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 이장을 보는 쌍암3리 노병영·노광우 부자
대를 이어 이장을 보는 쌍암3리 노병영·노광우 부자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3.02.06 23:18
  • 호수 1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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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 정 나누며 가족, 주민과 행복다져

과거와 같은 농경사화라면 몰라도 젊은이들은 거의 도회지로 나가고 시골에는 고령의 부모들이 집과 땅만 지키고 있는 농촌에서 대를 이어 이장을 하는 사례가 있을까?
회인면 쌍암3리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이 이장을 보고 있다는 귀동냥으로 쌍암3리를 두 번이나 방문했다. 미리 취재 약속을 했었지만 정작 당일 방문하겠다고 전화를 하니 설대목 곶감 택배일로 바쁘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일하시면서 질문에 답만 하면 된다고 설득하고 마을을 찾으니 이번에는 아버지가 병원에 가셨는데 늦게 오신다고 한다. 그럼 내일 오겠다고 하고 다시 되돌아 나왔다.
취재당일이 되자 이번엔 핸드폰 문자를 통해 정중하게 취재를 사양했다.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기사가 나왔다간 괜히 창피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무시하고(?) 눈비가 살짝 내리던 지난 5일 회인면 쌍암3리 노광우 이장댁을 찾았다. 설 선물로 주문받은 곶감 포장이 한창이었다. 취재를 시작하니 아버지 노병영(65) 전 이장과 노광우(39) 현 이장은 두 부자가 사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선배인 아버지는 “공사 따면 제일 좋았죠"
아버지 노병영씨는 회인초등학교 회동분교(14회)를 졸업하고 부모님 모시며 농사만 지었다. 새마을지도자를 10년간 보면서 회인 중앙리에는 나가봤지만 보은읍내에 한 번 가보지 않을 정도로 날이 밝으면 들에 나가고 밤이 되면 집에 올 정도로 일만하고 살았다.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한 것이 보통이었을 것이다. 처자식 입에 풀칠이라도 시키고 자식들에게 책가방이라도 들게 해주려면 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성실하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노병영씨에게 이장 한 번 해보라고 한 것은 동네 주민들이었다. 그 때가 1993년. 농사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노병영씨는 이장을 보면서 세상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고 술 친구도 생기고 사람도 많이 사귀었다. 공무원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특히 담당 공무원이었던 최현수(현재 회남면 주민복지계장)는 바빠서 이장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직접 공문을 가져다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 사람을 덕을 많이 봤다"고 기억할 정도로 최현수씨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우는 아이 젖 더 준다고 마을에 도움이 되는 일을 따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해서 수로공사, 농로포장 등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숙원사업들을 참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2년 임기를 마친 후 바빠서 안되겠다고 이장을 내놓은 그에게 주민들은 1997년 다시 3년간 이장을 맡겼다.

집만 알고 농사만 알다가 면사무소에 나가는 것도 쑥스러워했던 노병영씨도 이장을 보는 것이 노련해졌다. 그러다 이장 3년째인 1999년 밭에서 경운기 작업을 하다 뼈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어 5개월가량 입원을 해야만 했다. 수술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완치되지 않아 13년째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

물론 집일을 하다가 다친 것이지만 이장 재임 중 얻은 훈장 아닌 훈장으로 “아직 일할 나이인데 힘든 일은 못하니까, 아들이 더 고생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죠" 라고 말하는 아버지 노병영씨는 무뚝뚝함 속에서도 진한 아들사랑을 내보였다.

이장 재임 중 제일 좋았던 기억이 “그 때는 동네가 워낙 낙후됐었으니까 공사를 따오면 제일 행복했었죠 뭐"하고 싱겁게 웃으시는 아버지 노병영씨는 “경험이 있으니까 이장을 볼 수는 있겠지만 옛날과 다르고 모든 것을 새로 구상해야 하기 때문에 아마 시켜줘도 힘들 것 같다"며 “우리 동네에 무슨 사업이 필요하다고 하면 조리있게 상대방을 설득을 해야하는데 배움이 짧으면 그것을 잘 못하잖아요. 어쨌든 배운 사람이 해야한다"며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듣는 후배 이장인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후배인 아들은 “모든 것 주민들과 상의해요"
학교 졸업 후 충북 증평시내에서 마트, PC방 등 자영업을 했던 아들 노광우씨가 고향으로 들어와 이장을 본 것은 2010년이다.

어머니가 작고하고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는 중 이장으로 추천해주는 어른들에게 바빠서 못한다고 사양했지만 결국 투표로 뽑혀 4년째 보고 있다.

