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마중 나온 날 길 떠난 산 사람들
첫눈 마중 나온 날 길 떠난 산 사람들
  • 송진선 기자
  • 승인 2009.11.19 09:58
  • 호수 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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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목고개~말티고개~수철령~장갑교(거리 15km, 8시간)

지난 15일. 속리산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종주하는 '속리산 환 종주' 마지막 날이다. 아침 7시에 출발한다고 했는데 눈을 뜨니 시계바늘은 벌써 7시에 다다르고 있다.
큰일이다. 매번 산행 때마다 지각생을 면치 못했는데 마지막 날까지도 속을 썩이는 구나라고 생각할 동행자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분주했다.
이불속으로 몸을 숨길까 하는 유혹을 물리치고 주섬주섬 배낭을 꾸려 밖을 나오니 눈이 하얗게 내리고 기온이 장난 아니게 추웠다. 또다시 갈까 말까 갈등을 겪다 집결장소에 도착한 시간이 7시20.
이미 산행할 사람들이 모여 웅성 웅성거린다.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보온이 안 되는 옷만 입었다고 걱정을 한다. 나름 방한복이라고 갖춰 입었는데 산 꾼들 눈에는 내 행색이 금방 동상을 입을 것 같은 옷차림이었던 것이다.
산행시작점인 갈목고개에 도착해 최웅식 등반대장의 방한복을 빌려 단단히 무장을 한 후 산을 올랐다.
첫눈이 마중을 나온 이날, 무장해제한 채 산 정상에서 맞닥뜨린 초겨울 삭풍이 살을 도려내는 듯했다. 온 몸이 꽁꽁 얼어 제대로 설산의 풍광을 감상하지 못했으나 첫눈 온 날 산행을 추억 속에 차곡차곡 담는데 만족했다.

 

◆눈보라와 싸운 8시간의 산행
이날 산행은 갈목고개를 거쳐 말티고개를 지나 장안 장재, 보은 종곡을 거쳐 산외면 백석리로 하산한 도상거리 15㎞구간이다.

갈목고개부터는 계속 한남금북정맥 구간이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탓인지 능선위로 등산로가 선명하게 나있다. 그리고  대간과 정맥을 산행 사람들이 매달아 놓은 시그널이 나무마다 매달려 있다.

산의 정상부인 능선 위로만 하니까 사방으로 시야가 확보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분명 산 아래에서 보면 사야가 트일 것으로 보이나 나무들이 시야를 방해하기 일쑤다. 바로 아래도 제대로 보기 힘들다. 이날은 눈까지 내리니 사방이 뿌옇다.

소나무위에 그리고 아직 떨어지지 않은 참나무 잎사귀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를 볼 수 있어 눈만은 즐거웠지만 발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많이 걸어서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방수능력이 떨어진 낡은 등산화 때문이다. 제 기능을 상실해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부터 양말이 젖어 발바닥은 물론이요 발등까지 물기가 올라왔다.

그래도 등산화 끈을 꽉 조인 탓인지 발걸음은 재촉할 수 있었다. 혹시나 해서 여분의 등산양말을 챙겨오긴 했으나 양말만 갈아 신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어서 발이 어는 것은 하늘에 맡기듯 포기한 채 등산을 계속했다.

발 시림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등산로가 미끄러워 잠시도 방심, 아니 딴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등산로에만 시선을 고정시켜야만 하는 여건 때문이라는 생각을 나중에야 했다.

등산로에 쌓인 눈 속에 낙엽이 숨어 있어 미끄러움이 상당했다.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며 발길을 이어가도 워낙 미끄러워 엉덩방아를 찧는 것은 보통이었다.

엉덩방아를 찧을 때마다 땅 한 평 샀네, 또 땅 한 평 샀네 하는 우스갯소리로 엉덩방아를 찧은 사람과 이를 본 사람이 서로의 민망함을 위로한다.

능선을 차고 올라 산 정상에 올라 전망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잠시 쉬면서 주위 경관도 감상했던 그동안의 산행관행이 이날만은 용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등산을 잠시 중단하면 추위가 엄습해 오기 때문이다. 중간에 사과 반쪽씩 나눠먹고 물을 마시고 재빨리 도시락을 비운 점심시간 외에는 계속 전진만 했다.

최윤태 회장은 "종전 같으면 숲 해설에 산 이야기까지 풀어놓으며 길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여 보통 한 갑 정도 담배를 피웠는데 휴식 시간 없이 줄달음해 담배 세 개비로 8시간 동안 그것도 장장 15㎞를 버텼다"고 털어놓고는 "어려운 산행이었는데 정말 사고 없이 잘 마무리했다"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보은터널 위를 두발로 걷다
말티고개를 지나 장재리 뒤쪽 능선에는 차광막에 철조망까지 설치한 휴전선이 버티고 있다. 그 휴전선이 보은터널을 거쳐 산외면 쪽으로도 계속됐다. 산삼 작목반들이 신림을 임대해 산삼을 재배하는 곳인데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그 면적이 장장 80만평에 이른다고 한다. 엄청난 면적이다.
휴전선 때문인지 속리산면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단돼 아늑했다.

