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동안의 막노동 현장
10시간 동안의 막노동 현장
  • 박상범 기자
  • 승인 2009.11.26 11:31
  • 호수 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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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사회에서 필수적이고 소중한 것
▲ 깊이 70cm, 폭 1m정도의 배수로를 탄후 콘크리트 배수관을 설치하기전 평탄작업을 하고 있다.

어느덧 2009년 달력도 달랑 한 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모두가 겨우살이를 준비하고 있는 11월 말, 열심히 노동일하면서 겨우살이를 준비하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직업의 선호도는 분명히 존재한다. 정규직 밑에 비정규직이 있고, 그 밑에 일용직이 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문을 나서고 어두워질 때까지 평균 10시간 이상 일을 해야 하며, 일거리가 있는 곳이 바로 직장이 되는 일용직 근로자들의 하루를 함께 했다.

 

#추운 날씨속에 고된 일과 시작
아침 6시. '아~ 정말 일어나기 싫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결국 20분을 이불속에서 꼼지락 거리다가 6시20분이 되어 이불속을 빠져 나왔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충청인력개발(대표 성하준, 보은읍 죽전리)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이 정각 7시를 악 지나고 있다.

사무실은 이리저리 분주하다. 전기난로가 군데군데 켜져 있어 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몸을 녹이는 데는 따뜻한 커피만한 것이 없다.

10여명의 인부들이 사무실에서 추위를 녹이고 있고, 몇몇 인부들은 밖에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올라 하루의 직장(?)을 찾아 떠나고 있다.

난로앞에 서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부랴부랴 하루를 함께 할 권영철(49, 보은읍 삼산리) 반장님의 뒤를 따라 나섰다. 갑작스런 취재요청에도 아무런 싫은 내색없이 배려해 준 성하준 대표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차에 올랐다. 시동이 걸려있는 차에는 이명호(59, 보은읍 죽전리)님이 타고 있다.

'이분들에게 민폐나 끼치지 말아야 할 텐데…'하는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내다본다.
누렇게 익어가던 벼들이 수확된 논에는 하얀색 곤포사일리지만 덩그러니 남아 뒹굴고, 밭에는 겨울 먹거리인 김장을 앞두고 있는 배추와 무만이 군데군데 보인다. 길가에 서있는 차들의 유리창은 모두 하얗게 성애가 끼어있다. '아~, 겨울이구나!'

#삽질 몇 번에 추위가 더위로
차가 도착한 곳은 보은국도관리사무소로 기존 청사를 철거하고 새 청사를 마련한 후 주변 환경정리가 한창이다. 약속된 7시보다 약 30분정도 늦어서인지 인력을 요청한 사장님의 표정이 밝지는 않다.

권 반장님을 통해 들은 오늘 할 일은 보은국도관리사무소 외곽 둘레에 콘크리트 배수관 약 50여m를 매설하는 작업이다. 중장비가 작업할 수 없는 곳 20여m를 약 70㎝ 깊이와 약 1m 폭으로 파는 것이 주 임무(?).

권 반장님은 플레이트콤팩터(땅다지는 기계)로 어제 작업한 땅을 다지고 이씨 아저씨는 땅을 파고, 나는 수준측량에 필수적인 스타프(눈금자)를 들고 움직이는 일로 각자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스타프를 들고 약 30분가량 이곳저곳을 찍고 다니다가 본격적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허리높이까지 땅 깊이가 깊어지자,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과 머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난다.

얼마나 지났을까, 추운 날씨가 걱정이 되어 내복을 껴입고 나온 것이 후회가 될 만큼 더워진다.
결국 겉에 있었던 점퍼를 벗을 수 밖에 없다.

 

#새참먹는 시간은 꿀맛
오전 9시30분. 땀도 제법 흐르고 팔과 허리가 뻐근해질 무렵, 새참 시간이 되었다.
배고파 일 못하는 것이 걱정이 되어 잘 먹지 않던 아침까지 챙겨먹고 나왔지만, 삽질 2시간에 배고픔이 찾아왔다. 적당한 배고픔과 추위에 따끈한 컵라면은 안성맞춤이었다. 새참으로 준비된 라면을 호호 불어가며 2개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새참을 맛있게 먹고 10분의 휴식시간에 권 반장님에게 제일 궁금한 것을 물었다.
"오늘의 경우에는 약 30분정도 일이 늦게 시작한 것이고, 보통 새벽 6시30분에 사무실에 도착한 후 커피한잔으로 몸을 녹이면서 일거리를 배정받고 7시 정도에는 현장으로 이동해 작업이 시작된다. 여름에는 겨울보다 약 30분정도 일찍 시작된다고 보면 맞다. 일이 끝나는 시간은 겨울에는 저녁 5시에서 5시30분, 여름에는 6시에서 6시30분 사이로 여름에 노동시간이 1~2시간 더 많다"

하루 일당에 대해서도 물었다.
"일반적으로 잡일을 하는 잡부들의 하루 일당은 7~8만원,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능공들의 일당은 기술에 따라 천차만별로 10~15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그리고 보은이 대전보다는 1만원, 서울보다는 약 2만원정도 단가가 적다고 보면 된다"

 

#삽질은 아무나 하나?
새참을 먹느라 약 20분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삽질의 연속이다.
3군데서 암반이 나와 굴삭기의 브레이커(breaker(파쇄기), 일명 쁘레카)를 이용해 깨뜨린 후 땅을 팠다.  점심시간인 12시가 다가오자, 허리도 아프고 팔과 손에 감각이 없어지고 힘이 빠지는 듯하다.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권 반장님이 한마디 던진다.
"나는 막일 중에 삽질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처럼 삽질하는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닌데… 쉬엄쉬엄 해요"

쉬어가면서 일하라면서도 권 반장님이 땅을 파고 다듬고 지나간 자리는 배수로의 깊이, 폭 등이 정확하게 맞는다.

