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장한 어버이상 받은 신옥자 어머니(61세)
어버이날 장한 어버이상 받은 신옥자 어머니(61세)
  • 편집부
  • 승인 2013.05.08 23:11
  • 호수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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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몸으로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강한 모성에 박수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이 자식꽃이라고 말한다. 말 안 듣고 속 썩이고 걱정만 한 짐 안겨주는 자식이 뭐 예쁘냐고 하면 아니란다. 그래도 예쁘단다.

부모는 매일 자식 생각, 자식 걱정인데 자식은 자기 인생 살기 바빠 가끔 부모를 걱정하고 가끔 부모의 노고를 떠올린다. 어버이의 노고는 녹녹치 않다.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일이 맘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힘이 든다. 그래도 부모는 다시 힘을 내고 힘든 현실을 견뎌 강한 어버이가 된다.

어릴 적 화상으로 상처를 입은 어머니가 있다. 수한면 질신리에 사는 신옥자 씨다. 두 아들의 어머니인 그분 역시 모진 인생길에서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강해져야만 했다. 불편한 몸에도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는 어버이날 충북에서 유일하게 국무총리상(장한 어버이상)을 수상했다.

# 열심히 살아온 장한 어머니 다른 부모와는 조금 달랐다.
5남매 중 장녀였던 어머니는 5살이었던 어린 시절 얼굴에 화상을 입어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많은 걸 이겨내야만 했다. 환갑이 된 나이에도 그날의 상처 때문에 때론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해온다.

고향인 청주에서 수한면 질신리로 시집을 왔을 당시, 지금은 길이 잘 포장돼 살기 좋아졌지만 해발 300m 산중턱에 자리한 마을은 길이 경사가 심해 다니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곳에서 남편과 농사를 지었다. 예전에는 논에 모를 심기 위해 소를 부려 논을 갈았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었던 남편이 소를 부릴 수가 없어 마을 사람들에게 논 좀 갈아 달라 부탁을 하고 어머니는 대신 품앗이로 고추도 따주고, 담배도 심어 주었다.  화상으로 손도 많이 불편한 상태였기에 농사를 짓는 것이 힘들었지만 자식들 키우며 먹고 살기 위해 내 농사며 남의 집 품앗이며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 생계를 꾸려나갔다.

어머니의 고생은 여느 어머니들이 시절 앞에, 가난 앞에 해야만 했던 고생보다 조금은 더 힘들고 고단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었던 농사일 이제는 조금 줄이고 쉬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어머니는 여전히 농사일을 고집하신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져 다니기도 불편한 산 아래 있는 논에 모를 심기 위해 올해도 파종을 했다. 자식들이 땅을 묵히더라도 어머니 힘들다며 논농사는 그만 두라고 만류를 했지만 논을 묵히면 풀이 자라고 보기가 싫어 논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우리 아들들이 엄마 힘들다고 논농사는 짓지 말라고 했는데, 땅을 묵히면 보기가 싫어서 안 돼. 그래서 내가 우리 아들들한테 모심을 때 하고, 타작할 때 하고 딱 두 번만 부를 테니까 그때만 와서 도와줘, 하고 꼬셨어." 그러면서 해맑게 웃으신다.

남편이 작년 가을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어머니에게 아들들은 어머니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 되어 준다.
논에 다니려고 노약자용 중고오토바이를 한 대 구입했다. 그 오토바이 덕분에 논에 다니는 어머니의 수고가 조금은 덜어졌으면 좋겠다.

 

#반듯하게 자라준 두 아들
부모의 마음은 모두 똑같은 것이다. 내 자식 맛있는 거 많이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키는 것을 어느 부모가 안 바랄까.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 먹고 살기도 바빠 자식들에게 좋은 옷도 못해 입혀 다른 어미가 자기 자식 예쁘고 좋은 옷 입히는 게 부러웠다. 나도 내 자식한테 예쁜 옷 입히고 싶은데. 그런 말을 하면 한 마을에 살던 시작은어머니가 옷은 아무 거나 입혀도 된다며 자식들 머리 속에 글을 넣어줘야 한다고, 무엇보다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러주셨다. 질신리가 남편 고향이었기에 이웃에는 시작은어머니와 시댁 형님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처럼 챙겨주고 신경써준 두 어른이 있어 살면서 많은 의지가 되었다. 아들들에게도 “어머니, 아버지가 너희들 공부시키냐고 고생하니 공부 열심히 하고 반듯하게 자라야 한다"며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었다.

공부 잘 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던 아들들은 보은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청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가며 대학을 졸업했다. 큰아들은 충북대 농대와 대학원을 나와 일본 오사카 부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1월에는 환경부 환경연구관에 특채로 입사해 근무하고 있으며 작은아들은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 훌륭하게 자라준 것도 고마운데 심성도 착하고 아버지, 어머니 마음도 잘 헤아리는 착한 아들들이다. 고생하신 부모님 살아생전에 좋은 집에서 좀더 편하게 지내게 해드리려고 집도 새로 지었다. 남편도 새로 지은 집에서 편하게 살다가 세상을 떴다.

엄마들이 아이들과 사진 찍는 걸 보면 그게 참 부러웠는데, 어머니는 아직까지 두 아들과 사진 한 장을 못 찍었다. 아들들이 가족사진을 찍자고 하지만 어머니는 성큼 사진관으로 향해지지가 않는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도 집안 살림은 풍족해지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따뜻했다. 자식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자식들을 반듯하고 훌륭하게 자라게 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얼굴 때문에 남의 시선이 의식 되고 사진 찍는 것도 부담스럽다지만 자식을 아끼고 사랑해온 한 어머니의 순박하고 따뜻한 모습일 뿐이다.
언젠가 어머니의 집 안방에 가족사진이 걸리게 되길 바란다.

부모는 내 자식이 착하고, 공부 잘 하고, 예쁘고 잘생겼으면 좋겠나요?
자식은 내 부모가 돈이 많아 내가 원하는 거는 뭐든 다 해주면 좋겠나요?
그런 마음도 있겠지만 부모도 자식도 가장 바라고 원하는 건 사랑이다.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모두가 바라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어버이날 국무총리상을 받게 된 어머니에게 큰아들은 “우리 엄마한테 그런 상도 주고 고맙네"라며 기뻐했단다. 아들이 좋아해 그제서야 어머니의 마음이 밝아졌다. 언제나 아들이 먼저인 어미의 모습이다.
김춘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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