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구곡 5곡 도치 속편
속리구곡 5곡 도치 속편
  • 편집부
  • 승인 2009.12.03 09:52
  • 호수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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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곡 시에 대한 해석과 도덕적 이해

속리구곡시 5곡

五曲道峙(오곡도치):
오곡은 도치라

五曲行行入道峙(오곡행행입도치):
오곡은 어디인가? 걷고 걸어 도치에 드니

瞻前忽後況然醒(첨전홀후황연성):
앞뒤 활홀하기만 하네

太古雲心松有鶴(태고운심송유학):
높고 먼 구름속 소나무 학 한마리 앉았다

一聲叫罷四山靑(일성규파사산청):
큰 울음 한 소리에 사산이 다 푸르르네

 

작가 민화을 선생께서는 제 4곡을 지나 걷고 걸어서 5곡 도치에 돌아드니 전후좌우를 분별할 수 없이 황홀하기만 하고 다만 보이는 것은 높고 먼 구름 속에 뜬 소나무 한 그루 위에 앉은 학 한 마리뿐인데 그 학의 큰 울음소리 한마디에 동서남북 주위 산천이 모두 다 푸르러진다. 라고 읊어 당시의 풍치를 잘 말해주고 있다.

앞 뒤 황홀하기만 하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전답도 없고 수목만이 우거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도학자이며 성리학자였던 화운 민우식 선생께서는 이곳 5곡을 도치라 명명했다.

이는 퇴계이황선생의 오가산지(吾家山志)에 따르면 청량산(淸凉山)의 계곡을 따라 낙천(洛川)이 구비 구비 흐르면서 절경을 이루는 도산 9곡 원림의 제5곡 탁영(濯纓)에 도산서당을 지었는데 이것은 주자(朱子)가 무이구곡(武夷九曲)의 5곡에 무이정사를 세운 것과 같이 역(易)의 건위천(乾爲天)괘(卦) 구곡 즉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 한 오양(五陽)을 택해 도치라 했으니 화운선생의 5곡 설정은 선현의 9곡 설정과 일맥상통할 뿐 아니라 성리학자로서의 주도면밀함과 높은 수도심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태고운심은 선성의 높은 전통적 도덕을 말함이요, 소나무와 학은 선비의 곧고 청백한 절개를 말함이요, 일성규파는 선비의 도덕적 행위를 말함이요, 사산청은 모든 이가 도에 젖어들어 다 따라옴을 말함이다.
 도란 어느 특정한 길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걸어다니는 평범한 길을 말한다. 선생께서는 이곳 도치에 들어서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정도를 수양하면서 지선의 도치를 넘어 안빈낙도의 길을 찾고자 했다. 서시에서 소나무는 내한의 사시장청을 말한다. 청은 해 뜨는 동방으로 인(仁, 사랑)이며 봄에 속하여 만물의 화생을 말하며 학은 백색이다.

백은 해가 지는 서방으로 의(義)이며 가을에 속하여 만물의 결실을 말하며 일성규파에 사산청이라고 마무리했으니 높은 도덕의 한 가르침에 4방이 다 도덕에 젖어들어 천하귀인(天下歸仁, 천하가 다 착하게 됨 즉 결실을 함)한다 라고 하여 도치에서 도덕을 배우고 실천할 것을 5곡 경관에 비유했다고 하겠다.(또한 사산은 인, 의, 예, 지를 가르친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생께서는 사산청이라는 표현과 5곡을 도치로 설정한 것으로 보아 황홀하기만 한 도치에서 소박하면서도 아늑하고 미려한 경관에서 정심, 수신, 제가의 수도를 배우고 완성하여 앞으로 나아가 안빈낙도 하며 옛 성인을 흠앙하며 처세하려고 했으리라.

옛날 9곡 원림을 경영했던 유자(선비)들은 산자수명한 아홉구비를 오르내리며 각 구비의 특징과 풍치에 따라 옛 이름이나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도 했으니 여기서 신선의 자취가 풍기기도 하고 특히 속리구곡 시에서는 인성의 수도적 냄새가 물씬 풍겨 옴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시인 묵객들은 구곡을 자주 찾았다고 보겠다. 이 근방에는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에 우암 송시열 선생의 화양구곡과 시가 있고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선유구곡과 시(작자 미상)가 있다.

내 선유동과 외 선유동이 있는데 외 선유동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괴산군에 소속됐다. 또한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에 속리구곡 시의 작가 민화운 선생께서 경영한 쌍용구곡 원림과 구곡 시가 있는데 민화운 선생은 이곳에 사우정(四友亭)을 짓고 원림을 경영하며 수도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작자 화운선생께서는 약관의 나이에 시, 서, 예를 독파했고 선친께서 세상을 떠남에 따라 그 유지를 받들어 관직에 나가지 않고 사숙을 경영, 후학을 계도했고 선친의 유훈을 완수하려고 쌍용구곡에 사우정을 짓고 고명한 학자들과 교우하면서 쌍용구곡 원림을 경영하면서 속리구곡 시를 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민화운 선생께서는 경관좋은 절승을 찾아다니면서 그 호연한 자연을 통해 인간사회의 도덕과 윤리를 배우고 또 연마하려했음을 이 속리9곡 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보겠다.

따라서 우리는 만선의 기본이 되는 자연현상을 훼손없이 보존해 미래에 물려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책무가 아닐까.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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