한쪽에서 떨어져 땅을 파고 있는 이씨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삽질은 아무나 하나?' 군대에서 느꼈던 짭밥의 힘을 모처럼 만에 느껴본다.
정각 12시, 점심시간이 되었다. 인근의 식당으로 이동해 청국장 백반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노동을 한 탓일까, 땀 흘린 탓일까? 밥 한 그릇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현장으로 돌아와 30분간 휴식을 취했다.
새참을 먹다가 나온 얘기가 이어졌다.
"청주·대전의 경우에는 인부들이 넘쳐 일을 배정받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릴 정도이며, 허탕치고 돌아가는 인부들도 허다하다. 하지만 보은의 경우에는 다행인지 일하러 나온 인부들이 일을 배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때마침 오후 배수관 공사에 투입될 굴삭기가 현장으로 다가온다. 말이 나온 김에 굴삭기에 대한 일당도 물었다.

권 반장님이 전하는 중장비의 하루 단가는 크기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골목길에서 일하는 가장 작은 굴삭기가 일당 35만원선이고 제일 큰 굴삭기가 50~55만원 정도란다.

 

#배수로공사의 생명은 구배잡기
오후 1시. 점심을 먹고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탓인지 다시 힘이 생기는 듯하다.
배수로 땅파기 작업은 대충 마무리가 되었고, 오후부터는 콘크리트 배수관을 오전에 파놓은 배수로에 설치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굴삭기를 이용해 콘크리트 배수관을 들고 이동을 한 후 수평을 잘 맞추어 하나둘씩 설치해 나간다. 배수관 설치공사의 생명은 구배(기울기)잡기로 연신 스타프를 들고 수준측량을 한다. 덩달아 스타프를 들고 이리저리 오가는 나의 발걸음이 바쁘다.

"옛날에는 여러 사람들이 달라붙어 배수관을 옮기기도 했지만, 이제는 중장비 없이는 배수관공사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중장비가 땅파는 것부터 시작해 설치 및 매설까지 모든 일을 하고 있다. 이처럼 중장비가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인부들의 할 일은 줄어든다"

배수로 하나둘씩 하얀색 콘크리트 배수관이 설치되자, 무언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세 사람이 한 일이 구체적인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용역을 발주했던 사장님은 작업 자료사진을 확보하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오후 5시경. 약 50m구간에 놓여진 배수관의 전체에 대한 기울기를 측정하는 수준측량이 다시한번 첫 배수관부터 마지막 배수관까지 이루어지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오후 5시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 해는 붉은 빛을 발산하며 서산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권 반장님과 이씨 아저씨는 내일 다시 이곳에서 일을 하기로 약속받고 직장(?)에서 퇴근을 했다.
용역을 발주한 사장이 두 사람이 하루동안 보여준 성실함을 인정한 것이리라.

 

#인력사무실로 돌아와 하루 마무리
10분전 오후 6시. 아침에 들렸던 인력사무실로 되돌아 왔다.
먼저 사무실로 돌아온 인부들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고 호명하는 순서대로 나와 하루 임금을 정산받고 있었다.

인력소개소에서 인부들에게 미리 일당을 정산해주고 차후 용역을 제공한 회사에게 일당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소개비로 당일 임금의 10%를 뗀다. 일당 7만원이면 소개비 7천원을 제하고 6만 3천원을 인부들이 손에 쥐는 셈이다.

하루를 함께 하면서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만족할 줄 알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 부끄럽지 않은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 권영철 반장님, '원래 하시던 사업인 목조 전원주택 지을 때 저 좀 데려다 잡부로 쓰시죠?'라고 농을 던지고 감사인사를 전하고 헤어졌다.

또한 갑작스런 취재에도 선 듯 배려해주신 성하준 충청인력개발 대표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집으로 향했다.

 

#일당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일당(급여)는 노동의 대가이자,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이다.
업무처리 능력과 영업실적 기여도를 수치화한 지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당이나 급여로 그 사람을 평가하지는 말자.
많은 일당이나 급여를 받는다고 그 사람이 그만큼 가치있는 사람도 아니요, 적은 일당이나 급여를 받는다고 가치가 적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아늑하고 따뜻한 사무실은 아니지만, 하루 동안 자신의 직장이 되어준 곳에서 속임없이 땀 흘리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노동은 값지며 그 사회에서 필수적이고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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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왜 2009-12-09 10:38:12
땀 흘리려 사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의 현장속으로 직접 들어가 몸소
체험하는 기자분 참으로 훈훈합니다. 자신이 일한만큼 꼼수 쓰지않고
작은 대가에 열심히 사시는 근로자분들 앞날에 행복과 행운이 가득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분들은 힘든일은 피하면서 어디 국가에서 보조
사업하는 공돈이나없나하고 침흘리는 사람들하고는 차원이 틀린분들이고
보은의 보배들이십니다. 2010년도에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여 화이팅하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