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 사람 … 동광초 6학년 1반 임옥진 학생
사람 & 사람 … 동광초 6학년 1반 임옥진 학생
  • 편집부
  • 승인 2013.04.03 23:35
  • 호수 1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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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초 6학년 1반 임반장님은 일흔여섯살
▲ 임옥진 학생이 지난 1일 보건교육수업시간에 교과서를 보며 열심히 수업에 임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임옥진입니다. 손자가 결혼해 증손주까지 봤으니 남들은 나를 할머니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동광초등학교 학생들한테 나는 임반장님으로 통합니다. 학교에 가고 싶어 마흔 살까지 남몰래 울었는데 일흔 살에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책가방 메고 입학한 지 어느덧 5년이 흘러 지금은 졸업을 1년 앞두고 있습니다."

# 눈물 나게 가고 싶었던 학교
돌아가신 어머니는 글 솜씨가 참 좋았다.
어릴 적, 마을 사람들이 사돈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인 '사돈지’를 써달라며 어머니를 찾아와 부탁을 할 정도로 어머니는 글을 잘 쓰셨다. 그런 어머니는 딸을 학교에 보내지 못한 것을 늘 가슴 아파하셨다. 그래서 임옥진 어르신은 하늘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늦은 나이에도 자신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도와준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역장이라는 집주인이 학교를 보내 준다는 말에 12살 때 부모 곁을 떠나 옥천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역장의 아내란 사람이 학교도 안 보내주고 일을 못한다고 때리기까지 해 도망을 쳤고 집주인이 역장이라 기차를 타러 역에 가면 잡힐까 봐 옥천 이원역에서 영동 심천역까지 걷고 또다시 먼 길을 걸어 겨우 어머니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어르신은 결혼 후 두 아들을 낳고 대전에서 살다가 98년 7월 보은으로 이사해 살고 있다.
지금도 대전에 살고 있는 두 아들과 며느리는 임옥진 어르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작은 아들은 어머니에게 등록금은 자신이 책임질 테니 대학교까지 가라고 했다고 한다. 임옥진 어르신 마음도 대학교까지 다니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신함리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불편해 작년 2월 학교가 가까운 보은 읍내로 이사를 왔다. 학업을 위해 읍내로 이사까지 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정이 식을 줄 모르는 임옥진 어르신이다.

# 나는 겨우 일흔 살
사람들이 때론 묻는다. 그 나이에 어떻게 학교에 다닐 생각을 하게 됐냐고.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러시아에 살고 있는 82살의 한 할아버지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사연이 나오고 있었다. 학교에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그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이가 여든도 아니고 일흔 살인데 그럼 나도 다닐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동광초등학교를 찾아가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텔레비전에서 본 내용을 말하며 나도 학교에 좀 다니게 해달라고 교장선생님께 부탁을 했고 1학년 어린 학생들과 함께 입학해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멋진 용기는 젊은 사람들만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임옥진 어르신의 입학을 허락한 홍기성 교장선생님은 현재 보은교육지원청에 교육장으로 있다. 어르신이 입학을 한 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어르신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고심을 하던 교장 선생님은 '반장님’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할머니 소리를 안 들어서 너무 좋았다는 임옥진 어르신. 말씀 도중 옷걸이에 걸려 있는 보랏빛 모자 하나를 가리키며 “저 모자도 목도리와 함께 교장 선생님이 생일 선물로 주신 건데, 겨우내 따뜻하게 잘 하고 다녔지"하며 교장 선생님이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줘서 고마웠다는 말씀을 하신다. 선생님들도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었는데 청주로 전근을 간 1학년 때 김희자 담임선생님과 4학년 때 이영숙 담임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초등학교 생활을 떠올리며 그리워할 스승도 생긴 것이다.

# 조금만 젊었어도
손주 같은 어린 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소풍도 가고, 놀기도 한다.
운동회 날, 임반장님이 운동장을 달린다. 쏜살같이는 못 달려도 몇 명을 앞지르고 있다. 열심히 달리고 달려 3등을 했다. 그래도 등수에 들었으니 이 정도면 제법 잘 달린 거 아닌가.
“3학년 때까지는 3등은 했는데, 4학년 때부터는 몸이 따라주질 않아 달리기를 못해"
임옥진 어르신도 많이 아쉬워한다. 체육 시간에 아이들과 뛰놀고 싶어도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아이들과 그네도 타고 달리기도 했던 시간들이 그리움으로 남았다.
사회는 몇 번 읽으면 이해도 잘 되고 재미가 있는데 수학은 영 어렵기만 하다. 영어는 어렵지 않느냐고 물으니 영어는 그래도 좀 낫다고 한다. 어르신이 영어공책을 펼쳐서 보여주신다. noodle, china, desk, bag 영어 단어가 쓰여져 있다. 영어 단어를 손으로 짚으며 연습 삼아 읽어주신다. 누들, 차이나, 데스크, 백. 어르신의 영어 발음이 정말 Good(굿)이었다.
영어 단어도 예쁘게 잘 쓰신다고 하니 쑥스러우신 듯 “그래요?" 한 마디 하신다.
“조금만 더 일찍 공부를 시작했으면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갔을 텐데... 그 러시아 할아버지를 조금만 더 일찍 봤으면 내가 학교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더 빨리 했을 텐데... 나도 여덟 살에 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를 다녔으면 1등도 하고 수학 문제도 잘 풀었을 텐데..."
배움에 대한 갈망과 배우지 못한 아픔이 임옥진 어르신의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학교를 못 다녀 글을 배우지 못해 가장 가슴에 한이 되는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두 아들이 공부할 때 글을 몰라 가르쳐주지 못한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마흔여덟 살 때 그렇게 따고 싶었던 운전 면허증을 따지 못한 것이다.

임은 벼슬이 높은 사람을 임금님 부릅니다.
옥은 진흙 속에 들어가도 빛이 난다는 말
진은 장원 급제 하는 사람을 진사라고 말한다.
부모님께서 저를 건강하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께서 이름을 잘 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께서 학교에 가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옥진 어르신이 4학년 때 지은 글이라고 한다. 그때 쓴 다른 글에서는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열심히 가르쳐주셔서, 반 친구들이 모르는 글자를 많이 도와줘서, 반 친구들이 인사를 잘 해서 그리고 교실 청소를 깨끗이 해서 감사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임반장님은 공기놀이를 함께 했던 친구였고, 실뜨개질을 가르쳐준 친할머니같은 분이었고, 공부할 때 모르는 것도 가르쳐준 친절한 분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임반장님은 초등학생 시절 잊지 못할 좋은 친구이다.
책을 좋아해 책을 꽂아두려고 10만원 주고 책꽂이도 맞췄다. 위인전기 읽는 것을 좋아한 임반장님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조선의 과학자인 장영실의 전기이다. 좋아하는 이야기는 몇 번을 읽고 또 읽는다. 꽃 중에서는 백일홍을 가장 좋아한다. 꽃을 좋아해 마당에 텃밭이 있던 보은읍 신함리에 살 때는 꽃을 많이 심었었다. 일흔여섯 살, 초등학교 6학년인 임옥진 어르신의 모습이다. 
김춘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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