 지양하는 비영리 전시 공간이다. 이곳은 상업 화랑이 아니다 보니, 담소를 나누거나 잠깐 쉬어가기 위해 찾아오는 작가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사진명소로 부각, 소문 듣고 찾는 사람 늘어
이같이 문래 창작촌이 서울의 이색 공간으로 부각되면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수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예술가들이 온 뒤로 확실히 달라진 문래동은 주말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명소가 된 것이다.

철공소 거리에 둥지를 튼 '문래창작예술촌’을 알리기 위한 공정여행 '올래? 문래!’라는 탐방 프로그램까지 생겼다.  역사해설, 골목탐방, 전시공간 관람 등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입주작가가 기획한 것으로 철공소와 예술가의 작업실이 공존하며 일궈낸 새로운 문화 공간이 입소문을 타고 있지만 혼자 찾아가기엔 낯설고 철공소 공장 사이사이에 숨은 예술작품을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시민 탐방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문래동 철공소의 역사를 알려주고, 철공장과 예술이라는 이질적인 것들이 섞이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기획 의도다.

사람들의 발길을 부르는 이곳에서 명물로 자리 잡은 곳들도 생겨났다. '노란 가게’로 불리는 슈퍼마켓 '충남상회’와 건물 2층에 주인 아주머니의 사진이 붙어 있는 '복길네 식당’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원래 이곳 철재상가 골목이 영화도 자주 찍고 주목을 받는 곳이었지만, 최근에는 예술 옷을 입으니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젊은 사람들이나 외국인들도 꽤 많이 찾아온다. 주말이면 문 닫은 뒤의 철공소 골목이나 가게 외관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문래동이 부각되면서 예술가들에게는 고민거리가 생겼다. 방문객들이 예술가들의 작업실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이다. 이곳저곳에서 찾아와 작업실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고 작품 활동에 열중하고 있을 때에는 사실 이런 관심이 불편하기도 하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리낌 없이 작업실을 공개하다가 요즘에는 아예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의 고민은 문래동이 부각되면서 임대료가 인상되고 있다는 것. 보증금 200만~300만원에 월세 20만~25만원 정도의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이곳에 온 사람들이 많은데 문래동이 유명해지면서 월세가 30만원을 웃돌기 시작했다는 것.

문래동에 안착한 지 5년이 되어가는 소로(SORO) 퍼포먼스 아트센터의 박재선 대표는 "우리의 경우 단체이기 때문에 작업공간을 개방하고 있다. 그동안 피곤할 정도로 작업실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문래동은 예술인들이 싼 임대료를 찾아 모여들어 형성된 일종의 예술 자생촌이다. 최근 이곳을 지역 문화 특수처럼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며 "지역이 재생되는데 문화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긴 한데 임대료가 올라 또다시 더 낮은 임대공간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입주 예술가들 임대료 인상을 걱정할 정도로 문래동은 문화예술이 지역을 재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 모범 케이스다.

하지만 문래동 예술촌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지난해 시내 준공업지역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서울시 조례가 개정됐고 인근 주민들과 개발업자들은 고층 주상복합 건물을 희망하고 있다. 철거가 시작되면서 영세공장은 물론 예술가들 역시 문래동을 떠나게 된다. 문래동 예술촌을 터전으로 하는 공연과 전시가 일시적 퍼포먼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시는 재개발을 앞둔 문래동에 대해 현 모습을 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면서 옛 모습 일부를 의무적으로 보존하는 흔적 남기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예술가들은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곳을 창조지구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문래동은 군수공장에서 예술촌으로 변신한 중국 베이징이 다산쯔처럼 서울의 새로운 문화명소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황병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지금의 저밀도 산업시설을 그대로 둔 채 한쪽을 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기존 모습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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