동학공원에서 보은터널 가기 전 왼쪽 산 능선이 너무 아름다워 보은터널 구간을 갈 때마다 저 산 정상에 꼭 올라가보리라 마음먹었었다.

그 마음은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더욱 간절했다. 새 빨간색을 띄지는 않지만 떡갈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 단풍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한남금북정맥 구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산 정상 능선은 탔겠지만 산 아래에서 산 능선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산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고 지났을 것이다.

산의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에 반해있던 기자가 그곳을 지날 때 소원을 성취한 것과 함께 보은터널 위를 두발로 디딘 뿌듯함이 온몸에 전해졌다.

단풍이 다 져서 앙상한 참나무 가지만이 삭풍에 흔들거리고 있어 감동은 산 아래에서 봤던 것보다 덜했지만 보온터널 위에 족적을 남긴 사람이 보은사람들 중에 몇이나 될까. 그것만으로도 흡족했다.

 

◆이름만 남은 고개를 건너다
지도상에 수철령이라고 표기된 곳이 장안 사람들이 말하는 희넘이 재이다. 보은문화원에서 펴낸 지명지에는 신임이 고개라고 적고 있다.

장안면 서원리 황해동 마을에서 속리산면 갈목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지금 속리산 쓰레기 매립장 쪽으로 연결된다. 옛날 사람들이 지날 때마다 소망을 담은 돌을 얹어서인지 고개에 돌무더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옛날 속리면 시절, 면사무소는 서원리에 있고 지서는 상판리에 있을 때 새로 부임하는 서장이 서원리 면소에 부임인사를 하고 바로 이 고개를 넘어 상판리의 지서에 닿았다고 한다.

속리산면에 닿을 수 있는 지름길이어서 지금의 갈목재를 통하지 않고 속리산에 닿을 수 있게 터널을 뚫어야 한다고 할 때마다 바로 신임이 재 얘기가 거론됐다.

그런가 하면 보은읍 종곡리 종동마을, 즉 종곡저수지 뒤쪽에서 속리산면 하판리로 넘어가는 고개도 그대로 있었다. 구룡티라고 하는데 고개가 구불구불한 것이 용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해서 구룡티라고 한다. 산의 형세가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는 기상이라 하여 구룡티라고도 했다는데 어쨌든 보은에서 속리산으로 향하는 터널을 뚫을 때 지금의 위치가 아닌 이 구룡티가 거론됐었다.
하지만 속리산 하판리로 연결할 경우 고저차가 맞지 않아 현재의 위치인 중판리와 연결한 것이다.
어쨌든 현대의 기술이나 공법 상으로 볼 때는 맞지 않는 것이 있겠지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할 때 옛날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고개 길이 조명을 받는다.

 

◆41㎞의 속리산 환종주 마무리
대한민국의 명산 전국 8경 중 하나인 속리산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또 속리산을 그 안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본 속리산, 그리고 그 줄기를 찾으며 속리산이 주는 의미를 새롭게 새기는 기회가 된 중주였다.

지난 8월 산외면 백석리 푸른산 가든 모텔 인근 뒷산에서 시작해 9월 10월에 453봉, 675봉 614봉, 애기업은 바위, 묘봉, 북가치, 관음봉, 문장대, 천왕봉, 소천왕봉, 대목고개, 갈목고개, 말티고개, 보은종곡, 산외백석리 시작점으로 하산한 구간이 총 41㎞가 넘는다.

경관이야 속리산에 비하면 크게 떨어지지만 속리산 환 종주 구간을 개발하면 새로운 등산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산 능선이 주는 곡선의 아름다움도 느끼고 농촌마을의 풍경과 산다락지에 붙어있는 논을 경작해 먹고사는 농민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유명한 산마다 등산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로 인해 사람 구경하러 가는 것이 등산이 된 요즘 사람들이 찾지 않아 호젓하게 사색을 하면서 산이 주는 편안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을 수 있으니 제격인 것 같다.

장재리에서 종곡리 방향으로 가다 속리산 쪽을 조망하다 보면 숨은 그림 찾기처럼 문장대와 천왕봉도 볼 수 있다. 속리산 환 종주를 하면서 느끼는 재미다.

충북알프스라는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속리산이, 아니 우리지역이 또다시 부각된 것처럼 속리산 환종주 구간을 산행 코스로 개발하면 지속적으로 산 꾼들을 우리지역으로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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