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결심하고 회남대교를 찾는 사람들의 목숨도 구하고 회유해서 돌려보내는 이지승 이장
자살을 결심하고 회남대교를 찾는 사람들의 목숨도 구하고 회유해서 돌려보내는 이지승 이장
  • 편집부
  • 승인 2013.02.20 23:40
  • 호수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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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마음으로 용기 내어 살아보세요

경제적인 어려움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지역에서도 지난 15일 '생명존중협의회’가 구성돼 사전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보통 매스컴을 통해 자살 소식을 접하겠지만 보은 회남면 주민들에게는 먼 지역의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가 아니다. 특히 회남대교 바로 인근에 거주하는 사음리(어부동) 이장인 이지승(57) 씨에게는 회남대교에서 자살하는 사람들 때문에 겪어야 했던 남다른 사연이 많다고 한다. 지난 19일 이지승 이장을 만나 그동안의 사연을 들어 보았다.

 

# 회남대교 위 자살 끊이질 않아
보은에서 회남면소재지를 지나 대전방면으로 향하다보면 대청호반을 가로지르는 세 번째 다리인 회남대교를 지나게 된다. 452.6m 길이, 57m 높이의 회남대교 주변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멋진 호반의 경치를 자랑한다. 그런데 매년 회남대교 위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지승 이장의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 초기와 97년 IMF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회남대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 후 회남대교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으며 많을 때는 한 해에 5명 이상이 죽기도 했다는 것이다. 대청호에서 어업을 생업으로 하고 물속에 잠수해 고기를 잡는 기술이 있어 자살로 죽은 시신을 인양한 적도 많다. 시신을 인양하면 유가족에게 인수를 하는데 회남대교 자살자 중 50%를 차지했던 무연고자들은  군에서 장례비용을 부담해 회남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안치했다.

다리에서 떨어질 경우 장기 파열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이 다리 위에서 물속으로 떨어질 때 그 소리가 상상 이상으로 무척 크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다리 위에서 떨어지면 그 소리를 들은 낚시꾼들이 얘기를 해주기도 하고, 이지승 이장 자신이 소리를 듣고 사람을 구조하거나 시신을 인양해왔다.

자살자 중에는 40대 가장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대통령도 바뀌었으니 자살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다며 이지승 이장이 대청호반을 바라보며 바람을 내비친다.

#자살하는 사람 구조해 목숨 구하기도
회남대교에서 자살한 사람들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 중 낮에 자살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보통 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사람들이 자살을 하기 때문이다.

이지승 이장이 자살을 선택했던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밤낚시를 하던 낚시꾼이 다리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후 이지승 이장에게 알려줘 구조를 했고, 두 번째는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고등학생 딸을 데리러 가려고 집을 나서던 중 사람이 물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그 사람을 구조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벌써 10년 전, 20년 전 이야기이다.

당시 두 명 모두 우리 지역에 살고 있던 총각들이었는데 사람 인연은 참 묘하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이지승 이장이 최근에 송이버섯을 따러 산에 갔다가 10년 전 자신이 구해줬던 그 총각을 만난 것이다. 산에서 만나 어디에서 왔는지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상대방이 이지승 이장을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때의 총각은 결혼을 하고 한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낸 한 사람이 잘 살고 있는 것을 본 이지승 이장도 기쁘고 뿌듯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은 자신이 자살하려는 장소를 몇 차례 다녀간다고 한다. 어느 날 다리 위를 배회하는 사람이 있어 자세히 보니 얼마 전에도 회남대교에서 배회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어 그 사람을 불러 차 한 잔을 대접하며 속내를 물어보았다. 이지승 이장의 예감대로 자살을 결심하고 회남대교를 찾은 사람이었다. 이지승 이장이 사연을 듣고 마음을 달래주기도 하고 용기도 심어주며 이야기를 하자 자살하려던 마음을 돌리고 돌아갔다고 한다.