장사만 했기 때문에 농사물정 모른 채 배우면서 하려니 그것도 버거운데 이장이란 중책까지 맡으니까 어깨가 무거워 옴을 느꼈다. 뭔가 하기는 해야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은 안오고….

그래도 머리 회전이 빨라 일머리를 잡아가며 마을일을 보니 그런대로 잘해나갔다. 여기에 든든한 지원군으로 이장 선배님인 아버지가 계시니 아버지의 경험을 전해듣고 동네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목록을 만들며 단기사업, 중기사업, 장기사업 등으로 분류하며 마을 숙원사업 해결에 나섰다.

손톱만큼 작은 일도 주민들과 상의하고 어른들의 조언을 들어 결정하니까 마을 주민들도 무슨 일이든 돌아가는 것을 알아서 마을에 더욱 관심을 갖고 노광우 이장을 신뢰하고 성원해줬다.

“신통하죠. 동네 사람들도 아들이 이장을 잘 보고 있다고 칭찬하고 내가 봐도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으니까 기분이 좋다"며 흐뭇해 한 선배 이장님인 아버지 노병영씨는 “혼자 독단으로 결정하지 말고 지금처럼 크든, 작든 모든 것을 주민들과 상의해서 결정하면 좋겠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후배인 아들 노광우 이장은 “처음 이장을 맡으면서 한 일이 상수도 사업이었어요. 당시 주민들이 지하수를 먹었는데 심층수가 아니고 오염된 건수잖아요. 그래서 암반관정을 뚫어 상수도를 공급했는데 모든 주민들로부터 잘했다는 칭찬을 들었다"며 그 때 내가 동네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농번기에 사용한 후 노상에 그냥 방치된 농기계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 확보와 함께 장기적으로 주민 소득과 연계될 수 있는 사업도 진행하길 원한다"는 노 이장은 “내년까지 임기인데 앞으로 더 이장을 볼지 모르겠지만 마을발전과 주민 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이장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어엿한 사장님인 노광우 이장
농사를 짓는 사람에 대한 호칭이 농사꾼에서 ○○농원 사장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농업의 농자도 모르다가 농업에 뛰어들어 이제는 연간 수천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노광우 이장도 이젠 어엿한 농업전문 사장이다. 마트업을 했던 때와 비교하면 수입면에서는 적을지 모르지만 무거운 짐 지지 않고 공기 좋은 것에서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사장 노광우 이장은 자율방범대, 자율방제단, 적십자봉사회, 청년회에서 활동하는 등 바쁜 와중에도 소득작목 발굴에 열중이다.

보통의 농민들이 월급생활자나 자양업처럼 연중 수입이 없고 대부분 가을 이후 발생해 가계 운영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연중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요즘 노광우 이장의 최대 숙제다.

아버지가 시작한 곶감은 서울 등에 직거래로 모두 유통시켜 연간 3천여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효자 작목이고 돈이 귀한 여름철 돈을 만들기 위해 1만9천830㎡(6천평)에 단호박을 심고 단호박 수확 후 이모작으로 콩을 재배하고 호두를 수확해 판매하는 것이 현재 주 소득원인데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뭔가를 도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공해서 판매하면 소득도 높아지겠지만 인력이 구하기도 어렵고 또 시설 투자도 해야하기 때문에 가공사업에 뛰어들 수가 없다는 노광우 이장은 “곶감은 일기, 특히 습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쌍암은 고지대여서 온도차가 큰 것은 물론 습도도 낮아 곶감생산에 적합하다"며 “앞으로 곶감, 호도 작물을 활성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래비전이 밝은 이런 아들에게 아아버지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우리야 농사라고 지을 줄만 알았지 제대로 팔기를 해봤어 아들이 머리 쓰는 게 낫다"는 아버지는 “둘째아들인데 광우가 귀농하고 나서 수입도 많아지고 모든게 좋아져서 이제는 내 주관 보다는 아들 하는 방식을 믿고 후원해주고 있다"며 무한신뢰를 보였다.

아들딸, 손자 모두 건강하고 농사 잘되는 것이 새해 소망이라는 선배이장인 아버지 노병영씨, 그리고 하고 싶은 사업을 꼭 할 수 있도록 올해 농사가 잘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하는 후배이장인 아들 노광우씨는 취재 내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부자간의 도타운 정을 보여줬다.

나무로 군불을 지펴야 하고 생활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자신이 손수 지은 집이라 손자가 새로 지은 산뜻한 집으로 이사오지 않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아들 노광우 이장까지 3대가 사는 쌍암리는 코앞으로 다가온 설날 고향을 찾은 자식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우리네 부모님들이 사는 그런 따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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