34년을 살면서 대청호반에서 자살을 하려던 사람만 구한 것은 아니다. 대청호에 양어장이 성행하던 당시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이나 대청호에 놀러 온 사람들이 사고로 물에 빠진 것을 여러 명 구한 적도 있다. 살면서 일반 시민이 사람 목숨을 이렇게 여러 번 구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회남대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자 동네 사람 중에는 그곳에서 무서워서 어떻게 사냐, 집에 남는 방 하나 줄 테니 들어와 살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이지승 이장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금까지 지켜오며 쉽지 않은 일을 해오고 있다.

# 죽을 마음으로 용기 내어 살아봤으면
이지승 이장은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는 것 같다고 했다. 자살을 결심하는 것도, 죽을 자리를 정하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펼쳐져 있는 대청호반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대청호반의 모습처럼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지승 이장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모습은 보기 끔찍할 정도로 흉측하다고 한다. 물에 빠져 죽을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고쳐먹었으면 좋겠다며 몇 번이나 강조를 했다.

다리 위에서 가지런히 정돈해 놓은 누군가의 신발이며 소지품 등이 발견되면 지난밤 그 물건의 주인은 다리 아래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수색을 해서 빨리 못 찾게 되더라도 시신은 반드시 물 위로 떠오른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주검이 다른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발견된다는 사실을, 그것도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꼭 알길 바란다고 했다. 그럼 한 사람이라도 자살하려던 마음을 되돌리지 않을까 하는 이지승 이장의 진심어린 바람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오래 전 물에 빠져 죽은 시신을 처음 봤을 때 부패된 모습이 눈앞에서 계속 아른거릴 정도로 오래도록 잊혀지지가 않았다며 그때를 회상하며 말을 전하기도 했다.

자살 사건이 발생하고 시신을 바로 못 찾을 경우 경찰이며 어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등 주민들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언젠가는 이런 적도 있었다. 금요일에 회남대교 인근 주차장에 주차된 차가 주말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아 자동차를 확인해보니 차 안에 열쇠며 소지품들이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그 순간 자동차 주인이 자살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시신은 한참 지난 뒤에 찾을 수 있었는데 그런 경우가 두 번이나 된다고 한다.

30여 년 동안 자살로 인한 많은 주검을 목격한 이지승 이장이 당부하는 말이 있다.
“죽을 마음으로 다시 용기 내어 살아봤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고생한 게 억울해서라도, 그런 오기로라도 버티며 살고, 자신이 죽으려고 했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려 열심히 살면 그 사람은 분명 희망이 있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착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사회에 불만을 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벌이지만,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정이나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마음을 바로잡는다면 꼭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지승 이장의 또다른 생각이다.

이지승 이장이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애틋한 연민을 느끼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바꿔 삶을 살아간다면 그들에게 꼭 새로운 삶이 다가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 믿음은 그가 살아온 삶에도 그런 아픔과 절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청댐 건설로 수몰된 고향인 영당리를 떠났던 이지승 이장은 1979년 다시 회남으로 돌아와 사음리에 정착했다. 그 당시 무일푼으로 돌아온 이지승 이장 역시 자살을 시도했던 힘든 시간을 보낸 과거가 있다. 그 후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빈손으로 다시 시작해 고기를 잡고 땅을 일구며 열심히 살아온 시간은 그에게 부인 민병순(54) 씨와 1남 1녀의 자녀 그리고 며느리, 손자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삶을 주었다.

지금도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는다.
20년 전 대청호반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2층 건물도 지어 식당도 운영하고,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까페도 열었다.
좌절하고 절망했던 당시에는 결코 보이지 않았던 행복한 삶이다.
한때 자살을 생각하고 자신의 나약함에 고개 숙였던 이지승 이장이 보여준 강인함이 일궈낸 멋진 결과물인 것이다.

회남대교가 있는 대청호반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답다.
자살을 생각하고 회남대교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새 희망을 품게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그들의 삶에도 이지승 이장이 보여준 것처럼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춘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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